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노트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들
1. 가상의 시간과 공간을 천재적으로 형상화시킨 이와이 슌지의 감각
영화의 모든 공간들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이와이 슌지의 머리에서 탄생되었다. 맥킨토시로 모든 콘티가 정교하게 작업되었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비쥬얼 스타일을 검증했다. 가상의 미래, 상상 속의 도쿄라는 영화의 설정대로 모든 영화의 세트들은 도쿄의 로케이션에서 건설되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된 폭파씬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음으로 인근 주민의 신고가 빗발치고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2. 글로벌 매머드 시나리오
가상의 시공간이라는 특성과 방대한 규모로 시나리오 집필에만 3년이 걸렸고 영어와 북경어, 일어를 넘나드는 국제적인(?) 대본덕에 십여 명의 동시통역사가 투입되어 대사를 윤색했다. 중국인이 말하는 일본어, 중국인이 말하는 영어 등을 지칭하는 새로운 신조언어가 탄생하기도. 이와이 슌지 감독은 매 장면의 레디 액션을 각 장면의 핵이 되는 언어로 외쳐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영어를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으로 구사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영화에 출연하는 중국인 배우들에게 2~3 시간에 걸쳐 영어로 연기를 디렉팅하기도.
3.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음악감독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 한 거대한 영화음악의 탄생!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OST는 LA와 뉴욕에서 작곡되었고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런던 로얄 필하모닉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 영화에서의 가상의 밴드 옌타운 밴드는 가수 차라를 보컬로 OST 음반 외에 따로 음반을 내기도.
4. 코미디, 느와르, SF, 액션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영화의 스타일이 마침내 영화 결말에서 멜로로 거대하게 흐르는 놀라움. 그 강렬한 영상파워를 만끽하라!
5. <러브레터>의 프로듀서 가와이 신야가 제작을 맡았다. 그는 <역도산>의 일본측 프로듀서로도 활약했다.
가와이 신야: 1958년 출생, 81년에 후지 텔레비젼에 입사하여 프로듀서로 성공가도를 달린다. 87년 영화사 시네스위치 긴자를 설립하고 <러브레터>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역도산>의 일본측 프로듀서로 국내 영화인들에게도 낯익은 이름
6. <언두>, <피크닉>, <러브레터> 등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상미에 오른 팔과 같은 촬영감독 시노다 노보루가 마치 멜로버젼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같은 서정적이면서도 스케일이 살아있는 영상을 구현해냈다
시노다 노보루: 1952년 출생. 대학시절 16mm를 촬영하면서 이와이 슌지를 만나게되고 이후 줄곧 이와이 슌지와 함께 해왔다. <러브레터>로 요코하마 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일본의 젊은 감독들이 가장 작업하고 싶어하는 촬영감독으로 꼽히고 있다.
이 영화에서 기억할 얼굴들
1. 미카미 히로시
이 영화에서 이와이 슌지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중국 상해에서 넘어온 이주민 역을 맡아 영화 내내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며, 가슴 저리게 한다. 웃고 있으면서도 슬픔을 표현할 수 있고, 슬픈 얼굴에서도 희망을 느끼게 할 줄 아는 배우. 영화 속 막대한 영어, 중국어 대사들을 각국의 연기자들로부터 몇 달에 걸쳐 완벽하게 습득하는 열성을 보였다. 영화 속 페이 홍의 초록색 머리 헤어스타일과 다리를 저는 신체의 결점 등은 미카미 히로시가 생각해낸 것으로 페이 홍의 몽상가적인 기질과 지난 날의 어두운 상처들을 관객에게 짐작케한다. 그림책 번역, 자신의 작품집을 출판한 베스트셀러 작가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 차라
<피크닉>에서는 버림받은 천사였던 그녀가 이번에는 창녀에서 옌타운 최고의 가수로 변신하는 구리코 역을 맡았다. 영화 속 그들이 세운 스튜디오에서 My Way를 열창하는 차라의 모습은 슬픈듯 너무나 아름답다.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나비 문신에 집중하라!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현장에서는 남편인 아사노 타다노부가 종종 방문하여 파이팅을 외쳤다고. 5장의 앨범과 11장의 싱글을 발표한 일본의 톱가수이기도 하다.
3. 이토 아유미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시작과 끝을 나레이터의 시선으로 함께 한다. 순수한 십대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이와이 슌지지만 이토 아유미에게 그가 부여한 십대의 모습은 어떤 성인보다 강하고 담담하며 성숙하다. 이와이 슌지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쿨한 십대의 캐릭터를 창조하게 한 이토 아유미의 연기, 놓치면 후회!
