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살 밖에 안 된 네덜란드 자폐 여성 로렌 호베(Lauren Hoeve)가 조력자살을 통해 저세상으로 떠났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자택에서 부모와 단짝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2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오피니언 란에 주디스 우즈가 '그녀의 고통이 이해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눈길을 끈다. 그의 사망 소식은 그를 잘 모르거나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우한 이들에게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주 젊은 나이에 이런 선택을 한 데다 그의 분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심리적인 것에 기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말기 암 환자도 아니었고, 운동 뉴런 질환(MND)으로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가 자살을 도우면 안된다고 제재해야 하는지 격렬하게 찬반이 갈린다 해도 그 사악한 고통을 참기 어렵다는 점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다. 호베는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었으며 2019년 이후 극심한 만성 피로증후군(ME)을 갖고 있었다.
이런 진단을 받기 전에는 열렬한 등반가였으며 달림이였다. 하지만 차츰 침대 언저리에서만 지냈고 낙담했다. 자신의 블로그 '브레인 포그'(Brain Fog)에 욕지기를 하고 탈진한 자신의 모습을 올리며 삶이 “절대 고문”처럼 느껴져 죽고 싶다고 털어놓곤 했다.
다음은 주디스 우즈의 글이다.
어느 정도 나는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 간절히 바라던 인생의 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
30대 중반이었는데 막 태어난 딸이 요람에서 잠들어 있는데도 나는 내 장례식에 어떤 찬송가를 연주하게 할지, 어떤 유언을 남길지 누가 추모사를 할지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먹지도 못했다. 반려견 역시 함께 죽을 것이라고 확신해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대신 먹이를 줬고, 반려견의 식욕이 영향을 받지 않고, 반려견의 열정이 줄지 않았다는 것을 놀랍게 알아차렸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죽음이 우리를 찾아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기에게 모유를 수유하면서도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남편이 지체하지 않고 재혼할 만한 여성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싱글 아빠로 딸을 기르는 데 어울리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느슨한 끝을 매조지해야 한다고 느꼈다.
나중에 나는 상담의로부터 내가 이른바 수동적인 자살 사고(passive suicide ideation)에 사로잡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적인 반추는 산후 우울증의 끔찍한 증상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은총 가득히 죽고 싶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에너지와 동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마음 속으로 누가 알약 한 알로 도와줬으면 했다. 그러면 망설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요청하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우울감을 떨치고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황량한 무력감의 깊고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내려앉았다.
나는 어떤 의사도 내 상황을 즉각 알아차려 일시적으로나 영원히 치유 가능한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정신 질환은 진단하기가 극도로 어려울 수 있으며, 조력 자살의 맥락에서 법적 정의는 타협하기 어렵다.
공공 토론의 장에서 자발적인 안락사는 양갈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향이 있다. 호베가 스물여덟 밖에 안 됐는데도 죽는 데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는 데 화를 내는 이들이 있다. 그도 많이 살았고 의학의 발달은 아직 기적의 치료를 가져오지 않았다.
반면 그의 삶이 너무 황폐하고 그의 고통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앞으로 바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인간적인 일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이 있다.
누가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동정은 여기까지다. 영국에서도 이 이슈를 공공연히 거론하는 대중 운동이 늘고 있다. 프루 레이스(Prue Leith) 백작부인과 고다이애나 릭(Diana Rigg) 백작부인 같은 유명인들이 앞장섰다. 릭 부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조력 자살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녹음했다.
에스더 랜첸 백작부인은 암 4기 상태에서 스위스 안락사 클리닉인 디그니타스(Dignitas)에 가입했다. 이 회사는 의회 자유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로비하고 있다. 벌써 7만명이 청원서에 서명했는데 10만명에 이르면 의회는 토론을 고려하게 된다.
조력 자살의 핵심 구성요소로는 정신 질환도 삶을 끝낼 수 있는 이유로 인정하고 받아들일지가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캐나다는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는데 치료가 불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독극물 주사를 허용하는 '의학적 조력 자살'(MAID)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달 캐나다 정부는 우울증이나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에게도 MAID를 허용할 예정이다. .
조언하자면 급성 정신 질환의 무자비한 고통은 글자 그대로 헤아릴 수가 없다. 우울증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그렇게 원했던 예쁜 딸아이를 갖고서도 모든것 들이 바뀌는 과정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록 같은 것으로 첫 아이를 낳은 지 6년 뒤에 둘째 딸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애가 아홉 살일 때 승마 사고로 등을 다졌다. 갈비뼈에 금이 가면서 내 뇌는 재빨리 내가 죽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끔찍한 그 순간에도 난 역시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 뇌는 곧바로 회복력을 발휘,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누구도 응급실로 옮기는데 방해가 되면 안된다고 했다.
나는 사고에서 살아남았고 우울증이 유발하는 죽음 소망에서 벗어났다. 현대 의술 덕이었다.(전능한 이의 은총이었을 수도 있다)
충분히 고통 받고 희망도 없으며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는 이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선물 같은 일이지만 엄격한 안전장치는 필수적이다.
영국은 조력 자살을 도입할 지점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호베가 남긴 유산은 강요받는다고 느꼈던 비극적인 여정을 담은 가슴아픈 블로그일 것이다. 죽음의 존엄성에 대해 고심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고 훌쩍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