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熱砂)의 맹서(盟誓)>의 원곡이 주제가로 사용된 일본 영화 <熱砂の誓い>에는 주제가가 한 곡 더 있었다. 주제가 <熱砂の誓い>와 같은 음반 앞뒷면에 함께 실려 일본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된 또 다른 주제가는 <紅い睡蓮>이란 곡이다. 이 노래 역시 <熱砂の誓い>와 마찬가지로 사이조야소(西條八十)가 작사하고 고가마사오(古賀政男)가 작곡했으며, 노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한 리샹란(李香蘭)이 불렀다.
<紅い睡蓮>은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얼마 뒤 우리나라에도 번안곡으로 소개가 되었다. <熱砂の誓い>의 번안곡 <열사의 맹서>가 1940년에 나온 원곡보다 한참 늦은 1943년에 나온 것과 달리 <紅い睡蓮>의 번안곡 <백련홍련(白蓮紅蓮)>은 원곡이 발표된 지 1년 뒤인 1941년 10월 신보로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음반번호 40876)
꽃 피는 북경(北京)에 청사등(靑紗燈)이 켜질 제/ 나는요 꿈을 꾸는 중국 아가씨/ 연꽃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그리워/ 꽃잎은 여덟아홉 꽃잎은 여덟아홉 하소연은 한 줄기
새빨간 연꽃마다 바람결에 흔들려/ 그대의 검은 머리 싱그러웁다/ 사랑의 조각배를 저어 가는 두 사람/ 물결은 찰랑찰랑 물결은 찰랑찰랑 행복 ** ***
그대는 해 뜨는 곳 사쿠라의 사나이/ 이 몸은 **** ** 수선화/ 꽃이야 다를망정 마음만은 한 가지/ 언제나 기다리는 언제나 기다리는 꽃이 피는 아세아
(가사지 내용을 현재 맞춤법에 따라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열사의 맹서>와 마찬가지로 이가실(李嘉實)이 붙인 가사를 보면, 번안곡이면서도 영화주제가로 나온 원곡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원곡의 가사와 비교를 해 보아도, 새로운 가사를 작사했다기보다는 거의 직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일치한다.
花の北京の 灯点し頃を/ 妾しゃ夢みる 支那娘/ 芙蓉散れ散れ 君待つ窓に/ 花はここのつ 花はここのつ 願いはひとつ
紅い睡蓮 やさしくゆれて/ 君が黑髮 風薰る/ 愛の小舟に 夢見る二人/ 波よ運べよ 波よ運べよ 幸住む國へ
君は日の本 櫻の男子/ 我は古里 百合の花/ 花は違えど 想いは一つ/ 待つはアジアの 待つはアジアの 花咲く朝
원곡보다 오히려 군국가요적인 색채가 더 많았던 <열사의 맹서>와는 분명 다른 경우라 하겠는데, 이는 아무래도 <백련홍련>과 <열사의 맹서>가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시점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백련홍련>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1941년 12월 이전에 발표된 것인데, 그 무렵은 아직 본격적인 군국가요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던 때이다. 반면 <열사의 맹서>가 발표된 1943년 1월은 군국가요가 가장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던 때이므로, 같은 영화의 주제가가 원곡이었다고는 해도 번안 과정에서 군국주의 색채를 덧붙이는 정도에 차이가 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가사지 상태가 좋지 않아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백련홍련>은 일본 남자와 중국 여자의 사랑을 섬세하게 묘사한 평범한 사랑노래(물론 그러한 사랑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미화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도 분명하기는 하지만)로도 보인다. 하지만 원곡에서도 그렇고 <백련홍련>에서도 그렇고, ‘꽃이 피는 아세아(원곡에서는 ‘아세아의 꽃 피는 아침’으로 표현)’를 기다린다는 표현만큼은 군국주의 색채가 상당히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련홍련>은 가수 이해연(李海燕)(1924-)이 불렀는데, 1940년에 열린 콩쿨대회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가수가 된 그가 처음으로 취입한 데뷔곡이 바로 이 <백련홍련>이기도 했다. 이해연이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1950년대에 발표된 그의 대표곡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만큼은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신인이면서도 시원하고 박력 있는 목소리로 주목을 받아 인기가수 반열에 든 이해연이었지만, 불행히도 그가 가수로 데뷔한 1941년 10월 이후 1943년 말까지는 군국가요가 넘쳐나던 때였다. 때문에 그 사이에 이해연이 발표한 스무 곡 가량의 노래 가운데에는 <백련홍련> 말고도 군국가요의 흔적이 조금씩 있는 노래들이 있다.
<고향산천>(남려성(南麗星) 작사, 손목인(孫牧人) 작곡, 만조메타다시(萬城目正) 편곡, 콜럼비아레코드 40892, 1942년 9월)에서는 고향을 찾아가는 정경을 묘사하면서 ‘나라님껜 충성일세’라는 구절을 슬쩍 끼워넣었고, <청란(靑蘭)의 꽃>(남려성 작사, 손목인 작곡, 만조메타다시 편곡, 콜럼비아레코드 40896, 1942년 12월)에서는 남국의 정취를 그리면서 ‘동아(東亞)의 새 세상’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동(嶺東) 아가씨>(이가실 작사, 손목인 작곡, 오쿠야마테이키치(奧山貞吉) 편곡, 콜럼비아레코드 40908, 1943년 4월)라는 노래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정 깊은 오라버니 싸움터로 보내고’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노래들은 군국가요로서 일관된 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두 대목에 군국주의적 분위기를 풍기는 단어나 구절을 형식적으로 끼워넣은 것에 불과하므로, 과연 군국가요라고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여지가 많은 편이긴 하다. 그렇지만 일제 말기 군국가요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예에 대해서도 빠짐 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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