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함
2003년초 선교사로 출발을 할 때 파송교회가 없었다. 선배목사가 50% 선교비 부담을 하기로 했지만 형편이 어렵다보니 선교비는 단 한번으로 끝나 버렸다.
당시에 교회정보센터에 강해설교 원고를 기고중이라서 30여만원의 원고비가 들어왔고 10만원씩 개인 약정해 주신 분들이 10여분 됐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약속으로 끝이었다. 그럼에도 1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바량의 원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버팀은 아파트를 매각하고 아들을 위해 전세집을 얻고 남은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를 선교사 파송하는 일에 협력을 해주신 선배목사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움을 겪던차이라 몫돈을 빌려주고 매월 푼돈으로 받아야 했다. 결국 아파트 매각대금은 그렇게 푼돈으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그 돈으로 전세를 끼고 소위 말하는 갭투자를 하면 그 어떤 예금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선배의 건축비용 채무를 위해 교회에 빌려줬다.
만일 그 때 선배에게 빌려주지말고 부동산을 구입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현재 생활비 조달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 때 구입하려고 점찍어 둔 아파트는 몇년 후 재건축을 해 지금은 수억대를 형성하고 있다. 성도가 천국에서 상을 얻기 위해서는 이 땅의 풍요를 희생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미련도 연연도 하지 않는다. 지금 그 선배목사는 먹고 살만해 졌지만 우리의 고마움은 전혀 모르는듯 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기쁘다. 그만큼 내가 장차 받을 상이 크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모친은 내가 3살 때 부친과 헤어지고 평생을 혼자 사셨다. 약삭빠른 부친은 모친에게 땅 한평도 주지 않았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조부님께 상속받은 땅을 모친께 위자료로 주었드라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모친은 나를 외가에 맡기고 인천에서 혼자 살면서 기반을 잡으려고 애를 쓰셨다. 세살에 외가로 가서 2년정도 모친과 함께 보내고 그 이후부터는 줄곧 외조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11살 때 큰댁을 거쳐 열세살이 되면서 부친에게로 가 중고등학교를 보내게 되었다.
모친과 다시 만난 것은 내가 청년이 된 후 였고 그것도 잠시일 뿐 줄곧 서로는 떨어져 살았고 결혼 후 외사촌누님의 노력으로 모친의 주소를 찾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혼자 살아온 모친은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결국은 멀어지게 되다가 우리가 선교지로 나가면서 부터는 더욱 왕래가 뜸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귀구할 때마다 찾아뵙게 되지만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행동 때문에 왕래도 뜸해지고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나마도 끊어지게 되었다. 신호는 가지만 통화연결이 안되서이다. 후에 알고보니 99%광고전화 때문에 아예 전화코드를 뽑아버렸다고 하셨다.
어떻든 모친은 훗날 자식을 위해 한푼 두푼 안쓰고 안입고 저축을하여 1억을 만드셨다고 하였다. 전세보증금 절반과 현금으로 절반을 보유하셨다.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기위해 예금을 할수가 없었다. 현금보관에는 에피소드가 많다. 어떻든 우리가 선교지에서 귀국 후 이모님을 통해 모친이 별세했다는 허위정보 아닌 오해로 나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구청에 근무하는 친구동생의 배려와 노력으로 모친의 주소지를 찾아 상봉을 이룰수 있었다.
상봉 후 1년반 정도 지나 89세에 요양병원에서 별세를 하셨다. 후원금 고갈과 재정난으로 강제 귀국한 나로서는 다시금 선교지로 나갈 비용이 미련된 셈이다. 하지만 나는 결단을 못한다. 코로나를 거치며 선교지마다 사정이 악화된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스파이법이라는 악법이 시행돼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할 일이 없어졌다. 더군다나 비자발급 단계에서 학력과 증명서까지 제출하도록 법이 강화된 것은 어떻게든 사전에 선교사의 입국을 막으려는 중국정부의 차단수법이라 생각된다.
과연 선교사는 무조건 선교지에 나가기만 하면 다일까? 그렇지는 않다. 뭔가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자녀에게 현지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긴 안목으로 보면 선교에 대한 투자일 수는 있다. 하지만 엄밀히 그런 것은 선교가 아니다.
만일 지금 내가 선교지로 복귀한다면 나로서는 그냥 현지에서 기도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수단이 없다. 물론 현지인 사역자를 맨투맨으로 예수동행운동을 지도할 수 는 있을 것이다.
이제 선교사는 반드시 예수동행으로 훈련된 자라야지만 파송받을 자격이 있다. 선교사의 선교보고는 안제나 거품이 풍성하다. 그러나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선교사의 보고는 진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