표류하는 사람들 / 이윤길 몰려오는 파도의 거친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선원들은 어깨를 맞대고 따뜻함이 흥건하도록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러면서 늙어 갔다. 낡고 삐걱거리는 용골 위에서 숫양의 모가지를 자르는 상념은 무적이었으나 불면이 갯바위 갯강구처럼 부스럭거렸다. 오, 희망이 모두 빠져나간 표류여, 파도가 선실로 밀려들어 복숭아뼈를 적시고 발뒤꿈치 힘줄을 끌어당긴다. 만선에 매달렸던 너의 용기 나의 만용이, 우리들의 슬픔이 고통으로 가득한 선실 바닥을 뒹군다. 붉은 섬광 아래에서 흔들렸다. 고막을 찢어대는 천둥소리가 목줄을 놓친 개의 이빨처럼 달려들었다. 9월 한낮인데도 번개의 칼날은 야만처럼 빛나서 구명의 비명을 이리저리 몸에 새겨 놓는다. 태풍은 스스로 죽음 곁을 배회하는 물의 손자이자 악마가 흔드는 공포의 회초리. 두려움에 사로잡힌 푸른발부비의 시퍼런 손이 깍지 껴 배를 봉인했다. 그러나 침몰은 날카로운 뱃길이 곡선으로 구부러지거나 뒤틀리며 꾸는 꿈, 먼저 수장된 선원들이 다가와 손나팔을 만들며 경고했다. 도망쳐
ㅡ《문장 웹진 콤마》 2024년 9월호 ----------------------------------
* 이윤길 시인(소설가) 1959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강원도립대 졸업, 한국해양대 대학원 국제지역문화학 석사 시집 『진화하지 못한 물고기』, 『대왕고래를 만나다』, 『파도공화국』, 『짐승이 우글우글하다』, 『주문진』 소설 『남태평양』 등 2009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2011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대상, 2021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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