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죽음과 죽음 속에 들어간 자들의 상태에 관하여 명백히 말하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답변을 분석해 보도록 하자. 3500여년전에 고대 아라비아의 우스 땅에 살고 있던 하나님의 사람은 나무는 베임을 당할지라도 옛 뿌리는 다시 움을 틀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인간이 죽을 때에는 “그가 어디 있느뇨?”라고 욥은 질문하였다(욥 14:7-10).
(1) 하나님은 무엇으로 인간을 만드셨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 2:7 상단).
(2)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무엇이 되었는가?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단). ☞ 즉시 두뇌가 활동을 개시 하였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피가 인간의 혈관을 따라 흘렀다. 의식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 발생했을까? 흙이나 신체, 생기 속에 의식이 있던 것은 아니다. 의식은 생기가 흙, 곧 인간의 신체와 연합한 결과로 발생하였다. 의식은 전적으로 신체의 연합에 달려 있다.
(3) 생기가 거두어지면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되는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숨(결)”이다(욥 27:3 공동번역). 따라서 생명의 원리인 인간의 호흡이 거두워 지면 신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심장은 박동을 그치고, 두뇌는 작용을 그치며, 혈액은 순환을 중단한다.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되는가? 사라진다. 다윗은 “주의 영(호흡)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라고 말한다(시 104:30 상단; 104:29 하단).
(4) 사후에 인간이 생각하는 일, 곧 지성은 어디로 가는가?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
(5) 죽은 자는 얼마나 많이 알까?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전 9:5 상단).
(6) 의인은 죽어서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시 115:17). 시편 6:5; 88:10-12 을 읽으라.
(7) 예수는 그의 목소리가 죽은 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어디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 욥은 무덤 속에서 생명 주시는 분의 부르심을 기다릴 것임을 이해하였다(욥기 17:13을 읽으라).
(8) 무덤속에서 인간의 상태는 어떠한가?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 나사로의 죽음에 관련된 요한복음 11:11-14를 읽으라. 예수는 “잠자는 것”과 “죽음”을 교차해서 사용하셨다. 나사로가 죽어 있던 동안(나흘간) 그는 하늘, 지옥, 또는 연옥에 가지 않았다. 예수는 나사로를 살리실 때 지옥에서 불러 올리지도, 하늘에서 끌어 내리지도 않으셨다. “나사로야, 나오라”고만 말씀하셨을 뿐이다(요 11:43 하단).
(9) 욥은 자기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이라고 기대하였는가?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욥 14:11-13). ☞ 욥은 부활이 일어날 때 다시 살리라는 소망을 가졌다(욥 14:14, 15). 그는 육체로부터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하였다(욥 19:23-27). 부활은 인간이 무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다(고전 15:16-22).
◎ 결 론 유월절 설교에서 베드로는 다윗이 죽어서 하늘에 가지 않고 무덤 속에서 쉬고 있다고 선포하였다(행 2:29, 34을 읽으라). 살아있는 동안에 그의 재림을 맞기 위하여 준비하자. 이것은 바울의 소망이었다(딤후 4:6-8을 읽으라). 이것은 우리의 소망도 될 수 있다.
3. 영혼이란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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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물질도 아니며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지성을 갖고 있으며, 인간에게 있어서 불멸의 부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영혼은 보고, 듣고,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또한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미래의 일까지도 예언할 수 있다고 한다. 영혼은 신체가 죽을 때 개인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천당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생리학이나 해부학에 관한 여러 책을 찾아 보아도 영혼에 해당하는 것을 결코 찾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
(1) 영혼에 대한 성경적 의미는 무엇인가? 구약 히브리어 세 단어와 신약 헬라어 한 단어가 영혼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① 느쉬마는 사 57:16에서 “나의 지은…혼이”로 번역되었다. ② 느디바는 영문 흠정역 욥 30:15에서 “그들이 내 영혼을 바람같이 모니”로 번역되었다(느쉬마와 느디바는 영문 흠정역에서 각 1회만 “영혼”으로 번역되었다.). ③ 네페쉬는 구약에 752회 나타나는데 43가지 다른 말로 번역되었다. ④ 프쉬케는 신약 헬라어로서 105회 사용되어 6가지 말로 번역되었다. ☞ 영혼에 관한 성경의 정의는 다양하다. 어떤 곳에서는 개인의 생명을, 다른 곳에서는 살아있는 개인을, 또 어떤 절에서는 동물을 가리킨다. 영혼은 개인의 애정과 사랑을, 개인의 죽은 시체를, 또는 사람의 영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서도 신체를 떠나 영원히 존재하는 인격이나 총체를 가리키는데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2) 하나님은 창조시에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을 주셨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 때때로 영혼이란 용어는 전 인격, 또 인간의 자연적 생명을 가리키며, 마음을 가리킬 수도 있다. 출애굽기 16:16에서 영혼과 사람이 교차적으로 사용되었다. “너희 인수대로”라는 말은 “너희 영혼 수대로”라고 난외주(영문 흠정역)에 번역되어 있다. 첫 살아있는 인격이 산출된 것은 생기, 또는 생명의 본질이 흙과 연합함으로서이다.
