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최동단에 있는 핀란드는 긴 겨울과 백야로 기억되는 나라로 영토의 크기는 한국의 3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우리의 10분의 1에 불과하며 국토의 70%는 숲으로 덮여있습니다. 이곳 핀란드 국민은 자작나무로 대표되는 대자연의 혜택을 받으며 국가경쟁력 세계 1위, 국가 투명성 1위, 범죄율 세계 최하위라는 살기 좋은 나라에 살고 있는데요. 특히 국민소득의 45%를 세금으로 납부해 일궈낸 복지가 핀란드를 은퇴자와 노인들의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로푸키리’
핀란드 수도 헬싱키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 이곳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평균 나이 70세가량인 58가구 69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곳으로 얼핏 보면 여느 요양원(주1실버타운)과 다를 게 없는데요. 하지만 알고 보면 노인들이 직접 아파트 설계와 디자인을 계획한 데다 공동의 생활 규칙까지 정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아파트입니다.
‘로푸키리’, 우리말로 ‘마지막 전력질주’라는 뜻의 이 아파트는 지난 2006년 만들어진 실버공동체입니다. 로푸키리가 만들어지기까지 6년이라는 제법 긴 세월이 걸렸는데, 2000년에 갓 은퇴한 할머니 10여 명이 “노인요양시설에 가지 말고 노인 공동체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게 그 시작이었습니다. 서로 도와가며 외롭지 않게 인생을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죠. 곧 이들은 헬싱키 시에 “시유지를 염가에 임대해 달라”고 요청했고, 노인 자살로 골치를 앓던 시청에서 선뜻 땅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이 후, 노인들은 주택 조합을 설립해 아파트를 세웠는데요. 호텔처럼 1층과 꼭대기 층에 공용공간을 넣고, 2~6층에 살림집 58채를 배치했으며, 입주금(56m²·17평형 2억 5,500만 원)도 시가보다 저렴했습니다. 이런 탓에 로푸키리가 생긴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60~80대 노인들의 연락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로푸키리 입주자인 안냐 샤르케(73)씨는 “노인끼리 산다는 점은 같지만, 수동적으로 돈을 내고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요양원과 달리 로푸키는 엄연한 내 집”이라고 했습니다. 식사·청소·빨래·건물 관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일을 노인들끼리 협동해서 해결하는 것이죠. 그리고 입주자들은 매주 월~금요일 오후 5시 공동 식당에 모여 다 함께 저녁을 먹는데, 6개 조로 나눠 매주 돌아가며 밥을 짓습니다. 더불어 세탁실·관리실·사우나·체조실·회의실 청소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로푸키리는 노인복지 선진국인 핀란드에서도 최신 모델로 꼽히는데요. 냉전 종결로 이웃한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핀란드 경제는 1990년대에 극심한 불황을 겪었고, 노인 자살이 줄줄이 이어지자 로푸키리가 이 대안으로 급부상했습니다. 가사를 분담한다는 실질적인 목적 외에 이웃의 온기와 활력이 있다는 로프키리의 장점 때문입니다.
입주자들은 합창단·요가클럽 등 15개 동아리를 조직했습니다. 문학클럽은 지난해 공동 문집을 냈고, 연극클럽은 전문 극단의 도움을 받아 극장에서 공연했으며, 소말리아 이주 여성을 불러 수영을 가르치고 대신 영어를 배우는 식의 재능 나눔도 했습니다.
은퇴자를 위한 핀란드 정부의 노력
이처럼 활동적이고 유쾌한 노후를 사는 노인들이 많아진 데는 일찍이 고령화를 국가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는 대표적인 문제로 꼽고 협의를 통해 사화를 변화시킨 정부의 노력이 컸습니다. 또한, 핀란드 정부는 막대한 세금수입을 바탕으로 은퇴세대의 삶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특히 핀란드의 노인복지는 노인들이 스스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기회를 계속해서 제공하는데 주안점을 두어, 1998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노인 일자리 재교육과 취업 프로그램을 진행, 노인들이 그 간의 경륜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시행 5년 차에 노인취업률이 유럽연합(EU) 평균치인 5.1%를 앞질러 13%를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노인 일자리 확충이 노인 자신의 행복은 물론 사회부담도 줄여주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출처_삼성생명 은퇴저널 2012. 5월호
주1) 글쓴이는 요양원(노인요양시설, 너싱홈)과 실버타운(유료양로시설 혹은 노인복지주택)의 개념을 혼돈하고 있는 듯해서 주를 달았습니다. 로푸키리의 개념은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요양시설이라기 보다는 자립능력이 있는 노인들의 공동체로서 우리나라의 (수동적인) 실버타운에 대비되는 에이징 인 커뮤니티(Aging In Community)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