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재건축단지들이 MB정부의 각종 규제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다름 아닌 서울시가 정부의 정책과 엇박자를 그리며 소형주택의무비율 2:4:4(전용면적 60㎡이하 20%, 60~85㎡ 40%, 85㎡초과 40%)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가 지난 2009년 7월 소형주택의무비율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며, 강남 중대형 아파트 공급부족 현상으로 전세가격 폭등과 집값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강남재건축단지들은 국내 주택시장 가격형성에 단초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겪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꾸준히 가격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그랬던 강남재건축단지들이 3월 말부터 계속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상태에서 재건축아파트에 투자하기는 너무 금액이 크고, 시세의 반값에 정부가 공급하는 보금자리 주택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어 ‘강남 불패’에 대한 믿음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강남재건축 아파트들의 가격이 거품경제의 대표적 상징이기 때문에 향후 하락세가 불가피하고, 투자 수요의 유동성을 높여 주지 않는 이상 강남이라고 해도 시장이 살아나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럼 강남재건축단지들의 사업 활성화를 위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서울시의 소형주택의무비율과 관련된 조례를 개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서울시 역시 소형주택의무비율까지 풀면 주택공급은 빨라지겠지만 강남권 주택시장 가격을 잡을 수 없게 되고,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강남재건축단지들이 진퇴유곡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 봄날 기다리고 있는 강남재건축단지들
강남구 경복아파트, 청실아파트, 은마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송파구 잠실5단지 등 강남의 대표적 재건축단지 아파트들이 소형주택의무비율에 묶여 사업 자체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에 많은 강남재건축단지들이 1:1재건축 사업방식을 통해 해답을 찾고 있지만 이 역시 모범답안이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재건축사업은 일반분양을 통해 주민들의 분담금을 낮춰야 하지만 1:1재건축을 할 경우 실질적으로 일반분양분이 없고, 2:4:4를 적용하게 되면 기존의 큰 주택형에 거주하는 조합원 일부가 재건축 후 작은 면적의 주택을 배정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례로 논현동 소재 경복아파트의 경우 95㎡와 128㎡ 위주로 308세대가 구성돼 있지만 1:1재건축을 선택하며 늘어난 일반분양분은 40여 세대에 불과하다. 1:1재건축을 시행할 경우 정부의 용적률 완화조치로 전용면적을 10%가량 늘릴 수 있고, 이를 일반분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 소재 청실아파트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소형주택의무비율을 적용해 재건축을 할 경우 일부 조합원들이 소형평형에 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1:1재건축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변 조형빌라·로젠하임·엘피스빌 등의 연립주택 60여 세대를 제외하더라도 일반분양분이 137세대에 그쳐 사업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밖에도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비롯해 잠실주공5단지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전용면적이 85㎡이상 평형으로 구성된 단지들의 경우 현재로서는 1:1재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강남재건축단지들이 앞 다퉈 1:1재건축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서울시가 규제하고 있는 소형주택의무비율 2:4:4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에 서울시에 소형평형의무비율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문의한 결과 “소형평형의무비율제도가 없으면 앞으로 강남 재건축아파트에는 소형주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서민들의 주거안정뿐 아니라 점차 증가하고 있는 1~2인 가구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와 관련해 A정비업체 대표는 “서울시가 1~2인 가구를 위해 소형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에서 소형주택의무비율을 현행대로 유지했는데 이는 잘못된 발상”이라며 “주택공급이 이뤄져야 할 강남 중층 재건축단지들이 1:1재건축을 택하면서 소형주택 공급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2. 개발이익 환수하니 규제라도 풀어 달라
소형평형의무비율은 당초 전용면적 60㎡이하 20%이상, 60~85㎡이하 아파트 40%이상 건립하도록 했다. 이후 85㎡이하 아파트를 전체 가구 수의 60%이상 짓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했지만 MB정부 출범 후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건축 관련 규제들을 대거 완화하며 서울시가 조례를 종전 기준으로 유지하며 조합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재건축이 지연되는 문제를 야기했다.
은마아파트나 현대아파트 등 소형평형 없이 중대형 평형으로 구성된 단지들의 경우 소형평형의무비율을 적용할 경우 일부 조합원들이 작은 평형을 배정받을 수밖에 없고, 분양가상한제까지 묶여 조합원들의 부담금 역시 크게 느는 이중고를 안고 있어서다.
때문에 관련업계에서는 허송세월 하고 있는 강남재건축단지들의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소형평형의무비율제도를 푸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보완책을 내놓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B정비업체 대표는 “현재 개발이익환수조치를 하고 있으니 이를 서민들을 위한 공공주택 건립에 사용할 경우 형평성에 부합한다”고 밝힌 후 “다만 환수범위를 확실히 정하지 않을 경우 개인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활성화 시키리란 보장은 없다. 왜냐면 조합원 중 실수요자와 거주자가 아닌 투기목적의 소유가 강남재건축단지의 경우 높아 개발이익환수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등 사업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신반포 한신아파트 한 주민은 “현 상황이라면 어차피 재건축을 해도 분담금 등이 만만치 않고 오히려 적은 평형에 들어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니 차라리 재건축의 대안인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처럼 강남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재건축에 대한 각종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전문가들 역시 소형주택의무비율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지역과 여건에 따라 주택시장의 수요가 달라지는 만큼 시장논리에 맞게 강남 등 중대형 주택이 필요한 곳과 강북 등 소형평형이 필요한 지역 등에 탄력적인 소형주택의무비율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정보업체 관계자는 “용적률 제한과 임대주택 의무건립 조항이 있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강남재건축단지들은 이런 악법만 제거되면 언제든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며 “재건축을 아직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하고 있는 일부 투기세력들이 소형주택의무비율을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 자체가 추진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3.재건축 갈음 위해 종부세 강화 등 방안 쏟아져
강남 지역 재건축단지들은 1:1재건축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올 스톱 돼 녹슬어 가는 현장을 다시금 돌릴 방안 등을 모색 중이다.
소형주택의무비율이 현재 강남재건축지구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재건축 용적률을 법정상한선까지 올릴 수 있고, 임대주택 의무건립도 폐지됨에 따라 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사업 진척이 없는 것은 국민들이 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관념 때문이다. 국내에서 집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함과 동시에 재산증식의 첫 번째 도구기 때문에 제살 깎아먹는 소형주택의무비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여타 강남재건축단지의 경우 종합부동산세가 폐지되지 않고 유지됐다면 집값 급등 등의 부작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강남재건축아파트를 투자의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물론 다주택 소유자들이 종부세의 일부를 세입자 또는 주택구입자에게 전가하겠지만 투기에 대한 수요는 확연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대폭 줄여 조례 위임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강북의 경우 분양에 대한 리스크 때문에 중대형보다는 소형평형을 중심으로 상황에 따라 조절해 공급하고 있다”며 “강남의 경우 중대형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서울시가 지역에 따라 규모별 공급수를 조절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정비업체 대표 역시 “1:1재건축 등 차선의 대책이 아닌 실질적인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줘야 한다”며 “지자체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직도 재건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