(3)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하나님은 인간을 손수 빚어 만드셨으나 동물은 그 입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주어져서 생각하고 추리하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물에게는 그러한 추리력과 이해력이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인간에게 마음이 전혀 없다면 옳은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시비를 가리는 것은 마음이다(신 11:18; 시 103:1 참고). 기억하는 일은 마음을 통해서이다.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4) 영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① 이것은 인간의 행동을 지시한다(시 119:167과 롬 7:25 비교). 전자는 영혼을 순종의 매체로, 후자는 마음의 매체로 언급한다. ②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얻는다(시 13:2). ③ 이것은 어떤 것을 거절한다(욥 6:7). ④ 이것은 슬픔을 당할 수 있다(욥 30:25). ⑤ 이것은 슬픔의 쓰라림을 느낀다(욥 10:1; 막 14:33, 34). ⑥ 이것은 좋은 일로 만족할 수 있다(시 63:5). ☞ 이것들은 모두가 마음의 작용들이다.
(5) 성경은 인간의 몇 부분에 대해 말하는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로마서 8:10; 고린도전서 5:3; 7:34을 읽으라. ☞ 일반적으로 성경은 몸과 혼 또는 몸과 영을 언급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 개념들을 결합하여 인간의 어느 부분도 성화의 체험으로부터 제외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인간은 완전한 전체이다. 성경은 결코 인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의식적 총체를 말하지 않는다.
(6) 영혼이 죽을 수 있는가?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 야고보서 5:20; 욥기 7:15을 읽으라.
(7) 가인은 아벨을 진짜로 죽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진짜 아벨이 살고 있는 몸만을 죽였는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8-10). ☞ 여호와는 “아벨이 하늘에 올라와서 네가 그를 살해하였다고 말하였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히브리서 11:4에서 아벨이 죽었음을 확증한다.
(8) 아담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5). ☞ 아담의 죽음에 대하여 본절은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아담이 금단의 과일을 먹을지라도 죽지 않는다고 한 사단의 말은 거짓임이 자명해졌다(창 3:4). 또한 예수는 사단에 관해 말씀하시기를 “그는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이다 라고 하셨다(요 8:44 하단). “아담은 죽지도 않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의 영혼이었다”고한 사단의 엄청난 거짓말을 시인함으로써 우리는 사단을 옹호하지 말아야만 한다.
(9) 노아의 방주 밖에 있던 자들은 안에 있던 자들보다도 더 많이 살았는가?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이 남았더라”(창 7:21-23). ☞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두 멸절 당하였다. 여기서 짐승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동일한 용어가 적용되었다. 각 동물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각 사람의 경우에도 어떤 부분이 살아 남았다는 주장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전 3:19 하단).
◎ 결 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때가 오고 있다(욥 14:14, 15 참고). 인간은 부활시에 불멸성을 받게 될 것이다(고린도전서 15:51-53을 읽으라). 그리스도를 그대의 구주로 영접하라. 그리하면 영생은 그대의 것이다(롬 6:23).
4.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교통할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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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람이 죽은 사람과 교통할 수 있다는 이론은 강신술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 용어가 아니다. 이 이론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자연적인 불멸을 기본적으로 받아 들인다. 만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교통할 수 있는 통로가 영원히 개방되어 있다면 인간이 죽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생명의 정반대이다. 생명과 사망의 차이는 지식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있다. 솔로몬은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라고 선포하였다(전 9:5 상단).
(1) 첫 영매(靈媒)는 누구였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2) 첫 영매는 무슨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가?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고후 11:3 상단). ☞ 이 날로부터 영매의 영과 접촉하면 미혹당하기 마련이었다. 사단은 뱀을 지배하였다. 그는 마치 뱀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하와는 자기가 뱀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사실상 그녀는 마귀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귀는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로 언급되고 있다(계 12:9 상단).
(3) 뱀은 하와에게 무슨 근본적인 거짓말을 하였는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 마귀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와 상반되게 그의 거짓말에 따라 행동하도록 했을 때, “저는,” 예수가 말씀하신대로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하단).
(4) 모세는 어떤 종류의 마술들과 금지된 신령 체험들에 관하여 경고하였는가?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신 18:10-12). 영매와 또한 영매에게 문의하는 자들은 모두 이스라엘에서 처형당하였다(레 20:6, 27).
