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10]아버지의 상수연(上壽宴)
지난 토요일, 아버지의 양력생일(5월 23일)에 상수연(上壽宴: 우리 나이 100세를 축하하는 잔치)을 슬하 총생(자식)들만 모여 차려드렸습니다. 흔히 ‘백세시대’라 해도 이런 세리머니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1927년생으로 생존해 계신 할아버지는 1529명, 할머니는 5907명이라고 합니다. 2년째 요양원에 계시지만, 치매(인지장애)도 걸리지 않았고, 누구누구를 못알아보지도 않으며, 보행을 워커(walker)의 힘을 빌리긴 해도 부축만 해드려도 아직까지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장수(長壽)을 하셔, 드디어 상수(上壽:아주 많은 나이)를 맞은 것이지요. 몇 년 전부터 “이러다 세자릿 수를 채울랑가” 하시던 말씀이 실현됐습니다. 제 생각엔 <인간극장>에서도 말했지만, 백다섯 살때도 '너끈하실' 것입니다. 물론 대가족으로 이만한 경사(慶事)가 없을 것입니다. 하여, 석 달 전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의 평생 사진 중 100장을 골라 기념 감사앨범을 만들고, 한 딸은 식당을 알아보고, 또 한 딸은 잔치상과 한복을 빌리고, 또 한 아들은 사회를 보고, 막내딸은 장기자랑(섹스폰 연주)을 하는 등 ‘작전’을 짰습니다. 이러구러 날을 받아놓으니 세월은 또 금세 흘러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아버지의 컨디션이 좀 걱정됐으나 4시간여를 끄떡없이 견뎌주신 아버지가 오직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회관도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당 넓은 기와지붕의 고급 한정식(1인 4만원) 집이어서 더할 나위없이 좋았습니다. 손님도 딱 우리만 받았으니, 무엇보다 눈치 볼 것없이 활발해서 그만이었지요. 당신의 직계 4남3녀와 유일한 친척(할아버지가 5대 독자로 손이 드문 집입니다) 방계 작은집 2남2녀의 아들, 손자, 증손주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것은 처음이지요. 손자가 15명, 증손이 10명(뱃속 2명 포함)이니 아버지를 비롯해 50명에 육박했습니다. 솔녀가 장성했다면 고손(高孫)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요. 유일하게 초대한 분이 95세 전주이모와 이종형님이었습니다.
제주, 서울, 여주, 의왕, 광양, 논산, 인천 등 경향 각지에서 일가친척 피붙이라고 모여 4시간 가까이 웃고 떠들고 한 끼를 같이 하며 인증샷도 찍으니 정신이 '1도' 없었지만, 자리는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고 즐거웠습니다. 이벤트로 손자 솔녀와 증손에게 아버지가 직접 복돈을 주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되겠지요. 또한 막내딸이 노래부르는데 마이크를 쥐어드리며 <묻지 마세요> 노래의 몇 구절도 직접 부르게 해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김성환 가수와 함께 껴안고 찍은 인증샷도 있는 ‘찐팬’이거든요. 김성환 성님도 물론 아버지의 팬입니다. 오죽하면 면회를 하고 싶다고 했을까요. 초대를 해도 달려왔을 테이지만. 사실은 소리꾼 명창 배일동과 성환이성님은 꼭 오시라 하고 싶었지만, 너무 티를 내는 것같고 민폐를 끼치는 것같아 자제했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5대 독자 아버지의 아버지는 31세,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61세 회갑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두 분이 사신 것보다 아버지가 8년을 더 살고 계시며 우리 나이 100세를 맞은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의 양력생일이 당신의 아버지 생신 5월 22일, 할아버지 생신 5월 24일의 딱 중간, 5월 23일인 것도 따지면 조금 신기하지요. 아무튼, 상수연이 아무 탈없이 잘 끝나 가족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서로에게 “애썼다”며 덕담들을 나눴습니다. 아, 사회를 보는 형님이 깜짝 이벤트를 선보여 저도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천하제일 효녀상’을 큰딸에게 상장과 함께 부상을 수여한 것입니다. 수상 내용을 아버지가 직접 낭송하시며 울컥하시는 듯도 했습니다. 우리집 큰딸은 큰딸인 ‘죄’로 집안 대소사 궂은 일에도 늘 앞장섰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효도를 다했고, 오죽하면 아버지가 평소에 “우리집 ‘최청’(심청을 빗대)”이라고 했겠습니까?
