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을 비롯하여 부부의 날까지 새로 생겨 이래저래 선물할 일이 많았다. 무엇을 살까 라는 고민을 하며 가장 쉽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백화점인데, 아니나다를까, 백화점도 5월 한달 갖가지 행사로 눈길을 잡는다. 백화점이란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생겨난 것일까.
최초의 백화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그것은 19세기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1800년 무렵 세느 강변에서 여성용 양산을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는 곧 여성용 모자 상점을 인수했는데 모자와 양산을 하나의 상점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많이 늘었다. 모자를 사러 온 여성이 새 양산이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을 구입하거나, 혹은 양산을 구입한 여성이 그에 어울리는 모자도 함께 구입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가 손수건과 장갑도 함께 팔기 시작하자, 특별히 살 것이 없는 여성도 상점을 기웃거리며 유행하는 새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즉 단일 품목을 판매하는 것보다 여러 품목을 한 곳에서 판매하면 이른바 충동 구매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차츰 취급 품목을 늘려나갔고 이후에는 남성용품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백화점의 시초로서, 1850년대에 이르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쁘렝탕 백화점과 봉 마르쉐 백화점이 문을 열게 된다.
지금의 백화점은 단순히 남성용품과 여성용품만이 아닌 실로 많은 상품을 다룬다. 요즘의 대형 백화점들은 7,8층 정도의 고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별로 취급하는 품목이 다르다. 1층에는 화장품, 향수, 보석 등 고가의 여성용품을 취급한다. 2층과 3층에는 여성 의류가 자리잡고 4층에는 남성의류, 5층에는 레져 스포츠 용품, 6층에는 아동, 취미용품, 7층에는 가전제품과 가정 용품 그리고 8층에는 가구와 이불, 카펫이 놓여 있다. 어느 백화점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이러한 층별 구성은 기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다. 백화점은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단위 면적당 얼마의 물건을 팔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똑 같은 한 평의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팔아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남기느냐에 따라 층별 구성이 정해진다. 따라서 부피가 작으면서 값비싼 물건일수록 아래층에 놓이고 그 반대는 위층에 놓인다. 아파트는 가운데 층이 로열층일지 몰라도 백화점의 로열층은 단연 1층이며, 위층으로 올라가거나 지하로 내려갈수록 그 가치가 떨어진다.
백화점 1층에 화장품, 향수, 보석이 놓여 있는 것은 그것이 가장 부피가 작고 비싸기 때문이다. 남성복보다는 여성복이 더 부피가 작고 비싸며, 그 중에서도 캐주얼 의류보다는 부인 정장이 더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2층에 부인 정장, 3층에 캐주얼 의류가 배치된다. 점점 위층으로 갈수록 부피가 큰 물건이 놓이고 그리하여 꼭대기 층에는 가장 덩치가 크면서 값싼 이불과 가구, 카펫이 놓이는 것이다. 백화점 1층에 자리잡은 화장품, 향수, 보석, 핸드백 등은 비싸고 작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백화점이 처음 생기던 무렵부터 취급했던 상품들이다. 아마 19세기 프랑스의 초기 백화점들은 요즘 백화점 1층에서 판매하는 품목만을 취급했을 것이다. 지금도 백화점 1층 한구석에는 양산과 모자, 손수건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그다지 고가라고 할 수 없는 품목이 최고 로열층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세느 강변의 어느 상인이 처음으로 모자와 양산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던 그 때의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대형 할인점은 이와 전혀 다른 층별구성을 가진다. 1층에는 식품이 놓이고 2층과 3층에 의류, 아동용품, 가정용품 등이 놓인다. 백화점에서는 지하에서나 있을 법한 식품이 할인점에서 1층을 자치하는 이유는 명백하게도 그것이 가장 많은 수익율을 올리기 때문이다. 명동과 같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조금 색다른 백화점이 있다. 주로 주머니가 얇은 청소년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1층에 값비싼 시계나 보석, 향수 대신 바로 영 캐주얼을 선보이는 것이다. 혹은 강남의 부촌에 위치한 고급 백화점은 1층에 외국의 유명 명품만을 모아 놓아서 마치 면세점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할인점이건 백화점이건 간에 1층에는 이른바 효자 상품만을 진열해 놓고 있으니, 1층만 보아도 대충 그 곳의 전체 성격을 알 수 있다.
지갑이 얇은 청소년을 상대하는 백화점이든, 부유한 아주머니를 상대로 하는 백화점이든, 백화점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미리 정해진 구매 품목을 구입하는 곳이 아니라, 부유하는 욕망에 따른 충동구매를 유도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모자와 양산을 함께 팔기 시작함으로써 모자를 사러 왔던 여성이 생각지도 않았던 양산까지 사게 만드는 곳이 백화점이라는 곳이다. 그대 혹시 오늘도 유행하는 상품이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해, 혹은 싸게 파는 상품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일 없이 백화점을 서성이지는 않았는가. 어버이날 선물을 사러, 혹은 스승의 날 선물을 사러 갔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다른 물건을 구입하지는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