(5) 사울 왕은 엔돌의 무당을 찾아갔을 때 선지자 사무엘을 보았으며, 그와 이야기 하였는가? 여호와는 사울 왕과 교통하는 것을 이미 거절하셨다(삼상 28:6을 읽으라). 사울은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음”을 주목하라(대상 10:13 하단, 14 상단).
(6) 죽는 자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을 홀리거나 사람들에게 위로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욥 7:9, 10).
(7) 무슨 조건 때문에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죽은 자는 잠들었으며 전혀 의식이 없다(전 9:5, 6, 10; 욥 34:14, 15을 읽으라).
(8) 무엇이 마지막 때 배교의 원인이 될 것인가?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딤전 4:1). ☞ 이들 영들과 그 영매들은 미혹하는 영들이다. 그들은 기만하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으로부터 떠나게 하며 마귀의 교훈을 선포하도록 한다. 그들은 이적을 행하는 영들이다. 그들의 초자연적인 현현은 기만하는 일을 완성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아낸다. 마태복음 7:22, 23; 24:24; 데살로니가후서 2:9; 요한계시록 13:13, 14; 16:13, 14을 읽으라.
◎ 결 론 인간의 죽음은 인간 창조의 역행이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그를 빚으신 후에 그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후에야 비로소 인간에게는 의식과 사고가 생겼으며 또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죽음이 닥칠때 “그 호흡이 끊어지고”, 인간은 생각과 동작을 그치며 전적으로 무의식 상태가 된다. 그의 몸은 나온 바 본래의 흙으로 돌아간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죽으면 “사망의 잠”을 자게 된다(시 13:3). 부활할 때까지(요 5:28, 29) “영원히 잠들어 깨지 못하므”로(렘 51:39)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는 전혀 교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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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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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관하여 상당히 많은 신앙이 유포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은 너무나 자비로우시므로 아무도 처벌하지 않으시리라고 믿는다. 다른 이들은 악인들은 지옥으로 보내어져서 그곳에서 영원히 불에 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악인들은 지옥에서 멸절되어 그 존재를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1) 죄인들은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인가?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잠 11:21 상단).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사 13:11).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벧후 2:9).
(2) 그리스도는 악인들이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가르치셨는가?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 5:29).
(3) 악인들은 어디에서 형벌을 받을 것인가?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잠 11:31). ☞ 베드로는 이 점에 관하여 명백히 증언하고 있다(베드로후서 3:7을 읽으라).
(4) 최후의 형벌로 말미암아 죄인들은 무슨 결과를 당할 것인가?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하단). 로마서 6:23 상단 참조. ☞ 여기의 사망은 둘째 사망이다. 요한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였다”고 묘사한 것은 이 사망을 일컬어 말한 것이다(계 20:9 하단). 이 일은 천년기가 끝났을 때 둘째 부활 이후에 일어날 것이다.
(5) 악인의 사망은 얼마나 완벽할까? ① 악인들은 멸망될 것이다. 시 145:20; 잠 10:29; 시 101:8; 빌 3:19; 시 37:38; 딤전 6:9; 시 92:7; 살후 1:9; 잠 13:13 ② 그들은 멸절될 것이다. 시 37:20; 살후 2:10; 잠 19:9; 벧후 2:12; 눅 13:3 ③ 악인은 불에 타버릴 것이다. 마 3:12; 히 6:8; 마 13:30; 말 4:1, 3 ④ 그들은 소멸될 것이다. 사 1:28; 시 37:20 ⑤ 그들은 삼켜져 버릴 것이다. 시 21:9; 히 10:27; 계 20:9 ⑥ 그들은 땅에서 끊어질 것이다. 시 37:2, 9, 22, 28, 34, 38; 사 33:12; 잠 2:22 ⑦ 악인은 완전한 파멸에 처해질 것이다. 히 10:39; 벧후 3:7
(6) 어디에서 악인은 종말을 고할 것인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 3).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계 20:7-9). ☞ 이것은 베드로후서 3:9-12의 말씀과 조화되는데, 베드로는 땅이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13절에서 언급된다. 악인에 대한 형벌은 땅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사 24:21).
(7) 지금 악인들은 지옥불에서 형벌 당하고 있는가? 아니다. 이 일이 일어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벧후 2:9). 형벌에 앞서서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
(8) 심판시에 무엇을 결정하는가?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에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실 때까지 세상은 심판 받지 않았으며, 아직 심판 받지 않았다. 최종적인 실행 심판일은 아직 미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천년기가 끝날 때에 일어날 것이다. 요한계시록 20:11-15; 베드로후서 3:7을 읽으라.
(9) 인간의 어느 부분이 지옥불에 던져질 것인가?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3-48). ☞ 온몸, 곧 전 인간이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마태복음 5:30을 읽으라).
