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5. 큐티
레위기 16:1 ~ 10
아사셀 염소
관찰 :
1) 지성소 출입의 제한
- 1절.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죽은 사건이 본 장과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사건 이후에 일반 정결 규례가 길게 소개되었습니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해야 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나답과 아비후가 경솔하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답과 아비후가 지은 죄와 같은 범죄를 막으시기 위해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규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사건을 다시 언급하시고 대속죄일의 제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 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 본 절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아론에게 주시는 말씀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규례는 대제사장에게 해당하는 규례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궤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을 상징하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지성소 안 법궤 위에 강림하실 때에는 이 법궤에 들어 있는 언약을 들여다보심으로 그 언약의 내용을 지키지 못한 자는 죄로 인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 형벌을 피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대제사장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가 필요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속죄소에 강림하시면서 언약궤에 담긴 언약을 내려다보시기 전에 피가 발라져 그 위에 놓여 있는 속죄소를 먼저 보심으로 백성들의 언약 불이생으로 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내리기 전에 먼저 용서와 긍휼을 그들에게 베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속죄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악을 덮어 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2) 대속죄일의 제물 준비
- 3절.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 대제사장의 속죄제물에는 오직 수송아지의 예물이 사용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자신 및 모든 제사장들을 위해 먼저 속죄제사를 행함으로서 위임식 이후에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지게 될 완전한 의미의 예식의 첫 시작을 행했습니다. 레 8:18에서 위임식 때에 제사장을 위해 드리는 번제물은 숫양이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대제사장을 위해 드리는 번제예물은 숫양이었습니다. 번제는 모든 것을 태워서 하나님께 그 냄새를 올려 드리는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였습니다. 대속죄일의 제사에서는 이 번제는 속죄의 의미가 더 강조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는 죄된 인간이 죄의 문제를 어느 정도로 철저히 해결해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행위였습니다.
- 4절.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 평상시 대제사장은 위엄과 존귀를 나타내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이와 같은 평상시에 부착하는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찬 에봇이나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는 판결 흉패를 달지 않았고, 금으로 된 어떤 장식도 달지 않았습니다. 즉 대죄속일에 대제사장은 일반 제사장들이 입는 옷보다도 훨씬 소박하고 단순한 옷을 입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 있는 대제사장은 평상시에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중재자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화려한 의복은 그가 맡은 직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죄를 사함받아야 하는 인간은 비록 자신이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모든 영예를 벗고 아무런 꾸밈이 없이 성결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은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 5절.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 여기서의 “회중”은 주로 법을 집행하는 대표자들의 무리를 가리킬 때 쓰인 표현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예물을 취하는 것은 모든 백성에게서 예물을 취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숫염소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속죄소의 위와 앞에 피를 뿌리기 위해 필요했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기 위해서 필요했습니다. 백성의 번제는 모든 속죄 예식이 마쳐진 후에 아론의 번제와 함께 드려졌습니다. 대속죄일에 드려지는 번제에서는 헌신의 의미보다 속죄의 의미가 더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속죄일의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모든 죄를 속하는 일 년에 단 한 차례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3) 대속죄일의 제사 절차 개요
- 6절.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 대속죄일의 속죄제물은 어느 특정한 죄에 대한 용서가 아닌 지난 한 해 동안 백성들이 지었던 모든 죄악들에 대한 총체적인 용서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대제사장은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 7절.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 “회막 문 여호와 앞에”라는 표현의 직역은 “여호와의 얼굴을 향하여”입니다. 모든 예물이 여호와께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모든 예물을 드리는 그 자리에 임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 8절.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 대제사장은 두 염소를 위해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 때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는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었고,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선택했습니다.
- 9절.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 두 염소 중의 하나는 속죄제로 드려졌습니다.
- 10절.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 “아사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과는 완전히 분리된 바위 투성이의 낭떠러지 땅으로 보내는 것을 의미하고, ‘완전히 멸하는 것’의 상징적 행위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아사셀 염소 예식의 목적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행위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악을 지시고 고난의 험한 길로 내보내져서 죽음의 낭떠러지를 향해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당해야 할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 아론은 죄를 사함받고 백성의 대표자로서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예식을 행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아사셀 염소를 통해 아론은 백성의 대표로서 자신과 모든 백성들의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함으로 속죄를 받은 것입니다.
가르침 :
1)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의 두려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드려야 하는 정결예식에 이어서 대속죄일의 제사에 대해서 대제사장 아론에게 엄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다시금 하나님께 죄를 사함받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2) 일 년에 한 번 속죄소에 들어가는 대속죄일의 제사를 위해서 대제사장이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위해서 속죄를 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했다고 그 효력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매년 자신의 죄를 대속해야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역할을 하는 직분의 권능이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3) 이 대속죄일의 대제사장의 역할과 제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얼마나 크고 놀랍고 귀한 은혜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매년 행해야 하는 대속죄일의 제사가 완성이 되었고, 날마다의 죄에 대해서도 단 한 번의 십자가 대속으로 제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드리는 회개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4) 아사셀 염소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참한 최후를 황량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맞이하시는 것을 통해서 아사셀 염소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아사셀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적용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매년 아사셀 염소에게 죄를 전가하여 아사셀을 향하여 염소를 내보냈습니다. 그것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매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매년 보내지는 아사셀 염소를 보시며 하늘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이 자신의 이 땅에서의 사명이라는 것을 확인하시곤 하셨을 것입니다. 아사셀 염소의 비참한 최후를 다 보시고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적용 :
1)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매년 자신의 죄를 속죄제사로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제사를 통해서 해결되었습니다. 다시 양의 피를 잡고, 아사셀 염소를 내보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크기를 깨닫게 됩니다. 거룩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 놀라운 희생을 감수해 주신 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인과율이 파괴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하셔야 할 그 어떤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놀라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 아사셀 염소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매년 아사셀로 보내지는 염소는 그렇게 매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고, 모든 들짐승의 놀이감이 되었습니다. 굶어죽거나 늑대나 곰이나 여러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 죽었습니다. 혹은 골짜기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가 전가되어 그렇게 참혹하게 매년 죽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은혜라는 것은 기독교의 역설이고 비밀입니다. 그 놀라운 섭리를 계획하시고 이루신 아버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