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엄마다.
“김장김치 보냈다. 내일 도착할 거다.”
“정말요? 와, 소리 소문도 언제 했어요?”
안 그래도 은근히 김장김치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전화기에 뽀뽀라도 하고 싶었다.
새 김장 김치로 밥 먹 생각을 하니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르다.
조금 전에 택배 아저씨가 박스 두 개를 내려주고 갔다.
낑낑 끙끙!
무거운 박스를 부엌으로 들고 와 테이프를 자르고 비닐을 풀었다.
엄마 특유의 김치 냄새가 온몸을 감싼다.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간다. 김치 한 포기를 꺼내 접시에 담았다.
속을 젖혀 보니 갖은 양념 속에 갈치랑 퉁수 같은 동해안 횟감이 적당히 저며진 크기로 들어앉아 들어 있다.
침을 삼키며 밥을 한 공기 펐다. 가위로 김치 꽁다리를 싹둑 자르고, 뜨거운 밥 위에 김치를 척척 걸쳐 얹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었다.
그제야 김치통을 씻고, 물기를 닦고, 김치통에 김치를 담았다.
한 통 두 통…… 무려 네 통이나 나온다. 온 집안에 마늘 냄새와 생강냄새 생선 냄새가 진동한다. 아, 초피 냄새도 난다. 부자가 따로 없다.
김치 냄새가 날아가기 전에 카메라를 가져와 찰칵찰칵 담는다. 김치 냄새까지 카메라에 담겼다.
그제야 엄마 생각이 난다. 고맙고 미안하다.
‘허리도 아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화기를 들었다.
띠리리리…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다.
“엄마, 득이에요. 김치 잘 받았어요.”
“하마 갔더나?”
“네, 벌써 김치 꺼내 밥 한 공기 뚝딱 했는걸요. 김치 정말 맛있네요. 몇 포기 했어요?”
“큰 거라 팔십 포기만 했다.”
“우와! 그래요? 근데 몸살 안 해요?”
“이웃에서 도와줘서 몸살은 안 했고 오히려 새틋하다. 김장 했다 싶어서…….”
하지만 안다. 김장을 하고, 박스 박스 싸서 포장하고 순천, 김해, 대구, 울산 이렇게 딸들 주소 일일이 적고 택배 불러 보내 주면서 맘이야 뿌듯하겠지만 왜 힘들지 않았을까.
김장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양념을 해 놓은 걸 앉아서 버무리는 건 김장을 하는 일 전체로 따지면 1/10일 정도밖에 안 된다. 배추를 사서 옮기고, 다듬고, 절이고, 뒤집어주고, 씻고, 물 빼고…….
결혼 17년차.
처음부터 엄마한테 김치를 얻어먹은 건 아니다. 결혼하고 7,8년은 내 손으로 김장김치를 담가 먹었다. 첫해 김장 김치를 해 놓고 맛을 보며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결혼식장에 신부로 섰을 때보다 그 때가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랬는데 동생들이 결혼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시간에 쫓기며 직장 생활하는 동생들이 안쓰러워 엄마가 김치를 담가 주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그때까지 멀쩡히 김치 잘 담가 먹던 나한테도 김치를 보내 주기 시작했다. 그러니 엄마는 친정집 김치에다가 딸 다섯 집 것까지 함께 김장을 하게 된 거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하다 보니 버릇이 되어서 이제는 김장철만 되면 김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언제쯤 엄마가 김장을 보내줄까 기다리게 되었다.
아이구, 얄미운 딸.
그래도 김치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첫댓글 우와.....뿌듯하시겠다.
정말 맛있어 보여요, 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오마나! 침 넘어가는 소리..음 맛있겠네요. 엄마표 김치는 영원한 명품김치..
엄마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 받아 먹어야 하나?
저도 내내 친정엄마한테 김치 얻어 먹었는데... 재작년부터 엄마가 조카 봐주느라 김치를 못 담그세요.ㅠ.ㅠ 정말 부럽습니당.
꿀꺽 ~ 침 넘어갑니다~~
친정엄마에게 김치 얻어먹는 분은 정말 부러워요. 저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아~ 괜히 눈물나려 한당!
같이 울어요...잉잉!
죄송해요, 선생님. 저도 눈물이 나려하네요.
함께 울어주셔서 이제 웃고 있어요.^^
저는 꺼꾸로 제가 김장해서 울엄마에게 보내 드리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동네에서 사먹어요.그게 더 싸거든요. 재작년 김미자여사님와 함께 한 김장이 자꾸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