(10) 얼마나 오래 악인들이 불에 탈 것인가? 악인들이 내던져지는 불못은 지구를 태워 정결하게 하는 동일한 불이다. 이것은 영원히 타는 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은 구속 받은 자들을 위하여 땅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베드로후서 3:13; 마태복음 5:5을 읽으라).
(11) 지옥불이 꺼질 수 없다는 것은 불이 항상 타게 될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고대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불을 놓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렘 17:27 하단, 고후 36:19-21을 읽으라). 여기에는 예레미야 17:27의 성취에 대한 설명이 있다. 예루살렘은 지금 불타고 있지 않다.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끌 수 없는 불을 가리킨다. 꺼지지 않는 불은 태우고 있는 것이다. 멸절된 다음에는 반드시 꺼지기 마련이다.
(12) 영원한 불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 이것은 악인이 영원하다거나 불이 영원히 탈 것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유다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7절)고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불은 지금 타고 있지 않다. 사해는 이들 도시들이 위치하였던 곳이다. 베드로는 어떻게 불이 이들 도시들을 잿더미의 폐허로 만들었는지에 관해 말한다(베드로후서 2:6을 읽으라).
(13) 이러한 본문들 안에서 영원이란 무슨 의미인가? 요한계시록 14:10, 11; 20:10을 읽으라. ☞ 요한은 짐승을 경배하던 자들이 불과 유황 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세토록”이란 말은 헬라어에서 시대들의 시대들까지(unto ages of ages)란 뜻이다. 이 표현은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되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끝없이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것과 관련된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추출해 낸 것이다. 표현 자체는 꼭 한없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악인의 형벌은 어느 일정 기간일 것이며 결코 한없는 기간이 아니다. 이 사실은 악인들의 운명은 멸절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다른 성경절들로써 명백해진다(마태복음 10:28; 요한계시록 20:14을 읽으라).
◎ 결 론 한가지 사실은 명백하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택한다면 그대는 결코 지옥에 던져지는 것에 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6-20).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멸망시키셔야만 한다(출 34:6, 7을 읽으라). 하나님은 우주의 선과 그의 심판을 맞게 되는 자들의 선을 위하여 공의를 실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인들에게 그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도 그의 뜻에 순종하도록 강제하실 수 없다. 악인들은 그들이 선택한 결과로 그 운명을 맞는다.
6. 악인의 종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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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살아있다. 인류는 영원히 살기로 운명지어져 있는가? 하나님은 의인은 물론 악인들에게도 영생을 약속하셨는가? 하나님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실수인가?(롬 6:23). 성경에서 인간의 생명은 그림자, 또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안개로 묘사되었다. 인간은 필멸적(必滅的) 존재이며(욥 4:17), 부패한다(고전 14:53, 54). 인간영생의 불멸성을 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 안에 자연적인 불멸성이 없음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는 것이다(롬 2:7).
(1) 누구를 통하여, 또한 무슨 수단으로 영생과 불멸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2) 영생의 원천은 무엇인가? 불멸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속한다(딤전 1:17; 6:16).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 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 15). 요한일서 5:11-13을 읽으라.
(3) 복음을 거절한 자들은 영생을 얻을 것인가? 베드로는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라고 묻고 있다(벧전 4:17 하단). 다윗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대답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시 145:20). 잠언 13:9을 읽으라.
(4) 미래의 형벌을 가리키는 말로서 멸하다는 말을 하나님이 사용하실 때, 이것은 죄인을 영원히 괴롭히시겠다는 의미인가? 하나님이 멸하다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살펴보자.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멸하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 6: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혈육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창 6:19) 위협하고 있는 멸망으로 그들의 생명이 끝날 것임이 분명하다. 방주 안에 든 자들만이 계속해서 살아있는 존재가 될 것이었다.
(5) 홍수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땅에서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 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이 남았더라”(창 7:21-23). ☞ 여호와가 악인들을 처벌하신다는 의미로 멸한다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이다. 멸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하”는 창세기 6:7에서 씻다, 도말하다, 없게 하다, 지워버리다, 벌하다의 의미이다.
(6) 악인의 길은 어디에 도달하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마 7:13). ☞ 멸망이란 단어를 연구하게 되면 허지로 돌아감, 파괴, 폐허, 살상 또는 참해(慘害)의 의미를 가진다. “멸하다”와 멸망은 결코 고통 중에 살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지 않다.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에 멸하다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7) 어느 곳에서 악인들은 멸망될 것인가? 예수는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하단). ☞ 지옥은 헬라어로 게헨나인데 이곳은 예루살렘의 서남쪽 성벽 가까이 있던 파괴의 장소였다. 이것은 도시의 쓰레기장이었다. 더러운 것들을 소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였다. 인간은 불 속에서 살 수 없다. 불은 사람들을 완전히 태워버릴 것이다.
