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듣고 싶어 예정하고 또 고대했던 주중식 교장 선생님 특강이었다.
전날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지내고 사모님은 아침 일찍 가셨다. 어머님 간호를 위해.
동서울터미널에서 사모님을 배웅하고 집에 와서 아침을 먹었다.
‘소로우와 타샤 튜더’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10시 20분에 집을 나서 도서관에 가니 재성씨가 먼저 와서 기다려 주었다.
재성씨가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도서관을 안내하는 동안 이야기 방 준비를 마무리 하고 친구들을 기다리는데 많은 분들이 성큼 성큼 들어오셨다.
예상 밖으로 이야기 방을 그득 채운 많은 친구들 덕분에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멀리 도봉도서관 친구들과 신묵학교 도서관 친구들, 그리고 <도서관 친구들> 모임을 준비하고 있는 강서 푸른들 도서관 친구들, 광진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분들과 광진 도서관 친구들.......
교장 선생님 강의는 물론 그보다 더 압권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올까?’ 마음이 조금 두근거렸는데 기우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교장 선생님 강의를 이렇게 정식으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좋았다. 울다가 웃다가 그랬다. 말씀이 느릿느릿 하셔서 듣고 새기기에 좋은 빠르기였다.
교장선생님은 먼저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질문 세 가지는 이렇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때와 가장 중요한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손 전화를 껐다. 그리고 허리를 쭉 펴고 바로 앉았다.
자연스럽게 지난번에 보내 드린 책 <웰컴투 지구별>을 소개하시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셨다.
이야기 하실 차례를 먼저 정해 주셨는데 ‘선생님 살아온 이야기’와 ‘아이 기운 돋우는 부모역할’, 그리고 아들 하아린 키운 이야기를 하기로 하셨다. 그러나 마지막 아들 키우신 이야기는 시간이 모자라 거의 듣지 못했다.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선생님 말씀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중심 내용은 ‘밥상과 이야기보따리’ 인 것 같다.
제철에 나는 재료를 가지고 단순하게 조리하여 만든 ‘몸에 좋은 음식’을 꼭꼭 오래 씹어 먹고, 기운을 북돋아 주고 감동을 주는 참된 삶의 이야기(선생님은 ‘좋은 이야기’라 하셨다)를 듣고, 또 하며 사는 것.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며 듣고 싶지 않은 말, 좋지 않은 말(선생님은 상처 주고 독이 되는 말이라 하셨다)도 듣게 된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장 선생님은 ‘안 받아’ 하면 된다고 하셔서 다들 한 번 웃었다.
‘그래! 줘도 받지 않으면 준 사람이 다시 가져가야겠지.’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남의 말을 듣는 방법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 선생님 이야기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는데 ‘나는 자연의 기운과 내 마음 속의 말로 이루어 진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내 마음 속의 말’, 즉 나를 움직이는 말들의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 무밥 먹다 밥상머리에서 눈물 흘리며 어머니께 들었던 한 마디가 평생 먹는 것을 대하는 자세를 갖게 했다는 말씀, 중학교 교과서에서 만났던 한 마디 말이 일을 하는 자세를 갖게 했다 하셨다, 공병우 선생님께 눈 수술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어깨 너머로 들은 말, 그리고 지금도 깨우침을 주시는 박지홍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 바로 그 말씀들이 지금의 선생님을 만들고 있다 하셨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선생님이 '배우는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시며 문집 만들던 이야기와 아이들 글 소개가 있었는데 나는 그 글을 들으며 많이도 울었다. 옛날 우리 반 아이들이 생각나서.
다음은 오랜 동안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나고 계신 이현주 목사님과 거꾸로 사는 재미를 삶으로 보여주신 이오덕 선생님, 그리고 박지홍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과의 만남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리하고 보니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참 많이 해주셨다.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일기도 읽어 주셨는데 ‘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선생님은 이오덕 선생님께 배운 대로 일기를 쓰신다 하셨는데 전에 거창에서 뵈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사실 나도 그때부터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해서 계속 쓰게 되었다. 가르침은 이렇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콩눈이’란 책을 읽어주신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들으며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마칠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 이야기의 결론은 처음 하신 바로 그 말씀이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밥 잘 먹이고 좋은 말을 해주는 것’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좋은 말과 좋은 밥이 그아이를 만드는 것이므로.
선생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자신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교사로서의 ‘간디’
사람들이 들으면 좋을 아름다운 이야기의 예를 드시며 윤승효 기자의 기사 하나를 읽어 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70에 한글을 배워 처음으로 쓰신 글이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께 쓴 편지였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사인회도 성황이었고.
함께 한 사람들도 모두 정말 좋았다고 해주었다. 고마웠다.
현장에서 판매하려고 주문해 온 <들꽃은 스스로 자란다> 30권도 모자랐다. 나는 사인 받아서 선물할 데가 많았는데 도봉 도친 김경희씨한테 밖에 못했다. 카페에 부탁을 해 와서.
지영씨네 도서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먹고 난 뒤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은 교장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선물도 하나씩 더 받았다. 악보와 원고에 사인까지 받아서.
관장님을 잠깐 뵙고 다시 동서울터미널로 갔다. 재성씨가 함께 해주었다.
3시 40분.
거창으로 가는 버스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교장선생님은 ‘강사비’로 드린 봉투를 다시 주셨다.
<도서관 친구들>한테 기증하신다며.
너무 많다고 조금만 주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니라고 하시며 다 주시고 가셨다. 주신 봉투는 우리 모두에게 선물이기도 하고 또 아름다운 뒷모습이라 여겨져 고이 받았다.
선생님을 모셔 드리고 재성씨와 다시 도서관으로 와 식당에 맡겨 놓은 가방도 찾고 계산도 하고 모든 마무리를 한 뒤 야외카페에서 시원한 차를 한 잔 하고 일어서는데 문자가 왔다.
우경옥씨 남편분 번호여서 가슴이 덜컥했는데 역시........
순천 성가를로 병원 중환자실에 있던 경옥씨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담고 있었다.
재성씨를 강변역에서 배웅하고 동서울터미널에 가서 광양 가는 시간표를 적어 집에 왔다.
초저녁에 잠깐 자다 깨서 세 시에 이 글을 쓰는 것은 이오덕 선생님 말씀을 실천하신다는 주중식 교장선생님 때문이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실천하고 있으니까.
(2008. 10. 20)
첫댓글 주중식 선생님을 두어 번 뵐 때마다 참 좋았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좋은 시간이었겠습니다, 선생님. ^^
^^~
아침을 좋은 글로 시작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 감사합니다.
참 좋은 냄새가 나는 이야깁니다. 향긋함 오래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시지 못하겠지만 지난번 도도친때 뵈었습니다. 물론 따뜻한 미소도 교환했구요. 워낙에 많은 분들을 만나시니까... 일산에서 왔다고 인사했었습니다. 항상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이 참 뵙기에 좋습니다.일산에 도서관친구가 생기는 그날까지 저도 열심히 움직여야하는데... 쌀쌀해지는 날씨이지만 따뜻하게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