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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전 호 준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가 입안에 맴도는 더없이 맑고 화창한 봄날이다.
겨울잠에 빠진 개구리같이 집구석에 웅크리다 봄바람이 났다. 건우산악회 남해 금산 봄 산행에 병아리처럼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셨다.
난지형 마늘 주산지 남해답다. 사료용 볏짚을 비닐로 감싼 흰 드럼통같이 옹기종기 쌓은 곳에 “남해 하면 마늘! 마늘 하면 남해!”라고 쓴 이색 광고판 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들판이 온통 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싱그럽다. 땅을 덮고 있는 하얀 비닐이 불어오는 바람에 언뜻언뜻 내비치는 속살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녹색 바다에 은물결 같이 반짝인다.
오전 11시 반이 되어 금산 단일 목 복곡 제1주차장에 도착했다. 준비한 제수를 차리는 손길들이 바쁘다. 정월의 첫 산행, 올 한해 산행길, 무사 안녕을 비는 시산제다. 돼지 머리를 중심으로 4 실과에 떡 포가 차려지고 산악회장님의 초헌에 이어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에 고하는 독축(讀祝)이 이어진다. 아헌과 종헌이 끝나고 모든 참석자가 다 함께 엎드려 절하는데 우두커니 혼자 서있는 자신이 멋쩍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마을에서 자율 운행한다는 소형 버-스를 타고 복곡 제2주차장으로 향했다. 보리암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가파른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길 양쪽에 하늘을 찌르듯 늘어선 편백나무, 길을 보호하는 울타리처럼 빽빽이 늘어서 있다. 10여 분을 달려 주차장에 내려 곧장 금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길가에 산죽(조릿대)들이 바람에 흔들흔들 지나는 객들에 사각사각 인사를 한다.
681m 금산의 정상, 아직은 봄이 설다. 그 옛날 변방의 통신 수단인 봉수대가 있는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탁 트인 절경에 할 말을 잊었다. 태산 같은 뭉게구름에 짓눌린 탓일까?
한려수도 남해는 그림 같이 조용하다. 연녹색 바다 위에 어깨를 맞대고 키 재기 하듯 옹기종기 솟아오른 크고 작은 섬들이 안개 속에 머리만 내민 산봉우리같이 한 폭의 그림이다.
보리암으로 내려오는 길 단군성전에 들렸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 온다.
민족 얼의 상징인 단군성전이 이곳에 있다니,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홍익인간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지만, 다수 국민들의 마음에 하나의 신화로만 존재할 뿐이다. 신화가 없는 종교가 있을까? 모두가 신을 숭배한다. 외래문화에만 젖어 드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 종교적 관점을 떠나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며 한겨레의 얼을 이어가는 정신문화 계승이 아쉽다.
보리암으로 내려왔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하동 쌍계사의 말사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보광산 보광사라 이름했다 한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대업을 위해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하던 중 꿈을 꾸었다. 주지 스님이 장차 왕이 될 꿈이라는 해몽에 만약 왕이 되면 보답으로 이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는 약속을 했다.
훗날 임금이 된 이성계가 약속을 지키려 하였으나 불가능에 고민 중 한 신하가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 금산(錦山)으로 하면 영원히 비단 산으로 보전할 수 있다는 주청에 산 이름을 금산으로 절 이름도 보리암으로 바꾸었다는 전설이다.
일설에는 1660년 조선 18대 현종 임금이 조선왕조 개국에 감사의 뜻으로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은 금산 절은 보리암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보리(菩提)란 상구보리(上求菩提: 위로 보리의 지혜를 구해 닦는 일)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성계 기단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권력자들의 식언(食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광전 등, 보리암 경내를 둘러보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얀 해수관음보살상이 남해를 향해 미소 짓고 서 있다. 크고 환한 보살상에 가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높이 2.3m 작은 보리암 전 3층 석탑(경남유형문화재 제74호) 원효대사가 금산에 처음으로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 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 석(인도에만 있는 석재)으로 탑을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재질은 화강암으로 고려 초기 양식을 보이고 비보(裨補:풍수지리상 기운이 나쁜 지역에 세워 나쁜 기운을 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일)의 성격이 강한 걸 보면 이 또한 전설에 불과 하다는 이야기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신비한 바위 터널, 쌍무지개를 연상한 쌍홍문을 나서니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의 장군암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남해 상주 해수욕장 쪽에서 보리암으로 올라오는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 바위다.