(8)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은 어떻게 마쳐질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는가?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빌 3:19 상단).
(9)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처벌될 것인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 9). ☞ 살아있는 존재의 멸망은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아는 일이다. “영원한 멸망”이란 말은 그 결과에 있어서 영원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완결된 행동이다(유 7절을 읽으라).
(10) 악인은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시 104:35 상단).
(11) 악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남겨질 것인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말 4:1).
(12) 마귀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마귀도 역시 멸망될 것인가?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 결 론 악인의 멸망은 완성될 것이다. 그들의 멸망은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우주 어디에서도 죄나 죄인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악인은 멸망하리라”(시 37:20).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잠시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9, 10).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이 죄의 결과로 영원히 손상되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기 악인이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반박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나훔 1:9). 니느웨의 회개치 않는 자들을 멸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반역하여 마음이 완고해진 자들을 궁극적으로 멸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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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원한 고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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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악인들이 영원히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이론을 지지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성경상의 지옥이란 말은 지하의 불 못으로서 악인들의 영혼이 사망시에 그곳에 던져져서 영원히 불꽃에 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옥을 언급하고 있는 각 성경절을 조심성 있게 조사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1) 성경에서 지옥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옥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① 지옥은 무덤을 의미한다. 지옥이 구약 성경에 31회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매 경우에 무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스올에서 온 것이다. 신약 성경에는 24회의 지옥이란 말 중에 11회가 무덤을 의미하는 헬라어 하데스에서 온 것이다. 하데스는 스올에 해당하는 헬라어이다. 시편 16:10과 사도행전 2:27을 비교하라. 모두 무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② 지옥은 어두움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지옥이란 단어가 1회 헬라어 타르타루수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물질적 우주의 어두움을 언급하는 말이다(베드로후서 2:4; 유다서 6절을 읽으라). ③ 지옥은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한다. 신약 성서 중 12회가 헬라어 게헨나에서 나왔는데 이것은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며, 이 골짜기는 바로 예루살렘 밖에 있다. 그리스도는 계시록 20장의 천년기 끝에 악인들이 불 못에서 어떻게 멸망되는지를 설명할 때 이 골짜기를 사용하셨다. 마가복음 9:43-48; 요한계시록 20:7-9, 14, 15; 21:8을 읽으라.
(2)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4). ☞ 예수가 게헨나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 백성들은 그가 힌놈의 골짜기, 곧 도시 쓰레기장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의 초기 역사 때문에 그곳은 심판의 상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골짜기에서 그들의 우상들과 그들의 우상 숭배적인 조상들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렘 7:32, 33). 불이 구더기를 삼키지 않는 일도 있었다. 구더기는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헬라어 스콜레크스는 이 경우에 구더기를 가리킨다.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날마다 계속해서 오물들을 공급함으로 불이 꺼질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오늘날 그곳에 전혀 불이 타고 있지 않다. 구더기의 멸망이 완성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말이다.
(3) 영원이란 얼마나 긴 세월인가? 영원이란 말이 성경에서는 거듭 거듭 반복해서 무한정한 시간을 가리키기 보다는 한정된 시간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다. ① 빌레몬서 15절은 우리에게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영원히 받아 들여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네시모가 죽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종이 될 수 없었다. ② 신명기 15:17은 자기의 주인을 영원히 섬기는 종에 관하여 말한다. 그러나 이 영원도 종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③ 역대상 28:4는 다윗이 영원히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작 40년밖에 다스리지 못하였다. ④ 요나 2:6은 고기 배 속에서의 요나의 경험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요나는 자기가 그곳에 영원히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가 그 고기안에 3일 낮과 밤 동안 있었다고 말씀하셨다(마 12:39, 40). ☞ 영원의 길이는 적용된 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그것이 적용된 주제의 본질에도 관계가 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생명의 영역에 적용해서 하나님은 영원히 사신다라든가, 성도는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끝이 없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질상 불멸의 분이요, 성도는 불멸성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악인과 사단이 영원히 불탈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살아 있는 한 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끝이 없는 시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질상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으며 그들에게 영생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요일 5:12). 이것은 결코 끝이 없는 상태를 필연적으로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단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계속되는 길이는 그것이 적용된 대상에 달려 있다.
(4) 사단은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는 어떻게 마지막으로 끝을 당하게 될 것인가?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 두로 왕의 상징 아래에서 사단은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다.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겔 28:18, 19).
