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진 계속)
전편에 이어 이제 화도진 전시관 내부로 들어가 본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면 전면에 보이는 것이 바로 전편의 사진1이다. (아래 사진1. 화도진도.) 그런데 이 그림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어 과연 이것이 '화도진도' 원본인지 알 없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독립기념관 국가정보포털사이트에서 무료로 그림을 볼 수 있었는데 액자에 담긴 그림이 위 그림과 같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말해 위 사진의 그림(즉, 전시관의 그림)은 복사본이라는 것인데 다만 원본과 다른 점은 원본에서는 포대의 포 방향이 붉은 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도진도는 조선총독부에서 1917년 발행한 것으로 말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갑오개혁으로 이미 불타없어진 이후이니 과연 제대로 된 그림지도 인지도 명확치 않은 것 아닌가?
상식적으로 수원 화성을 축조한 경우에도 '화성성역의궤'를 작성하여 공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였는데 훨씬 후대의 일인 화도진 축조에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을 더 해보니 어떤 사람이 '화도진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고도 하는데 진위여부는 모르겠고, 다른 곳에 올려진 화도진도가 하나 있어서 아래에 그림을 퍼왔다. 이 그림지도는 과연 언제적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그림지도와는 조금 다르다. 이 지도는 인천도호부 관아를 중심으로 주변 지형을 채색한 지도로 마치 한 폭의 산수화와 같다.
이것도 화도진도를 검색하여 나온것인데 이곳에는 진영과 각 포대시설은 물론 인천도호부 관아의 건물배치 및 산천이름, 그리고 지금은 매립되어 사라진 연안의 섬 이름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러한 것들의 고증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지도의 우측상단에는 화도진에서 관할하는 6개 포대, 인천도호부 방어영 관할 2대 포대의 읍진(邑鎭)까지 거리를 명시하였다. 그리고 포대마다 그 명칭과 포좌(砲座)의 방향 및 포혈(砲穴) 수가 묘사되어있다. 묘도포대와 장도포대는 섬에 설치되어 있고, 석축 혹은 흙으로 뚝을 쌓아 (築堰)육지와 연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적의 상륙이 예상되는 해안에는 토둔이라 쓰인 토루(土壘)가 구축되어 있으며, 응봉산 정상에는 요망대가, 그 앞에는 해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해안의 매립에 의하여 전혀 달라진 옛 해안선과 자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지도이다.
각설하고 아무런 설명이 없는 이런 태도는 관람하는 사람들을 병신 취급하는 것으로 '화도진 축제'까지 벌이고 있는 마당에 인접한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신포시장과 연계된 여행코스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많은 것 같지만 이런 것도 하나 시정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문화재는 지키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그러려면 우선 아끼고 잘 보존해야하며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된 지식을 알려줘야할 것이다.
아래 사진들은 전시관 내부의 것들로 전시관이 빈약한 것을 겨우 채우려는 극히 안일한 자세의 발로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26. 갑옷과 화포. 가운데 둥그런 것이 비격진천뢰이다.)
(사진27. 비격진천뢰. 진천뢰 안의 삼각형 파편이 눈의 띄인다. 이런 점은 이해를 돕는데 좋다.)
(사진28. 조총과 구포 등)
(사진29. 대완구. 중문 안쪽에 전시된 각종 화포에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대완구에 단석이 들어 있는 사진이고 위 사진은 분리해 놓은 사진)
(사진30. 불랑기 5호)
(사진31. 불랑기6호)
(사진32. 별황자총통)
(사진33~아래34, 35. 익히 알려진 대표적 화포로 천자, 지자, 현자총통)
상기 유물 외에도 몇 가지 있고 그 밖에 한쪽 벽면에 초상화 및 당시의 역사적 설명이 있으나 빈약하기 그지 없다. 제물포 개항 이후 응봉산 일대의 주변이 각국의 조계지가 되면서
순식간에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으며, 갑오개혁 당시에 군제 개편으로 화도진이 불타 없어졌다고 하는데 이의 정확한 원인이 뭔지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없다.
당시의 국가적, 지리적, 역사적 상황은 화도진을 이해하는데 필히 도움이 되는 것이니 더 많은 자료가 비치되어 관람객들의 좋은 호응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
각설하고 이제 다른 곳을 둘러보자.
