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서 콜록거리던 보미, 선배에게 씩 웃어 보이며 진규 멋있었냐고 묻는다.
선배는 요걸 때릴 수도 없고 어째야 하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얄밉게 쳐다본다.
“이런 팔푼아. 밉지도 않냐?”
“……진규는……기다리라고 한 적 없어요…..내가….혼자 기다린 거죠”
“아 예예~ 존경 합니다요~ 일어날 수는 있겠어?”
선배가 보미를 일으켜 두꺼운 잠바를 걸치고, 털모자까지 푹 눌러 씌운다.
“……연습실에……금방 가는데”
“그래도 단단히 입어. 얼른 나야지 너가 좋아하는 노래 하지”
보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선배의 부축을 받아 집을 나선다.
차가운 바람에 보미는 몸을 웅크리고, 아파트 단지를 힘겹게 걸어 나와서야
선배가 잡은 택시에 올라 탈 수 있다.
“여긴……학교 가는 길이 아닌데…”
“어, 오늘은 학교 아니고 다른데서 연습 하기로 했어. 좀 잘래?”
선배의 물음에 보미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는다.
올 거 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가, 그냥 둘러 댄 거 라는 걸 알았다.
그도…… 설마 진짜 전화 올 때까지 그녀가 남산에서 기다릴 거 라고 꿈에도 몰랐다.
누워 있는 동아 몇십통, 그에게 걸려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 했지만,
그녀는 전화를 들 힘도 없었지만, 괜시리 그가 미워서 받지 않았다.
“보미야, 보미야”
선배의 목소리에 눈을 뜬 보미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내린다. 택시는 떠나고,
그녀는 조용한 주위를 둘러 본다.
“여기가 어디에요? 연습실 같은 건 보이지도 않는데…”
“존경스러운 너가 밤 새 송진규 기다린 거기죠~”
보미는 그제야 낯 익은 곳이라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탁- 소리를 내며
터지는 불꽃과 폭죽에 깜짝 놀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는다.
폭죽과 불꽃이 터지며 작은 조명들이 켜지고, 진규와 선배들이 노래를 시작한다.
“….하…..하하하…..”
진규가 보미에게 다가 와, 힘 없이 앉아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모자와 잠바로 꽁꽁 묶여
눈과 코가 겨우 내 놓은 그녀를 내려 보던 진규, 그녀에게 활짝 웃어준다.
“콜록”
“……다음부턴 기다리게 안 할게”
“아냐, 내가 혼자 기다린걸..”
“아프지 마”
눈물이 고인 보미는, 고개를 끄덕이다 눈물을 숨기려고, 고개를 푹 숙인다. 노래를 마친 선배들은
진규를 밀치고 보미 앞에 쭈르륵 선다.
“유보미 뒤엔 이 든든한 선배들이 있으니깐 걱정 없지?”
끄덕끄덕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끄덕이는 보미…
“자, 유보미 양이 제일 하고 싶은 거!! 뭐 할까??”
“케이블…..카…. 타요”
.......
...
..
“저……이 봐, 학생. 학생?”
케이블카 에서 붕- 뜬 느낌을 가지고 있던 보미는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에
눈을 번쩍 뜨며 주위를 둘러 본다.
“아이고, 일어 났구먼. 할머니는 아까 벌써 집에 가셨네”
“네?? 아…..”
“소주 한잔 마시고 잠이 들다니.허허. 할머니가 혀를 차시더니 그냥 가셨어”
아직 술이 덜 깬 듯, 비틀비틀 걷는 보미.
“피…… 의리 없다. 혼자 가시고…”
돌부리에 탁- 걸려 넘어질 뻔한 고비를 넘긴 보미는 머리를 긁적이며 돌을 노려 보다 다시 길을 걷는다.
“……기다려 주지… 난…..그 날도….그 다음 날도… 그다다다다다음날도…지 기다렸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지만, 보미는 피식 웃으며 계속 중얼거린다.
“좀만 시간을 주면……여기 구경 시켜 주고…어? 좋잖아, 어?”
저 앞에 집이 보이자, 보미는 깡총깡총 집 쪽으로 뛰며 할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한다.
“하알머어니이이이~할!머!니이~~~~”
대문 앞에 그녀가 탁- 서고, 집 안에서 노인이 구부정한 허리로 나와 혀를 끌끌 찬다.
“어디서 술주정이여. 그니깐 왜 그 총각 안 따라가고!”
“에헤이~할마니! 사랑해요 사랑~”
그녀가 노인을 꼭 끌어 안자, 노인은 보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왜 일까, 보미가 눈물을 툭- 떨어 뜨린다.
“사람은 말여. 사랑하는 사람하고 떨어져서 못 사는 거여”
“……힘….들죠….그럼?”
“그래, 힘들어 그럼”
“……그래서…..할머니두…. 이 바다 옆에서… 사시는 거죠”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짓는다. 그러다 곧 보미를 떼어 내며 그녀의 팔을 세게 친다.
“어여 들어 가서 자. 그만 주정 부리고!”
“니예~ 헤헤헤”
보미가 방으로 엉거주춤 들어 가고도, 한참을 밖에 서 있던 노인이 그녀의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 간다.
“……한 잔 마시고 취할 거면서 쯔쯔”
이불도 없이 바닥에 누운 보미를 내려 보던 그녀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보미를 굴려서 이불 위로 옮긴다.
“진규 이름만 백번을 부르더구먼…… 돌아가야지, 이제”
보미가 씽긋 웃으며 몸을 돌려 눕자 노인이 얇은 이불을 꺼내어 그녀를 덮어 주고 방을 나간다.
그리고 마당에는 짧은 추리닝 바람의 진규가 서 있다.
“자……나요?”
“그렇네. 언제부터 따라 왔어 그래?”
“슈퍼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요……술 취해서 걷는데 어찌나 불안 하던지…”
노인이 마루에 앉아 진규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손에 검정 봉지를 든 진규는 노인의 옆에 앉으며 그 봉지를 옆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는다.
“원래 술을 못 하나 봐?”
“예……안 마십니다, 원래”
“쯧. 노인네가 마시자니까 거절도 못 했군 그래”
진규가 피식 웃고, 노인도 피식 웃는다.
유보미라는 그녀의 향기에. 그녀의 존재의 향기에…. 매혹 된 듯한 행복한 미소..
“아직도 화가 안 풀린 것 같아요”
“이틀 안에 풀릴라고”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2달이 아니고 훨씬 긴 세월이었어요”
“얼른 데리고 올라 가게. 정 더 붙이기 전에”
노인이 구부정하게 일어나 진규에게 얼른 가라고 손을 휘휘 젓는다.
진규는 옆에 놓인 검은 봉지를 집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내일. 서울에서 지원군들이 옵니다.
유보미를 너무 사랑해서, 너무 보고 싶어하는 세 사람들이요”
첫댓글 재미있게 읽어답니다...보미가 섭섭한가 보군요...이 왕이면 같이 갔으면 버램이고 여기구경시켜주고 싶었는데.....술취한체 집에오는데 진규가 뒤에서 따라왔군요....네일이면 지원군이 온다고 하니...누구일까요....재빈이 준희 그리고 한사람은누구....다음편도 ...고고고...
드라마짱님~항상 댓글도 남겨주시고...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소설을 올릴때마다 힘이 불끈불끈 솟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