(5) 지옥 불이 꺼질 것인가? 바벨론의 회개치 않는 자들을 멸망시킨 것과 똑같이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멸망시킬 것이며 우주에서 죄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실 것이다.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사 47:14). ☞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 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이러한 고난은 마귀가 재로 변할 때까지만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고난의 연기가 올라갈 때, 연기는 영원히 사라진다(요한계시록 14:11을 읽으라).
(6) 영원한 형벌이 있을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는 악인들의 형벌이 완료된 행동이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 본질상 영원한 것이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 사실상 형벌의 행위는 그토록 최종적이며 완전할 것이기 때문에 악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시 37:9, 10 참고).
◎ 결 론 불못이 왜 있게 되는가? 우주를 정결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마귀와 모든 죄와 죄인들은 멸망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그 누구도 지옥 불에서 끝을 맞을 필요가 없다. 예수만이 우리의 유일한 탈출구이다(요한복음 3:16을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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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리스도는 지옥에 내려가셨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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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이 이생을 떠난 후에도 구원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죄인들이 사망시에 영계로 가며 그곳에서 다시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말한다.
(1) 그리스도는 지옥에 내려가셨는가? “(다윗이)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행 2:31). ☞ 본절에서 음부(지옥)라고 번역된 단어는 고린도전서 15:55에서 무덤으로 번역된 말과 동일하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무덤아-영문흠정역)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난외주(영문 흠정역)는 무덤대신 지옥이란 말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무덤에 남겨둔 바 되지 않으셨다. 그는 살아 나셨다. 사도는 예수가 사망시 고난의 장소로 내려 가셨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는다.
(2) 사도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또한 죽으신 이후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쳤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22-24, 32). ☞ 그리스도는 일어나셨으며 죽음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셨다. 그는 그를 사랑하고 그를 섬기는 이들을 향하여 약속을 주셨다.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역시 살리라”(요 14:19 하단 영문 흠정역).
(3) 죽은 자의 침례는 어떠한가? 이러한 관습을 따라야 할 것인가? 성경은 이것을 지지하고 있는가?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침례를 받느뇨”(고전 15:29). ☞ 본절에서 바울은 침례를 받지 않고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침례를 받는 그릇된 관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죽은자 편의 어떠한 결단도 없이 그들의 친척과 친구들이 대리 침례를 받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바울은 인간이 죽은 이후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또한 침례에 의해 유익을 얻고 구원받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여야 한다. 사망은 인간에게 부여된 은혜의 기간을 종결 짓는다(시편 49:7-9을 읽으라). 가장 큰 의인일지라도 자기 영혼만을 구출할 수 있을 따름이다(에스겔 14:14, 16 을 읽으라).
(4)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무엇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 4). ☞ 바울은 예수가 부활하셨음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그는 죽어있지 않으시다. 다음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보증이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논증을 끝낸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2-24). 바울의 주제는 부활의 확실성이지, 죽은 자의 상태나 죽은 이후에 두 번째로 갖게 될 구원의 기회등에 관한 것은 아니다.
(5) 죽은 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었는가?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6). ☞ 성급하게 본절을 읽게 되면 마치 죽은 자들이 복음을 전해 들은 것처럼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본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 위하여 (현재) 죽은 자들에게도(과거에)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복음이 전파되었던 사람들은 살았었으나 지금 그들은 죽어 있다. 죽은 자들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죽은 자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전 9:5 중단).
(6) 그리스도는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어떻게 전파하셨는가?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9, 20). ☞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노아 당시의 홍수 이전 사람들에게 전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죄의 감옥소에 갇혀 있었다. 성령은 노아의 봉사를 통하여 갈바리에서 준비된 것을 홍수 이전 사람들도 받을 수 있게 하셨다. 사실상 마귀의 감옥 속에서 인간을 탈출 시키고자 이것 외 다른 어떤 것이 준비되지 않았다(행 4:12). 성경은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들 개념을 가르치지 않는다. 영이란 용어는 단순히 인간을 의미하기 위하여 때때로 사용되고 있다(요일 4:1; 딤후 4:22을 읽으라).
◎ 결 론 성경은 그리스도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개인적으로 가서 전도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노아의 봉사를 통하여 성령으로 전도하셨다(창 6:3; 벧후 2:5). 그리고 “옥에 있는 영들”은 살아 있는 남녀들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어느 한 구절도 지옥-불못-을 감옥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봉사는 이사야가 한 다음과 같은 말에 잘 개괄되어 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6, 7). 죄의 감옥으로부터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은 복음이다. 구원의 문이 지금 활짝 열려있다. 내일은 너무 늦을런지 모른다. 죽은 다음에는 결코 또 한번의 기회가 마련되지 않는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사 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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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회개한 강도는 하늘에 갔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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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멸성을 갖고 있으며 사망시에 자기의 보상을 받는다는 이론을 지지하기 위하여 매우 자주 이용하는 유명한 성경 구절은 십자가에서 회개한 강도에 대한 설명이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2, 43).