(사진36. 전시관 출구를 나와 다시 입구 옆으로 돌아가서 관내에 핀 개나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꽃샘추위로 봄꽃들이 늦었는데 이제 예년 기온을 되찾으니 서둘러 꽃이 피려고 한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니 보는 사람도 관람하는 사람도 모두 즐겁다. 꽃을 찍고 돌아서니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이 말을 걸어온다. 젊을 때 사진을 제법 경험해 본 분이라 얘기꽃을 피우다가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39. 동헌 뒤쪽. 여섯 개의 기둥과 멀리 내사(안채)의 기와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사진40. 전시관 출구 앞에는 이런 우물이 있다. 원형은 어찌될지 모르나 형상이 재미있다. 이 사진을 위에서 본다고 생각해 보자. 마치 오메가처럼 보인다.
이 형상의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문화재가 바로 석불암이다. 석굴암도 위에서 보면 이런 형상이다. 이는 바다에서 해가 뜨는 형상과 같다. 신기한 일이다. 내 눈에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사진41, 아래42. 동헌 뒤뜰의 육모정이다. 이름 그대로 육각형의 평면 구조이며 원통형 기둥은 자연석 위에 놓여져 있다. 처음 화도진도에 보면 이 육모정의 지붕이 노란색이니 초가지붕은 맞을 것이고, 지도에도 원형정자가 아닌 다각형 정자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으니 제대로 복원한 것으로 판단된다.
병영을 관리하다가도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뒤뜰의 정자이니 앞마당은 비록 군사용이나 뒤뜰은 소박한 정원으로 가꾸고 정자까지 세웠으니 조선의 무장들도 선비의 풍류를 아는 것이라 하겠다.
백여 년 전의 아주 더운 어느 날, 수장이 되는 무장은 부관들과 함께 이곳에서 과일을 먹으며 담소하기도 하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아쉬워하며 끝까지 군인으로서 책무를 다하자고 의기를 모았을 것이다.
그런 군인들이 있었기에 아직도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임이니, 나라를 생각하며 오로지 충절로 살아가는 군인들의 마음을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어떤 정치적 당리당략이나 정책이라도 국가의 존속을 위한 정책의 위에 설 수는 없음을 오늘 총선을 치루는 모든 국회의원들이 제발 인지하기를 바란다. 이런 부분까지 언급하는 것은 과하다 생각되어 이만 줄이고 다른 사진을 설명한다.)
(사진43. 육모정 입구, 뒤뜰 위에서 본 내사(안채). 나는 이런 조선 가옥의 담이 좋다. 특히 화도진의 이런 담 구조가 참 좋다.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 소박하면서도 구수하기 그지없어 과연 이곳이 군기가 엄한 병영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진44. 담 이야기를 더 하자면 자연석을 배치한 사이에 원래는 흙으로 채우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유지보수를 위해 시멘트를 발랐다고 해도 담장지붕의 기와와 자연석이 이의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음이다.
사진45. 소담스런 담장 위로는 기와가 얹혀있다. 비바람에 풍화되어 쉽게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그런데 암기와 끝에는 암막새가 없고 숫기와 끝에도 숫막새가 없어 정갈한 느낌은 떨어지나 오히려 이것이 더 구수한 맛을 내는 듯하다.
사진46. 동헌 뒤뜰에서 내려와 내사를 들어가기 전에 내사 뒷편을 찍은 사진. 이곳에는 뒤뜰이 없으나 뒷마당은 있는데 그 마당에 두 개의 구조물이 있다.
사진47. 두 개의 구조물이 처음에는 뭔가 했더니 바로 굴뚝이다. 굴뚝이 있다는 것은 아궁이가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살림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굴뚝이 이처럼 높이가 낮은 것도 이색적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구멍 위에 기와를 얹어 놓은 것을 연와(煙瓦)라 하는데 이곳의 연와는 아주 소박하다.
그저 암기와 한 장을 거꾸로 놓고 숫기와는 그대로 얹어 놓았다. 남녀를 상상하면 꽤 요상한 형상이나 혹시나 이것도 음양사상이라는 도가의 신선사상과 민속사상이 결부된 것이 아닐까?
