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11]물의 평화,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의 노래
산천초목이 온통 초록초록한 세상으로 탈바꿈(환골탈태)을 하면, 들판의 논들에 물을 잡기(담아놓음) 시작합니다. 모를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물이 모두 논으로 모이는 때입니다.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 들길(논길)을 걷습니다. 달빛에 비친 물을 잡아놓은 논을 바라보니, 산그림자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미 오열(五列)을 맞춰 심어놓은 어린 모들도, 그 물의 수평에 비춰 제 모습들을 뽐내고 있습니다. 최근 며칠 물에 대해 성찰하는 귀한 산책길이 되었습니다. 물은 모이기만 하면 곧바로 ‘수평(水平)’을 잡습니다. 높낮이가 없이 평평하다는 뜻이지만, 수평은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물은 위아래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잘난 체도 하지 않고 한없이 겸손한 게 물입니다. 말 그대로 ‘물의 평화(平和)’입니다. 물은 막히면 돌아갑니다. 물이 고여 정체돼 있으면 썩게 됩니다. 물의 평화를 들어보셨는지요? 물은 전혀, 절대로 다투지 않고 만물에 이로움을 줍니다(水善利萬物而不爭). 또한 대중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뭅니다(處衆人之所惡). 물이 곧 평화입니다. 전쟁은 질색이지만 평화는 최고입니다. 평화처럼 좋은 게 있을까요? 인류에게 엄청난 이득을 준 불(火)은 파멸의 단초가 되기도 하지만, 물은 영원한 만물의 근원입니다. 서양철학자 탈레스가 아주 오래 전에 알아봤지요.
노자(老子)도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했습니다. ‘으뜸의 선(착함)은 물과 같다’는 말은 결코 쉬운 말이 아닌, 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시인인 친구는 아예 호가 약수( 若水)입니다. 모를 심으려고 논바닥에 잡아놓은 물을 바라보며 ‘수평(물의 평화)’에 대해 철학적으로 설파해놓은 책 『논 벼 쌀』(김현인 지음, 전라도닷컴 펴냄)이 떠올라 뒤져봅니다. 2019년 펴냈으니 벌써 7년이 됐군요. 이 나라의 이름없는 ‘농(農)꾼’이 “논이 국토의 눈물이고, 벼가 겨레의 숨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쌀 미(米)자의 파자(破字)가 왜 여덟 팔(八)자 2개인지, 사람의 정기(精氣)를 말할 때 왜 ‘쌀 미’변인 줄도 그 책, 그 글로 알게 됐었습니다. 당시 제가 어설프게 써놓은 서평 비스무레한 글이 출판기념회에서 화제가 됐다하며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서평만이라도 읽어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신 47/191208]겨레의 숨결이여! - Daum 카페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통신 37/191124]『논 벼 쌀』이라는 책 - Daum 카페
이 새벽 모내기철 딱 맞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겠지요. 물은 엄청난 홍수 말고는 언제나 삶의, 생활에 보약(補藥)입니다. 우리 몸의 60-70%가 물로 이뤄져 있습니다. 몸 안의 물이 세포를 살리기에 우리의 생명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한달새 술(알코올)을 한잔도 마시지 않는데, 오래도록 그럴 작정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도 소주잔이면 소주잔, 맥주잔이면 맥주잔에 물을 따라 연신 건배하며 마십니다. 고상한 말로 맹물을 ‘현주(玄酒)’ 또는 ‘5대 복합주(五大複合酒)’라며 어떤 술자리도 피하지 않습니다. 현주는 안동 등 양반집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 맨처음 올리는 ‘술’을 말합니다. "조상님이시여, 현주를 올립니다"라고 한다지요. 왜 검을 현(玄)자를 쓰며 술이라고 하냐구요? 동양사상에서는 처음부터 하늘을 검다(캄캄하다)고 보았답니다. 천자문 첫 구절이 ‘천지현황(天地玄黃)’ 즉,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이지요. 물은 '태초의 음료'입니다. 조상님들이 우물을 파 물을 우리에게 물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시들 살아갈 수가 없었겠지요. 하여, 물을 마시며 조상님들의 은덕을 생각한다는 뜻이랍니다.
70년대 미국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ROOTS)>라는 소설이 히트친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노예의 딸로 이어진 후손이 7대조 ‘킨타쿤데’ 할아버지의 실명(實名)을 구술(口述)로 전해지는 ‘육성족보’에서 확인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때 영문과 동기인 화교형님에게 ‘뿌리’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하더니 <음수사원>(飮水思源)이 맞겠다고 해 탄복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을 마시며, 태초의 음료인 이 물을 물려준 조상님의 고마움을 생각한다는 말이 맞지 않나요. 우리는 흔히, 아니 날마다 자기가 그냥 태어난 존재인 줄 알지 조상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지 않나요. 현재가 있으니 과거가, 현재가 있으니 미래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근본(根本)을 알지 못하거나 잊고 산다는 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 할 도리가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인두겁을 쓴 인간말종 인간들이 왜 그리 많은지요. 물은 하루에 1.5리터 이상 마시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시도때도 없이 물을 술처럼(현주)처럼 마십니다. 더구나 5대복합주(H2O, 미네랄, 전해질, 염도)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논바닥에 고인 물과 물의 평화인 수평을 보면서, 지구상에 벌어지는 전쟁의 갈등들을 생각해 봅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요? 죄없이 죽어가는 여성과 아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또 어떻구요? '물의 조용하고 잔잔한 평화(水平)'를 바라보면서 '하늘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를 생각해본 단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