(1)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던 바로 그날 회개한 강도가 하늘에 갈 것이라고 약속하셨는가? 원래 기록된 대로의 헬라어는 구두점이 전혀 없다. 부사 “오늘”은 헬라어에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와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사이에 위치한다. 헬라어 용법에 의하면 부사는 어느 구절이든지 수식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예수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강도가 그날(오늘) 예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가, 아니면 그날(오늘) 강도에게 네게 이르노니 라고 말씀 하셨는가? 예수께서 의도한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의 길은 특별한 연구에 있어서 남아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성경적 해답을 이해하는 것이다. ☞ 신약 성경의 최초의 헬라어 사본들에 구두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쇄업자인 마누티우스(Manutius)에 의하여 구두점이 도입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15, 16세기에 베니스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구두점들은 인간적인 것이며 변경될 수 있는 것이다. 쉼표의 위치에 따라 성경 구절의 의미가 바뀌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2)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신약 성경에서 낙원은 누가복음 23:43; 고린도후서 12:4; 요한계시록 2:7에만 나온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2-4에서 낙원을 하늘과 동의적으로 사용하였다. 요한계시록 2:7에 언급된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1-3, 10; 22:1-5에서 생명나무는 새 땅, 새 예루살렘, 생명강, 하나님의 보좌와 연관되어 있다. 신약 성경에서 낙원은 하늘의 의미로 일관성있게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3)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어디에 가셨는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눅 23:52, 53).
(4) 그리스도는 죽으시던 날에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셨는가? 아니다. 사흘후에 부활하신 다음에 예수는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 20:17).
(5) 예수는 언제 사람들이 낙원에서 그들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셨는가? 강도에게 약속하기 적어도 24시간 전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요한복음 14:1-3의 약속을 주셨다. 그는 아버지 집에 있는 거처에 관하여, 또한 자기 백성들을 자기에게로 영접하기 위하여 오실 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마 16:27; 25:31, 34을 읽으라).
◎ 결 론 강도가 십자가에 달리던 날에 하늘로 올라 갔다고 말하는 것과 이것을 인간의 불멸을 지지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잘못 사용한데 달려 있다. 이것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른 모든 구절들이 명백하게 가르치는 바와 상치되므로 이 본문을 교리의 기초로 만들기 위하여 성서를 해석하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니다. 또한 요한복음 19:31-33에 따르면 십자가에 못 박히던 날에 강도는 죽지 않았다. 부활 후에 영생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유일한 길이 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질 것임을 보증한다(고린도전서 15:16-22을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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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자와 나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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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적인 불멸에 관한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널리 사용되는 또 다른 성서 구절은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이다(누가복음 16:19-31을 읽으라). 본 성서 구절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두 사람에 관한 실제적인 역사로 본다. 다른 사람들은 비유로서 사용된 가공적인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두 가지 교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첫째, 인간은 사망과 부활 사이에 의식이 있다. 둘째, 인간은 죽자마자 그들의 보상을 받든지 형벌을 받는다.
(1) 아브라함의 품에 천사에 의해 옮겨진 자는 누구인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2). ☞ 만일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설명한 것이라면 우리는 죽은 거지는 자기 누더기와 상처를 가진 육신으로 아브라함 품에 안기게 되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2) 부자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2-24).
(3) 죽어 무덤에 장사된 다음에 부자는 살아났는가? 아브라함 품의 나사로는 물질적인 참 나사로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었다고 대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이야기는 부자나 나사로의 영혼에 관해 조금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그와 같이 덧붙일 수 있는 권리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받은 보상의 자리에 육체적으로 존재해 있는 것이다(“그 손가락”, “내 혀”).
(4) 이 비유가 명백하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미래의 형벌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사망과 부활 사이의 인간 형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가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눅 15:2에 의하여 도입되고 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 예수는 이러한 비난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예수는 몇 가지 비유들을 도입하셨다. ① 누가복음 15:3-7은 잃은 양의 비유이다. 바리새인들이 잃은 양을 우리에 넣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것을 찾은 때에 기뻐함 같이, 예수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다(7절). ② 누가복음 15:8-10절은 은전에 관한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여인이 잃은 은전을 찾아야만 하며, 그것을 발견하면 기뻐할 수 밖에 없다는데 대하여 동의할 것이었다. 다시 예수는 하늘에서 회개하는 한 죄인을 두고 크게 기뻐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③ 누가복음 15:11-32은 탕자의 비유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을 대항하여 그의 요점을 분명히 하셨다. 그들은 양과 은전을 되찾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으며 찾았을 때 기뻐하였다. 그러나 잃어버린 인간이 구원받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왔을 때는 맏형처럼 분을 내었다. ④ 누가복음 16:1-13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에 감동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였으며 인간을 구원하는 그의 사업에 대하여 전혀 동감하지 않았다. 14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비웃었다고 말한다. ☞ 누가복음 16:15-18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율법의 지속성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어긴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의 치료제 되시는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었다. 율법은 구원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실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준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⑤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그리스도를 거절하므로 유대인들에게 미칠 결과들이 생생하게 예시되었다.