퇴폐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유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48,아래49. 내사에는 뒤뜰은 없지만 그래도 뒤로 올라가 좌우 두 곳을 촬영했다. 왼쪽은 이처럼 중옥식(팔작지붕)이다. 그런데 오른쪽은 아래 사진처럼 상하식(맛배지붕)이다. 이는 집의 구조가 'ㄱ'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50. 내사 안의 방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아니 어찌보면 특별한 것이 많다. 조선 시대 사대부의 가정집에서 사용되는 공예품들인데 이는 모두 실용적이다.
반닫이를 비롯하여 책장 등 모든 것이 실용적이다. 이 실용성의 공예품들에 담긴 우리나라 공예미술의 美와 특징에 대해서는 야나기 선생이나 우현 선생이나 또는 그 이후의 전문가들의 언급을 참고하기 바란다.
사진51. 내사를 나오면 현재의 화도진 출입구에 다시 원위치 한다. 그런데 여기서 좌측의 객사(사랑채)를 보니 객사의 담 일부가 그 옆으로 늘어진 담장의 형상을 그대로 이어받는 진기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복원할 때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발하면서도 美에 대한 생각이 깊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건물의 벽처럼 그대로 건축한다고 누가 죄를 묻겠는가. 그럼에도 손이 더 많이가고 비용도 더 들어가는 일인데 굳이 저렇게 일관된 건축미를 보이다니. 저런 수고를 아끼지 않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이 지나 즐거움을 준 선조 혹은 복원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객사의 기둥이 있는 곳을 보니 그곳에만 담이 끊어져 있고 그 사이에 나무를 덧댔다.
사진52. 객사의 기둥 부위만 담장이 비껴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나무로 된 기둥이니 나무와 상용성이 떨어지는 담의 부재들 때문인가? 나무는 숨을 쉬니까. 그래서 그런지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지혜가 돋보인다.
사진53. 화도진지 내에는 이렇게 예쁘게 생긴 측간이 몇 곳 있다. 대부분 담장과 붙어 있는데 기와지붕을 멋지게 올려 놓아 측간이 주는 선입관을 깨끗이 씻어버리게 한다.
사진54, 아래55. 화도진 지붕의 기와들.
기와 지붕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몇 가지만 상식적으로 알리고저 한다. 기와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중에 꼭 알아둬야할 기본으로 5개만 설명하면 사진에서 보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암기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넓직한 곡선의 기와를 말한다. 숫기와는 암기와 사이를 열결시켜 주며 빗물이 암기와 사이로 흐르지 않고 암기와 배를 타고 흐르도록 유도한다.
암막새는 암기와의 마지막에 빗물이 유연히 흐르도록 하는 것으로 사진에서는 용이 돋을새김 되어 있는데 암기와의 곡선미를 더욱 멋지게 만드는 미적 연출도 한다.
숫막새는 숫기와의 마지막에 반월형 공간이 생기므로 이를 막는 실용성과 여기에 사진처럼 국화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이나 글자 등을 돋을새김하였고, 암막새의 양쪽 날개 부분을 부드러운 원형으로 감싸주는 조형미를 가진다. (담장에 암막새, 숫막새가 없는 것과 비교해 지붕에 이런 것이 없을 때를 상상하면 된다)
끝으로 위 사진에서 지붕마루의 끝에 숫막새의 미지막을 장식한 것이 귀면와인데 숫막새와 마찬가지의 실용성과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그 그림은 귀신형상이다.
그런데 이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것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재미있는 공부가 되니 숙제로 남겨놓을까 한다.
그 외에도 덧서까래(부연) 끝에 붙이는 부연와, 용두, 치두, 잡상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가 있으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겠다.
사진47. 화도진지에서 기와의 물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이곳을 꼽고 싶다. 자연미가 물씬 풍기며 구수한 맛을 내는 담장과 그 위로 흐르는 기와 물결과 푸른 하늘. 이디쯤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보물 찾기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이곳 화도진지에도 내 나름의 기대 이상의 풍경이 여러곳 있어 보물찾기란 말을 하고 있다.