장군 암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비단 산이 아닌 가파르고 험한 자연석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진다. 종아리가 욱신욱신 다리가 후들후들한다.
잠시 숨을 고르며 뒤돌아보았다. 쌍무지개 쌍홍문이 거대한 해골같이 보인다. 속계와 선계의 경계로 오늘의 홍안도 내일이면 해골로 변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보리암을 찾는 중생들에 경종의 메시지 같다.
그리 멀지도 않은 길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셔틀버스를 타고 왔던 길로 내려갈 걸, 녹슨 몸에 무리하지 말라는 아내의 당부 보다. 오늘은 워밍업 하는 기분으로 참여한다는 스스로 다짐도 잊었다.
쌍홍문과 장군 암 도선 바위 등 볼거리가 많다는 일행들의 조언보다 수려한 경관에 홀린 것이 탈이다. 겨울잠에 막 깨어난 개구리가 웅크렸던 다리를 펴자마자 단숨에 뛰는 꼴이니 성할 리가 만무하다.
천근이 된 다리를 끌고 금산주차장에 도착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기다리며 내려온 금산을 올려다본다. 정상에서 내리뻗은 산세가 수만 폭의 거대한 베를 널어놓은 것 같이 완만하고 드넓다. 정상으로 빙 둘러선 커다란 바위들이 널어놓은 베의 누름돌 같다. 이른 봄이라 다가오는 느낌이 아직은 회색빛이다. 단풍에 물든 금산을 상상해 본다. 글자 그대로 거대한 비단을 널어놓은 비단 산이라 불러도 그 이름에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오는 가을 기회가 되면 비단 폭 같은 산자락에 푹 빠져보고 싶어진다. 2018. 3. 27
첫댓글 얼마전 남해 금산 산행후 써놓은 글인데 이미 여려편 올라온 글과 내용이 비슷해 망설이다, 숙제 차원에서 올려봅니다. 양해 바랍니다.
유사한 주제로 글을 쓰셔도 작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쓰심으로 독자에겐 다른 의미가 있는 글이된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아직은 봄이 설다." 태산 같은 뭉게 구름에 짓눌린 탓일까." 남해는 그림 같이 조용하다."는 아름다운 표현에서 금산의 모습을 직접 보고있는듯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나는군요. 완연한 봄은 이직 저만치 이나 이른 봄 뭉게 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금산에서 잔잔한 남해를 바라보는 감흥이 남다를것 같군요. 잘 읽었습니다.
같이 산행을 하였어도 다른 관점에서 쓴 글을 비교하며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같은곳, 같은 그림을 보고도 모두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른 것은 당연한 섭리인 것 같습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예쁘다, 날카롭다, 밉상이다' 라고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을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같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날 그곳의 모습이 그림같이 다시 보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금산산행의 백미를 보는듯 합니다. 하산길이 험하고 바윗길이라 몸살이 낫을것 같습니다. 겨우내 움추린몸 무리하게 하여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바윗산 산행을하면 뼈가 수시는 고통이 따릅니다. 감성적으로 쓰신글 잘읽었습니다.
문우 여러분들이 함께 산행하신 글을 읽으면서 살짝 셈도 나고 부럽기도 합니다. .산행기행을 읽으면서 따라가고 싶은 맘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상록회서 함께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한분 한 분 올리신 글 꼼꼼히 읽고 산행을 대신하겠습니다. 직장산악회는 노인들이 많아서 험한산이 아닌 평평한 평지같은 산을 찾아 갑니다. 그도 못 따라가면 갔다올 동안에 놀다옵니다. 지금까지는 잘 따라갔는데 올해는 아직 한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남해 금산을 간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산행기행에서 또 한번 지난 일들이 생각납니다. 진솔한 글 잘 보았습니다.
금산산행(시산제) 잘 다녀오시고 좋은 글로 남겨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금산과 보리암의 또 다른 일면을 보는것 같습니다. 사물에 대한 판단이나 경관에 대한 감흘으 각자의 안목과 취향애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도 큰틀에서 보면 보고 느낌에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됩니다.
금산을 여행하시며, 하나의 광고 간판, 작은 석탑하나, 바위 하나에도 허투로 보아 넘기시지 않고, 마음을 주고 생명을 불어 넣는 전호준 선생님의 관찰력과 의미 부여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