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품을 싹쓸이하며 대국 이미지를 풍기는 중국 관광객들도 알고 보면 물건을 고를 때마다 주판알을 잘 튀기기로 유명하다. 어디에 가서 무슨 물건을 사야 가장 경제적인 지를 생각보다 꼼꼼히 따진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루이비통이나 헤르메스 등 명품 핸드백을 집중적으로 사 모은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구매하는 가격보다 절반이하여서 많이 살수록 이익이기 때문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미국에 가면 루이비통을 찾지 않고 아웃렛에 들러 코치 가방을 주로 찾는다.
호주에 가면 또 다르다. 큼지막한 싸구려 가방에다 A2분유를 마구 쓸어 담는다.
지난 2006년 분유 파동을 겪은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에는 호주 분유의 40-50%는 중국인이 소비하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이런 소비심리는 바로 돈벌이로 연결된다. 제조업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천친 난만하게 믿지 않고 해외에 아는 사람에게 구매를 부탁하는 중국인의 심리를 겨냥한 비즈니스다.
‘따이거우’라고 불리는 중국식 구매 대행은 젊은 대학생들이나 항공사 스튜어디스들 몫이다. 학비를 벌겠다며 시작했다가 대행업체를 차리거나 현지에 눌러 앉아 화교기업인으로 변신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영국서 분유 구매를 대행하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창고를 보유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벌인 케이스나 다니던 투자은행에서 나와 구매대행사를 차린 경우 등 다양하다.
수익모델은 주로 명품이나 화장품 등 중국 국내 상품과 질적 차이가 큰 물건을 대신 구매하고 배송해주며 차익을 남기는 구조다.
중국인 구매 대행의 격전지는 호주와 유럽과 미국 정도다.
호주에는 분유를 대신 사서 배송해주는 중국 식품 유통업체들이 난립해 있다. 2006년 중국에서 분유파동을 겪으면서 호주산 분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호주 통계에 따르면 중국 구매대행 업자 수는 4만 명이 넘는다. 구매 대행 업자 당 SNS로 관리하는 소매인 수는 평균 1000명 정도다. 평균 수익은 대략 50만 위안(약 8500만원)으로 현지에서도 중산층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도시인 뉴캐슬에서 구매대행을 하는 총저(丛喆)라는 사람은 뉴캐슬대학 MBA 출신이다. 지난 2013년 호주에 유학 온 그는 대리구매의 맛에 쏙 빠진다. 같은 반 중국 친구들이 대부분 구매대행을 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공부해서 얻는 수입보다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작년 3월에는 아예 호주에 법인을 등록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나선다.
추쯔자(楚仔家)라는 상호로 중국과 호주에 각각 법인을 등록했고 자신은 구매와 배송 영업을 하고 처는 홍보와 SNS 관리를 맡고 있다. 호주에서도 우우 부족 사태로 우유 구매를 제한하는 등 위기도 겪었지만 장사는 그런대로 잘 되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뉴캐슬시내 슈퍼마켓과 약국을 돌며 분유를 사 모은 후 중국에 배송했다. 이후 캐미스트 웨어하우스(ChemistWarehouse)라는 약국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상품 정보를 교환하게된다.
그러다가 중국 전자상거래 공룡기업인 알리바바의 하이타오에서 교역 단가를 회당 2000위안으로 제한하는 신규정이 지난해 나오면서 낌새가 이상해졌다. 당시에는 소규모 업체라서 영향은 없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알리바바가 직접 이 시장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아예 처음부터 비행기로 화물을 직송하고 있을 정도로 영업 물량이 많은 편이다.
뿐만아니라 컨테이너로 물건을 운송하는 업체도 가세하고 있고 기회를 노리던 호주의 캐미스트 웨어하우스도 중국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다.
인터넷 직구시장에 참여한 대형업체는 판매 신장률이 연간 3-4배에 이르면서 중국 소비자의 해외 구매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주로 명품 구매를 대행하던 유럽시장도 마찬가지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淘宝)에 서셴성(奢先生)이란 이름으로 점포를 개설한 크라티 씨는 명품 대행 업자다. 2011년부터 주로 스페인을 근거지로 직원 몇 명과 함께 물류회사를 차려 기업 부품 구매까지 대행해주며 연간 6000만 위안 정도 수입을 올렸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익이 50%에서 25%로 반 토막 났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아르메스 핸드백은 200%씩 남기다 반 토막이 났고 루이비통이나 디올 등 핸드백도 이익률은 40%에서 10%로 뚝 떨어졌고 명품 시계도 순익이 10%에서 3%대로 주저앉았다.
이유는 정부의 해외 관광객 송출 규정이 달라진 데다 텐마오(天猫) 징둥(京东) 카오라(考拉)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형 업체들은 보세구를 만들고 해외에는 창고까지 건립하면서 유통과 물류의 큰 손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유망 업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본 유치에다 빅 데이터까지 활용하는 추세다.
구매대행 업체들은 레드오션을 예감하고 아예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일찍이 진출해서 구매대행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로만다씨는 요즘 이주 알선과 부동산 중개에 푹 빠져 있다.
1989년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해 온 그는 2000년까지는 주로 대형 TV를 중국에 공급해 돈을 번다. 중국인들이 해외구매에 눈을 뜬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일용품을 공급하며 황금시대를 만끽한다.
2008년 이후에는 아이템을 식품이나 피부 보호제 같은 화장품으로 바꾼데 이어 요즘에는 중국 부자들을 대상으로 부동산이나 예술품 포도주 구매와 이민수속을 주로 대행한다.
10만 위안 이하의 거래는 직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16% 정도 되는 VIP 고객을 대상으로 소피아 경매나 이민자의 부동산 중개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익률이 5%-8%인 구매대행에서 8%-10%정도인 도매를 거쳐 15-20% 이익이 나는 부동산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구매대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 떡을 팔면서 떡고물을 손에 묻히는 정도의 수익모델이진만 고객을 발굴하거나 VIP를 위한 서비스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민 대행도 처음에는 외국 상품을 써보게하는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논리다. 게다가 구매대행 과정에서 만난 소비능력을 가진 VIP 고객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연락을 취하다보면 회사와 2차 적인 거래관계도 가능하다.
따라서 구매대행은 중국 상품과 해외상품의 가격과 품질이 차이가 나는 한 유망직종임에 트림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국시장의 변화에 따라 해외 구매 대행도 가격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계속 새롭게 변신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