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작은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인 러스티 제임스(맷 딜런)는 ‘모터사이클 보이’라 불리는 형(미키 루크)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 속에서 살고 있다. 러스티 가족은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데니스 호퍼)는 알콜 중독자가 됐고, 러스티의 형은 생활을 등한시 한 채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가족 모두 타락하게 됐다. 한편, 마을을 평정했던 모터사이클 보이가 떠나던 날, 그는 모든 폭력배들에게 전쟁의 종식을 명령했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러스티가 다른 폭력 조직과 싸움을 시작하며 이 룰을 깨뜨리고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러스티와 비프 윌 콕스(글렌 위드로우)의 전쟁이 시작되는 날, 러스티의 형이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러스티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비프가 칼을 휘둘러 러스티는 중상을 입게 된다. 이를 본 모터사이클 보이는 러스티와 함께 자리를 뜬다. 러스티를 집에 데려와 응급 치료를 마친 형은 러스티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러스티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한편, 돌아온 러스티의 형 곁에는 항상 경찰이 붙어 다니며 그를 감시한다. 이제는 마약 중독자가 돼 만신창이가 돼 버린 그녀의 옛 애인 패티(다이안 레인)을 만나던 날, 모터사이클 보이는 한 창고에 들어가 우리 속의 새와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놓아준다. 그렇게 어둠 속 창고 속에서 러스티의 형이 뛰쳐나오는 순간, 벽 뒤에서 무장한 경찰의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제작 노트
주제한국 개봉당시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럼블 피쉬>는 코폴라 버전의 <이유 없는 반항>이라 할만하다. 당대의 청춘스타들이 등장하는 반항적 청춘영화라는 점에서 같은 해 만든 <아웃사이더>가 좀 더 대중적이라면 흑백영화인 <럼블 피쉬>는 좀 더 코폴라의 야심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이다. 전작인 <원 프롬 더 하트>(1982)가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 영화였다면 <럼블 피쉬>는 고전적인 영화 문법을 상당히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적재적소에 쓰인 딥 포커스와 부감 쇼트는 힘들게 그 나이를 통과하고 있는 인물들의 불안감을 절묘하게 잡아내고 있다. 그러한 주제의식이 집약돼 있는 것은 바로 형과 아우인, 모터사이클 보이와 러스티의 관계다. 러스티는 영화 내내 모터사이클 보이라 불리는 형을 이해해보려고, 혹은 닮아보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우상화된 모터사이클 보이는 차라리 안티히어로에 가깝다. 그는 어느 순간 어둠의 세계로부터 발을 빼려 하지만 러스티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미 블록버스터 산업이 뿌리를 내린 1980년대 할리우드의 절망적 흑백 청춘영화라는 점에서 <럼블 피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TV 가이드
1982년 <원 프롬 더 하트>가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실패한 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다음해에 두편의 청춘물, <아웃사이더>와 <럼블피쉬>를 선보인다. 그런데 이들 역시 그를 재정적 위기에서 구해주지는 못했다. 두 작품 모두 당대의 떠오르는 스타들(맷 딜런, 다이앤 레인, 니콜라스 케이지, 미키 루크 등)을 대거 기용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럼블피쉬>는 <아웃사이더>보다 훨씬 더 실험적이고 암울하다. 청춘의 분노와 슬픔이 적당히 낭만화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다른 청춘물과 그다지 차별성을 지니지 않지만, 미장센이나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 그리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유독 과잉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에너지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청춘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추하고 비참한 군상을 취하게 하는 마약의 기운처럼 퍼져나온다. <럼블피쉬>는 좀 과도하게 청춘의 상처를 비극화하는 영화일 수는 있어도 그 상처를 적당한 거리에서 추억하는 영화는 아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동생 러스티 제임스(맷 딜런)는 ‘모터사이클 보이’라고 불리는 형(미키 루크)을 동경한다. 형은 동네 최고의 싸움꾼이었다. 그는 이제 그러한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하며 자유를 꿈꾸고 동생은 형의 자리를 욕망한다. 그러나 가난한 형제의 꿈에 냉정한 세상이 대답해줄 리 없다. 세상의 비극을 모른 채, 푸른 하늘 위를 떠가는 <엘리펀트>의 구름처럼, <럼블피쉬>의 구름은 검은 하늘 위를 무심하게 흐른다.
<럼블피쉬>의 장르는 굳이 구분한다면 청춘물이지만, 일반적인 청춘물이 리얼리즘적인 화법에 기대고 있는 데 반해, 이 영화는 누아르와 판타지가 뒤섞인 듯한 인상을 준다. 시종일관 흑백화면 속에서(영화 속에서 형은 세상 모든 것을 흑백으로밖에 볼 수 없는 색맹이다. 그가 유일하게 색을 알아보는 존재가 럼블 피쉬다) 그림자로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이나 폐허가 된 도시와 그 도시를 감싼 뿌연 밤안개, 홍콩 영화를 연상시키는 집단싸움신은 누아르의 것이고,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 소리들, 이를테면 현재의 장면에 오버랩되는 과거의 소리 등은 음향을 극대화한 판타지의 특성이다.
덧붙여, 젊고 사색적인 미키 루크를 보며 <씬 시티>의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슬프다.
글 남다은(영화평론가) 2006-08-31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