4. 에구치 요스케
이와이 슌지 감독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의 촬영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인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류량키라고 밝혔다. 보통 중국어 이름은 멋지다는 생각이 안드는데 류량키는 이름만 들어도 멋지다면서 열렬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이와이 슌지에 따르면 류량키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멋있는 완벽한 캐릭터. 그럼, 그의 매력에 빠져 보시죠!
5. 와타베 아츠로
그러나 국내 모니터 시사 결과 가장 뜨거운 찬사를 받은 캐릭터는 주인공인 페이 홍도, 이와이 슌지 감독이 편애한 류량키도 아닌, 페이 홍의 친구 란. 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공연한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으로 국내에도 수많은 매니아들을 갖고 있는 그가 영화 중 가장 통쾌하고 멋진 장면들을 이끌어내며 남성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씨네21 리뷰
영화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해설이 이어진다. “언젠가 엔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도시는 이민자들로 넘쳐나 골드러시를 방불케 했다… 이민자들은 이 도시를 ‘엔타운’(円都)이라 불렀다. 일본인들은 이 이름을 싫어해 여기로 모여든 이민자들을 ‘엔타운’(円盜)이라 부르며 경멸했다… 이건 엔타운에 모여든 엔타운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가상의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와이 순지표 판타지영화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사실 <스왈로우테일…> 속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그리 멀지 않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엔타운은 아비규환의 전쟁터이자 질긴 삶들이 똬리를 튼 정글이며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다다른 종착역이다. 그런 탓에 한 주인공의 뇌까림처럼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여기가 천국인가?”라는 말 또한 성립된다. 이곳의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일류 가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권투 챔피언에 등극할 거라는, 꿈.
영화는 여러 주인공들의 꿈을 이와이 순지 특유의 비주얼 안에 뒤얽어놓는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없던 한 소녀는 어머니가 죽은 뒤 매춘부 그리코에게 가게 되고, 제비나비란 뜻의 아게하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다. 아게하는 그리코와 친한 페이홍의 고물상에 나가 일을 하게 되고 애벌레에서 완전한 나비로 변태하기 위해 힘껏 몸부림친다. 그리코에게는 가수가 되고 싶은 욕망과 함께 어릴 적 헤어진 오빠와 재회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리코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메이저 음반사에 발탁돼 일약 스타로 떠오르지만, 아게하를 겁탈하려던 야쿠자를 죽였던 일과 관련되면서 위기를 겪는다. 페이홍은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그리코를 위해 클럽을 만들어주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야쿠자의 뱃속에서 나온 위조지폐 데이터를 이용해 마침내 그 꿈을 이루지만, 음반사 관계자들의 견제를 받는다. 그외에도 잃어버린 여동생과 재회하고자 하는 료량키, 언젠가 챔피언에 등극할 거라는 전직 권투선수 아론 등 여러 명의 꿈이 뒤얽힌다.
이들 여러 명의 주인공을 오가며 진행되는 <스왈로우테일…>은 이와이 순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에 속한다. 스릴러, 액션, 멜로 같은 장르적 요소에 성장영화의 모티브와 SF적인 뉘앙스까지 포함한 이 영화는 총알 같은 스피드에 폭발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장르적인 재미에 이와이 특유의 감성을 녹여낸 이 영화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만화적 세계와 디스토피아적 어둠, 맹목적인 사랑 등 세기말의 감흥을 적절하게 담아내 일본 개봉 당시 <러브레터>보다 월등한 6억엔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TV드라마 <프라이드 드래곤 피시>를 만든 뒤 그 속편격으로 시작됐지만, 결국 아사노 다다노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스릴러와는 다른 이야기가 돼버렸다. 이와이 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스왈로우테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는데, 영화와 비슷한 설정이지만 “<러브레터>나 <피크닉> 등을 쓸 때 <스왈로우테일>에서 내가 좋아하는 페이지를 뽑아내 소재로 쓰곤 했”기 때문에 별도의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소설과는 또 다른 영화가 탄생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가상공간과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이와이 순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어떤 역사성이나 사회적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갑갑하기 짝이 없는 일본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스왈로우테일…>은 아나키스트적인 비전까지 제시한다. 주인공들은 위조지폐를 찍어 유포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절반 정도의 대사가 영어로 진행된다거나(엔타운의 공용어는 영어다), 서양 사람이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한다거나 하는 데서도 언뜻 드러난다. 이 모든 요소에도 불구하고 <스왈로우테일…>은 이와이 순지의 작품답게 사랑에 대한 영화다. 그 대상이 오빠건 동생이건 연인이건 엔타운이란 공동체건 간에, 주인공들에게 행동할 용기를 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랑이다. 이 147분의 장대한 막이 내릴 즈음, 쌉싸름한 무언가가 치밀어오르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글 문석 2005-06-21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