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504) - 찜통더위를 식혀준 장사익 3박자
예년보다 무더운 여름, 외국에서 보내온 메일에 한국은 지금 무척 덥다는 소식을 전하며 건강하고 보람된 날들 보내시라고 답을 보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터에 검찰 출신인사들의 연이은 비리시리즈, 사드 배치와 북핵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남북관계 등 온 나라가 평안한 날이 없다. 이래저래 짜증스런 때에 온몸으로 노래하는 장사익의 이야기로 열기 오른 가슴을 식혀보자.
찜통더위를 피하여 냉방장치가 잘된 노인건강타운을 찾았다. 공연장에 들르니 흘러간 가요무대의 녹화공연이 한창이다. 화면에 등장한 가수는 찔레꽃을 부르는 장사익, 가슴을 쥐어짜는 애절한 사모곡과 함께 화면 가득하게 클로즈업되는 주름살 얼굴이 인상적이다. 가요무대에 이어 영화(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감상하고 도서실에 내려와 묵직한 주제의 책을 읽는 시간이 알차다.
아침 신문을 펼치니 어지러운 시사 관련 기사 한 모퉁이에 ‘꽃인 듯 눈물인 듯’ 노래하는 장사익이란 제목의 글에 눈길이 간다. 때에 맞춰 전날 인상 깊게 본 장사익의 주름살 얼굴에 스민 사연을 접하다니. 내용은 이렇다. ‘공연 팸플릿 사진에 주름살이 많이 나온 걸로 골라 달라고 했다. 잘나고 멋있는 사진 말고 늙수그레한 사진을 찾아 달라는 것. 가수가 뭔 주름이 자글자글하냐고 여러 사람이 뭐라고 하는데, 어느 날 객석의 관객이 보이더라.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관객들, 나 혼자 젊게 보이면 어찌 함께 호흡할 수 있겠는가.”
아침을 들고 나서 차 한 잔 마시는 데 아내가 튼 노래 가락이 낯익다. 곡목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인데 목소리는 장사익의 것, 여러 곡의 장사익 노래가 계속 이어진다. 독심술을 익혔을까, 이처럼 우연으로 연결되는 신기함이 더위로 지친 삶의 고담함을 가슴까지 시원하게 뚫어준다. 답답한 여러분의 가슴도 뻥 뚫리시기를.
신문에서 다룬 장사익의 사연을 덧붙인다.
‘꽃인 듯 눈물인 듯’ 노래하는 장사익
장사익 선생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으로 시작하는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금년 초, 성대에 혹을 발견하여 수술을 하고 이제는 차츰 노래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 노래를 잃고 지낸 시간은 눈물이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 그때가 진정 꽃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장 선생과 통화를 했다.
수술을 하고 보름간 말을 한마디도 못하게 하데. 보름 동안 예전 내 소리를 들었어. 목청 하나 믿고 객기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지나온 길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도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겨.”
그는 수술 후 보름 만에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안산시립국악단의 20주년 기념연주회였다. 수술 전에 정해진 약속을 지키려 고심 끝에 선 무대, 3000명의 관객이 지켜보고 있었다.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처지라 노래 대신 시를 읊었다.
그런 후 관객의 양해를 구해 반주만 세 곡을 틀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노래 없이 무대에 서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죽고 싶더라고. 아파 보니 목소리와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어. 인생이 어찌 보면 꽃이고 눈물이잖아. 그 시간이 내겐 눈물이었어.”
6월 초 장 선생은 브라질을 다녀왔다. 광복절 기념 특집 KBS ‘가요무대’ 녹화를 위해서였다.
수술 후 첫 무대였다. “소리가 제법 나왔어. 90%는 나온 겨. 정말 행복했어. 그게 바로 꽃이지 뭐겠어.”
장 선생이 올 10월부터 서울을 비롯해 8개 도시 공연을 한다. 새로운 노래 인생의 시작인 셈이다. “노래를 못 할 땐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 노래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고.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노래라는 것을 다시 느꼈지. 노래 하나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전 김녕만 사진작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장 선생이 공연 팸플릿 사진에 주름살이 많이 나온 걸로 골라 달라고 했어. 잘나고 멋있는 사진 말고 하필이면 늙수그레한 사진을 찾아 달라는 겨.”
김 작가는 장 선생과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다. 『장사익』이란 사진집을 따로 낼 정도로 각별한 정을 나눈다. 한 개인의 사진으로만 사진집을 낸다는 일, 웬만큼 붙어 다니지 않고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동고동락하며 『장사익』이란 사진집을 따로 냈을 정도니 멋있는 사진은 숱할 터다. 그런데도 장 선생이 하필 주름살 많은 사진을 골라 달랬다는 게다.
오래전 장 선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수가 뭔 주름이 자글자글하냐고 여러 사람이 뭐라고 하데. 보톡스를 권유하는 이도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객석의 관객이 보이더라고.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 가는 관객들이 거기 있었어. 나 혼자 젊게 보이면 어찌 함께 호흡할 수 있겠어.” 주름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을 요청한 이유, 홀로 가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간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10월에 있을 장 선생의 공연 제목 또한 ‘꽃인 듯 눈물인 듯’이다. 눈물인 듯 꽃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다시 시작될 장사익의 노래 여행일 것이다.(중앙일보 2016. 7. 3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Beyond] ‘꽃인 듯 눈물인 듯’ 노래하는 장사익)
* 인생은 아름다워 이번 시리즈에서 장사익을 소재로 다루겠다고 하니 아내가 참고하라며 다음 글을 메일로 보내준다.
‘동백아가씨
야야 장사이기 노래 쪼까 틀어 봐라이
그이가 목청하나는 타고난 넘이지라
동백 아가씨 틀어불면
농협 빚도 니 애비 오입질도 암 것도 아니여
뻘건 동백꽃 후두둑 떨어지듯
참지름 맹키로 용서가 되불지이
백 여시 같은 그 가시내도
행님 행님 하믄서 앵겨붙으면
가끔은 이뻐보여야
남정네 맘 한쪽은 내삘 줄 알게 되면
세상 읽을 줄 알게 되는 거시구만
평생 농사지어 봐야
남는 건 주름허고 빚이제
비 오면 장땡이고
햇빛 나믄 감사해부러
곡식 알맹이서 땀 냄새가 나불지
우리사 땅 파먹고 사는 무지랭이들잉께
땅은 절대 사람 버리고 떠나질 않제
암만 서방보다 낫제
장사이기 그놈 쪼까 틀어보소
사는 거시 벨 것이간디
저기 떨어지는 동백 좀 보소
내 가심이 다 붉어져야
시방 애비도 몰라보는 낮술 한잔 하고 있소
서방도 부처도 다 잊어불라요
야야 장사이기 크게 틀어봐라이
장사이기가 오늘은 내 서방이여
권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