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탐험사 100장면 36- 비행기로 북극점에 도전하다 북극의 전체 모습을 본 리처드 버드(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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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3.18. 19:05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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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탐험사 100장면
비행기로 북극점에 도전하다
북극의 전체 모습을 본 리처드 버드(1926년)
요약 1926년, 버드는 비행기로 북극점 정복을 위해 나섰다. 리처드 버드는 당시 북극점인 북위 89도 95분을 지나며 하늘에서 북극 전체의 모습을 보는 데 성공한다. 1909년의 피어리는 개썰매로 다녀왔으므로 버드야말로 북극점 일대를 한눈에 담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리처드 버드와 비행기
1926년 4월 29일, 미국 해군 중령 리처드 버드를 태운 배가 그린란드와 노르웨이 사이 북위 80도에 있는 스피츠베르겐 섬에 도착했다. 배에는 그의 애기(愛機)조세핀 포드호가 실려 있었다. 섬에는 남극점 탐험의 영웅 로알 아문센이 먼저 와 있었다. 두 사람 다 하늘을 날아 북극점을 정복하려고 온 것이다. 버드는 비행기로, 아문센은 비행선으로.
궁하면 통한다
스피츠베르겐 섬에 먼저 온 아문센이 1척밖에 댈 수 없는 부두에 배를 대고 있어서, 버드는 비행기를 싣고온 배를 먼바다에 둔 채, 보트 4척을 이어서 널빤지를 깔고 비행기를 실어 섬기슭으로 끌고 갔다.
피어리가 개썰매로 북극점에 닿은 해(1909년)로부터 17년이 흐르도록 비행기로 북극에 간 사람은 없었다. 말하자면, 피어리는 육지로 다녀왔으므로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극히 한정된 세계였고, 광활한 북극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 어디엔가 커다란 땅덩어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무렵의 원시적인 비행기로는, 북극의 거센 바람과 좋지 못한 날씨 속에서 먼 거리를 비행한다는 것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 이 엄청난 일에 아문센과 버드가 도전한 것이다.
5월 3일 시험 비행을 하던 버드의 비행기가 스키를 부러뜨렸다. 버드가 이를 고치는 사이 아문센의 비행선이 도착했다. 노련한 아문센이 차근차근 비행선을 점검하는 사이 젊은 버드는 서둘러 출발 준비를 했다.
5월 8일. 날씨가 아주 푸근했다. 정오에 버드의 3발 포커기는 얼음 위를 기세 좋게 달렸다. 그런데 막 이륙하려던 기체가 기우뚱하더니 눈속에 처박혔다. 질퍽해진 눈이 비행기 스키에 얼어붙어 일어난 사고였다. 그날 밤 기온이 내려가자 얼음은 다시 단단해졌다.
5월 9일 오전 1시 37분. 항법사 버드와 조종사 플로이드 베닛을 태운 3발 포커기는 얼음 위를 무사히 미끄러져 날아 올랐다. 비행기는 고도 600m까지 상승한 뒤 곧장 정북 방향으로 날아갔다.
사방이 흰색이어서 방향을 잡기 어려웠지만, 버드는 미국 국립지리학회가 특별히 만들어 준 태양 나침반을 믿고 날았다. 그것은 자석 나침반이 쓸모없어지는 북극 지방에서도 잘 듣는 특수 나침반이었다.
얼마쯤 갔을까. 느닷없이 눈덮인 산봉우리들이 앞을 막아섰다. 얼마나 놀랐던지 베닛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움찔했다. 그대로 나아가다가는 산봉우리에 부딪힐 것이 뻔했다. 베닛이 허겁지겁 기수를 올리는 순간 산봉우리들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것은 피어리도 보았다고 말한 북극 신기루였다.
북극점까지 144km쯤 남았을 때 베닛이 아무래도 오른쪽 엔진이 이상하다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기름이 새고 있었다. 엔진 소리가 시끄러웠기 때문에 베닛은 종이에 뭔가를 휘갈겨 써서 보여 주었다.
'엔진이 곧 꺼질 것 같아요.'