사진48. 위 사진에서 더 가까이 가서 담장을 제외하고 찍은 사진. 그러면 위 사진과는 달리 좌우의 기와지붕도 사라지고 아래의 담장도 사라져 병영의 위엄과 기풍이 물씬 풍기는 또 다른 맛을 자아낸다.
사진49, 아래50. 호도진지 담장에 대해 한 번 더 언급하자면 사진에서 보듯이 엄격한 균제가 없다. 이 또한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선구자들이 말하는 비균제성, 비구애미가 아닌가 한다. 담장은 담장으로서의 역할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지 조금 비뚤어졌다고 해서 구애받지 않는다.
사진51. 이제 밖으로 나와 외부에서 본 화도진지를 보면 우선 이처럼 소공원이 있다. 이곳에 전시용으로 화포를 3기 설치해 두었다.
사진52. 소공원에서 바라본 화도진지. 왼쪽이 첫 문인 외삼문이고 오른쪽이 동헌이다.
사진53,54,55,56. 조금 더 돌아가 전시관 외벽 밖의 숲.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늦은 오후의 봄햇살을 받아 빛나는 목련꽃봉오리들이 너무 예쁘다. 목련이 다 피면 얼마나 예쁠 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사진57. 다시 출입구 앞으로 오니 ?입구 옆의 숲에 큰 버섯 모양의 조형물들이 있다. 숲을 가꾸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예쁜 조형물들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여기에 불이 들어오는 것인지 전선들이 있다.
전체적인 배열에서 특별한 것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골프채의 머리부분이라고나 할까?
사진58, 아래59. 전편의 사진에서 주차장을 소개했는데 그 주차장 바로 옆에 인공폭포가 있는 연못이 있는데 소개하지 않았다. 인공폭포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공폭포라는 것이 일본식 정원이기 때문에 화도진이라는 특수성이 주는 인상 탓에 소개에서 제외한 것이다.
다만 아직 인공폭포도 가동하지 않고 연못에도 물이 없는데 그곳 바위 사이에 이름모를 꽃이 피었기에 나를 부르는 듯하여 카메라에 담아 올린다.
이 인공폭포와 연못이 있는 곳이 가만 생각하니 화도진도에도 연못이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곳을 조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가부를 알 수는 없다.
사진60. 개인적으로 이곳을 복원한 사람들을 가장 칭찬하고 싶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곳은 바로 화장실이다. 공원 입구의 관리사무소 옆으로 건축으로 보면 'ㄱ'자 형이다.
그런데 외형을 조선건축의 맛을 그대로 살렸다. 입구의 강화도어를 닫으면 그 밖으로 다시 완자타입의 문으로 닫을 수 있다. 창도 마찬가지다. 흰색의 현대적 PVC창호가 외창에 덧대어진 완자타입의 창으로 새롭게 태어난 느낌을 준다.
문과 창의 이러한 문창살 무늬에는 크게 7가지 정도가 있지만 그 중에 상기 사진의 것들은 만(卍)자형으로 이를 만자문, 만자창 혹은 완자문, 완자창이라 부른다.
문과 창을 닫으면 화장실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단지 문 위를 보지 않는다면. 그런 면에서 그 문 위의 화장실 표식은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정히 표식을 주려면 화장실을 표시하는 그 많은 해학과 유머가 담긴 것들이 얼마든지 있으련만.
사진60, 아래 61. 이제 화도진 답사를 끝내고 입구의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곳부터 100여 m 정도 늘어선 노점식 재리시장이 눈에 띄인다. 봄철이라 그런지 산 꽃게가 제법 팔리는 모양이다. 근처의 화수부두에서 잡아온 것들도 이곳에 팔곤 했는데 요즘은 어디서 잡은 것인지 모르겠다. kg에 2만원을 부르는데 싱싱하고 산 것이라 그런지 비싸다.
사진62. 끝으로 주차장의 인천관광안내도 한편에 있는 인천관광안내 전번을 소개합니다.
이상, 꽃샘 추위가 물러가고 예년 기온보다 높은 봄날 화도진에서 행복했던 민삿갓임다.^^ |
출처: 민삿갓 사진유람기 원문보기 글쓴이: 민삿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