(5) 이 비유에 사용된 “음부(지옥)”라는 말은 악인들의 형벌의 장소인 지옥불인가? 아니다. 헬라어는 하데스로서 무덤을 의미한다.
(6) 그러면 그리스도는 부자를 음부(하데스 또는 무덤)에 살아있게 하셨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 ① 그리스도는 백성들이 서있는 입장에서 그들을 만나셨다. ② 사망과 부활 사이에 의식이 존재한다는 교리를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의 흔한 믿음으로부터 이야기 착상을 얻었다-이것은 성경에 배치되는 것이긴 하였으나 유대인들은 흔히 그렇게 믿었다(유대인들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기록한 “하데스에 관하여 헬라인들에게 준 강연”에 이 사실이 잘 입증되어 있다). ③ 그리스도는 이미 갖고 있는 견해들을 통해 백성들이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그의 비유를 꼴지었다.
(7) 이 비유가 가르치는 몇 가지 교훈들을 열거하면 어떤 것들인가? ①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이생에서이다. ② 죽은 후에는 결코 은혜의 기간이 없다. ③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의하며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구렁텅이를 만든다. ④ 비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부자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사이에서 대조를 이끌어 내고 있다.
(8) 부자는 누구에게 도움을 간청 하였는가?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 ☞ 그는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덧붙여서 도움을 청한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7, 28). 이러한 요청은 하나님이 자기를 전혀 경고하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께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9) 무엇이 더욱 중요한가? 기적인가, 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시니라”(눅 16:29-31). ☞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기적들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이 사실은 죽은지 나흘 만에 나사로를 살려내신 예수의 최후 기적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들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거절하였으며 심지어 나사로까지도 죽이고자 했다(요 12:9-11).
(10) 부자와 아브라함 사이에 있던 구렁텅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순종의 구렁텅이였다. 아브라함은 믿었으며 믿음과 순종 중에 하나님을 섬겼다. 유대인들은 그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메시야를 거절하고 있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 결 론 예수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담벽을 헐어 버리고자 오셨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오셨다. 이 비유는 미래의 형벌이나 사망과 부활 사이 인간의 형편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영혼 불멸의 교리는 여기에서 전혀 지지받고 있지 못하다. 죽은 후 저 세상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은 부활에 의해서이다.바울은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고전 15:16, 18 공동번역).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를 위해 지금 준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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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절대로라면. 안상홍씨도. 무덤속에서 주무시고있겠죠. 또한 사람들을 미혹한 자칭 그리스도.이니....;; 형벌을 피할수없겠죠 | |
첫댓글 재림예수님이 이혼을하고 장길자라는 자기교인을 둘째신부로 맞아서 밤마다 재미보고 냉면먹다 급사했다!! 말이안되는거죠
허허참 말버릇 고치시라니까 그러시네!! 고후11:2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함이로다 하였으니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은 두번째 남편을 맞아서 밤마다 재미보고 밥먹고 그래야 합니까!! 이거 댓글 걸기도 찝찝하군요 !! 거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말을하지마시길 바랍니다.' 괜히 줏어들은 이야기로 입
불멸, 그것은 하나님께만 속한속성입니다. 율법에대한 순종의 댓가로 주어지는. 그리고 태초에 불순종한 댓가로 인간들은. 죽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을수있지요.
적어도 안상홍씨가 다시오시는 예수라면 앞의 예수님처럼 결혼이나 이혼을 안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앞의 예수님이 죽은것은 우리의 죄를위해 대속때문에 대신죽었다지만 죄를 해결한후에 또 오신 예수님이 죽는것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또 죽을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가니 파이터님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아무리그래도 부인할수없는 사실아닙니까.저도 자제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혼하고 자기교인 장길자와 재혼한후 여자하나님이라고 한건 사실이죠.
실제로 안상홍씨가 돌아가신뒤론 장길자씨가 교주노릇을하며 하나님이란 칭호를 사용하는게 사실아닙니까?
그래서 안증회 강정욱목사라는 분이 그런 모든 비리와 허위사실를 직접 경험 목도하고 나와서 전번에 간증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또 그들은 반대로 모함했다고 하더군요 파이터님도 직접 눈으로 보고 당해 봐야 깨닫게 될것이니 시간이 걸릴것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