'그렇게 심한가?'
'언제 꺼질지 모릅니다. 착륙해서 고치는 게 좋겠습니다.'
버드는 끝없이 펼쳐진 흰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3톤이나 되는 비행기가 바다 위 얼음에 내려앉기란 기름 새는 것 못지 않게 위험하다. 북극 점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일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품속에 지닌 동전을 힘껏 쥐었다. 피어리가 북극점에 갈 때 가져간 동전을 물려받은 것이다. 뜨거운 힘이 손바닥에 그득 고이는 것 같았다. 그는 마음을 정했다.
'우린 멈추지 않는다.'
베닛은 썩 내키지 않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름은 계속 흘렀고, 비행기는 그대로 날았다.
얼마 후 버드가 시계를 꺼내 보니 거의 9시였다. 그가 태양 쪽으로 나침반을 들었다. 그들은 북위 89도 55분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숨을 죽였다.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여기야 여기! 지금 북극점 위를 날고 있다고!"
버드가 외치는 순간 비행기는 북극점 위를 지나쳤다. 1926년 5월 9일 오전 9시 2분. 눈에 띄는 것은 얼음뿐이었지만 정확히 북위 89도 95분이었다(지구의 자전(自轉) 굴대는 날마다 조금씩 바뀌므로, 그 날의 북극점은 90도가 아니라 89도 95분에 있었다).
버드와 베닛은 북극점 위를 한 바퀴 돌았다. 버드는 무비 카메라 촬영을 하고 나서 성조기를 창 밖으로 던졌다. 북극점은 바다를 덮은 얼음 위의 한 점이었다. 이 보이지 않는 점은 어느 때는 빙산 위에, 어느 때는 물결 위에 있었다. 피어리의 북극점 관측이 정확했다는 것을 알고 버드는 놀랐다. 그러나 피어리는 썰매로 다녀 왔으므로, 버드야말로 북극점 일대를 한눈에 담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오른쪽 탱크에서는 여전히 기름이 흘렀다. 두 번째로 북극점 위를 돌기까지 13분이 걸렸다. 9시 15분. 그들은 기수를 남으로 돌렸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은 무섭게 덮쳐오는 졸음과 7시간 넘게 싸웠다. 다행히 바람이 뒤에서 불어 가볍게 날 수 있었다.
오후 5시 스피츠베르겐을 떠난 지 15시간 23분 만에 그들은 왕복 1,100km를 날아 다시 땅을 밟았다. 맨 먼저 마중나온 이는 아문센이었다. 쉰셋인 아문센이 서른일곱인 버드에게 물었다.
"다음은 어디인가?"
버드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남극입니다."
"대단한 모험가로군. 자넨 해낼 걸세. 썰매는 이제 낡은 방법이야. 비행기는 새로운 방법이고, 남극을 진짜로 정복할 수 있는 수단이지."
아문센은 다음날 비행선을 타고 북극점을 지나 알래스카에 닿았다. 이틀 사이에 하늘에서 두 가지 대기록-북극점 왕복 비행과 북극해 횡단 비행-이 세워진 것이다. 그 날 아침 베닛이 연료 탱크를 살펴보니 중간쯤에 못구멍이 나 있었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구멍이 아래쪽이나 바닥에 뚫리지 않은 덕분이었다.
버드는 1년 뒤인 1927년 6월 29일 뉴욕에서 프랑스(브르타뉴 해안)까지 무착륙 비행에 성공했다. 린드버그보다 40일 늦었지만, 동료 3명과 3톤이나 나가는 포커기로 대서양을 거뜬히 건넘으로써 2년 동안 두 번이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버드는 아문센에게 다짐한 대로 1929년 남극점 왕복 비행에도 성공했다. 남극에 관한 한 버드만큼 공적을 많이 남긴 사람은 없다. 남극 대륙은 거의가 그에 의해 밝혀졌고, 지도가 그려졌다. 그는 아문센이 말한 낡음(개썰매)과 새로움(비행기)을 조화시켜 남극 대륙을 샅샅이 탐험하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