둘째형은 형제를 대표하여 아버지께 축사를 했고, 넷째아들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한지에 붓으로 쓴 것을 육성으로 읽었습니다. 이런 잔치에 막 자라나는 꿈나무 아이들이 없으면 '앙꼬없는 찐빵'이겠지요. 중학생 증손도 있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7,8명에 취학전 어린이도 있었으니 자리가 번쩍번쩍 빛이 났습니다. 툇마루에 주욱 앉거나 선 채 찍은 전체 가족 기념사진은 보기만 해도 입이 벙그러질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모임, 정말 흔치 않을 일 아니겠어요. 막말로 우리집, 우리 아버지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이제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모두 넘으셔서 별다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못하시는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정말로 우리에게 ‘큰 산’이었습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남 3천리’라는 관용구도 있지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영원한 뿌리이며, 우리 집안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28살 청상과부 홀어머니와 6살 아래 동생과 함께 한 100년의 역사, 어머니와 20세에 만나 72년간의 해로. 당신의 소학교(현 초등학교) 5년 동안의 통신부, 상장까지 고스란히 물려준 아버지는 30여년 동안 가족일기를 써 책으로 묶어놓으시기도 한 '자료보관-기록맨'이었습니다. 앨범의 제목을 <100년의 봄, 100장의 기억-아버지 백수기념 감사앨범>이라고 달았지만, 어찌 100장뿐이겠습니까? 500장, 1000장의 추억을 앨범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원래 백수연은 우리 나이 99세에 하는 것입니다. 이때 백수는 ‘일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을 뺀 ‘흰 백(白)’자를 쓰지만, 그날 ‘상수(上壽)’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설명을 해야 하므로 편의상 진짜 100살이므로 ‘백수(百壽)’라 했습니다. 1세기를 살았으므로 ‘일기(一期)’라고도 하더군요. 반 세기도 아니고, 1세기의 삶을 저희야 살아보지 않았기에 모르지만, 아버지는 지금 어떤 말씀을 하실는지요? 그저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씀만 후렴처럼 하시지만, 남기고 싶은 말씀은 무궁무진하시겠지요. 그것을 <인간극장> 마지막 장면에 자막(字幕)으로 남기신 “총생들아 잘 살거라”라는 말씀의 사진으로 대체했습니다. 그 말씀에 보답하고자, 앨범 맨 마지작 뒷표지에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모시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를 넣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아아-. 아버지는 이제껏 자식(총생)들을 위하여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투신(投身)한 어른입니다. 지금도 자식들에게 어떠한 ‘민폐(民弊)’를 끼치지 않고, 요양원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도 당신이 해결하고 계십니다. 한국전쟁 참전경찰의 국가유공자연금과 기초생활 수급자가 받는 돈을 합하면 요양원 매달 비용(70-75만원)을 제하고도 남습니다. 만약에 그런 복지가 없었다면, 자식들이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할 터인데, 똑같이 나누어 분담하는데 말들이 무성했겠지요. 그런 형제갈등도 원천봉쇄해주고, 스스로 요양원에서 꿋꿋히 지내시는 아버지가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동료들과 장기도 한두 판 두시고, 약간의 오락시간도 가질 수 있으니, 어쩌면 아무리 효자효녀가 돌본다해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나라가, 우리 국가가 고마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자식들의 소원은 크게 아프지 않고 주무시는 듯 천수(天壽)를 다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인간극장>에서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신 “잠 자드끼 한 날 한시에 가는 게 젤 좋아”라는 소원은 비록 못이루셨지만, 이만하신 것도 천운(天運)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할머니가 50년 동안 마이산 탑사의 천지탑에 빌고 빈 ‘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넷째 아들이 편지를 읽은 후 짧게 <백세 인생> 한 구절을 불렀습니다.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백이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극락왕생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해라//백오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 있다고 전해라//아리랑 아리랑 아라이요/우리 모두 건겅하게 살아갑시다>. 이 여운(餘韻)과 향기(香氣)가 우리 온가족, 대가족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 성구(成句)중의 하나가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일가친척들이 만나 웃고 떠들며 정겨운 이야기를 함)(도연명의 '귀거래사' 에서)거든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