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청동기 문화의 최고봉이었다!
수많은 동양의 문명이 유럽으로 전해져서, 유럽은 급기야는 대항해 시대를 거쳐 지구를 장악 할 수 있었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동양의 화약, 인쇄술, 철, 종이 그리고 비단 등이 유럽으로 전해져서 유럽은 르네상스를 거쳐 계몽주의 그리고 대항해 시대를 맞을 수 있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고조선이 9개 큰 나라 동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라고 시작하는데 ......사실 그 주장을 뒤받침할 어떤 내용도 세종실록에서는 찾을수 없습니다
수나라이전 중국 비단 생산의 중심은 산동성 청주지역입니다
그곳은 로마로 가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기도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매우 부유한 지역이였고, 산해경 청구국에 관한 기록을 보면 모두가 비단옷을 입고 다닌다 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기록을 보면 기원전 7세기 제나라 관중 시대에 청주, 임치지역의 부는 동시대 북중국에서 최고였습니다
당연히 많은 비단을 생산하고 소비하였습니다
로마에 비단이 본격적으로 수출된 시기는 기원전 1세기였고 한나라에서 생산 되어 파르티아를 거쳐 로마로 수출되었는데, 그 주역은 소그드인이며 여기서 학자들이 예상하는 대 로마 비단 수출기지가 산동성 청주지역입니다
당나라 이후 비단생산의 중심지는 새로운 부의 중심지 양자강하류, 강남으로 옮겨갑니다
인하대학교가 나영주 의류디자인학과 교수가 서역에 비단, 사치품 모피, 양질의 철 등을 서기전 5~6세기경에 수출하던 '세레스(Seres)가 고대 신라였다는 증거를 찾았다는 소식입니다.
‘세레스’ 중국 아닌 고대 신라 지칭하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인하대학교(총장 조명우)는 나영주 의류디자인학과 교수가 서역에 비단, 사치품 모피, 양질의 철 등을 서기전 5∼6세기경에 수출하던 ‘세레스’(Seres)가 고대 신라였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27일 밝혔다.
나영주 교수는 수년간 융복합적 연구를 진행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국내외 2편의 우수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외 문헌자료를 교차 확인해 고대 서역에 비단 유입 경로를 역추적한 결과, 고대 그리스·로마인이 부른 ‘비단의 민족, 세레스’가 중원의 지나족(현재의 중국)이 아니라 고대 신라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였음을 밝혔다.
고대 신라는 삼국시대의 신라가 아닌 기원전 고조선을 구성했던 국가 중 하나를 일컫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조선 세종실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9개의 큰 나라의 동맹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그리스·로마에서 세레스라고 불렀던 나라가 고대 신라라는 것이다.
나영주 교수는 실크가 당시 서양에서 세르, 세레스라고 불렸는데 세르는 화살촉이라는 뜻도 있어 세레스는 극동으로부터 화살촉과 비단을 가져오는 고대 신라 사람을 지칭했었다고 하며, 세석기 화살촉이 유명한 고조선에서는 평민들도 비단을 착용할 정도로 생산량이 풍부했다고 설명했다.
고대 신라는 말과 소·밍크 모피·고품질 철을 수출하는 풍요로운 사회였으며, 고품질의 철기를 제조·수출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고 설명했다.
신라는 ‘사로, 새라, 신로’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는데 특별히 ‘온 세상에 밝은 빛을 퍼뜨린다는 뜻의 sɐrɐ 였다’는 세계 최고 갑골음 전문가인 최춘태 교수의 국호 신라에 대한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나영주 교수는 설명했다.
세레스와 신라의 어원뿐 아니라 작잠 누에고치의 분포·자연지리적 환경, 문무왕의 흉노계 족보, 고대 서양 지도에 나타난 세레스, 직기종류·형태, 견직물 종류·특성, 비단 문양의 상징성, 고대 서양과의 교류 기록 등의 융복합적 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게 나영주 교수의 이야기다.
또한 고문헌에서 ‘오랑캐가 비단을 직조한다(厥匪織貝)’, ‘우이족이 두껍고 뻣뻣한 오색의 비단 빙금(氷錦, 東夷貝錦)을 직조한다’는 동이족의 차별적인 견직물 문화에 대한 묘사 기록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비단과 함께 수출됐던 사치품 모피와 양질의 철, 역시 중요한 증거라고 했다.
고조선 척산의 문피 수출에 대한 관자 기록뿐만 아니라 강철 빈철(銕)도 동이족이 시작한 철 가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기 1세기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서 최고급의 철은 세레스의 철, 다음은 파르티아의 철이라는 구절을 찾아냈다고도 했다.
만주와 몽골어 발음으로 설명되던 실크 어원 ‘실쿠리’는 견사를 감은 후대에는 고구려의 실쿠리가 고대에 국제 공통 화폐가 되면서 ‘실크’가 ‘세레스’ 단어를 대체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