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세모가 아니에요 네모는 더더욱 아니고요 언니는 그저 붉었을 뿐이에요 세모와 네모와 어울려도 괜찮았을 빨강 토마토를 따고 있어요 시간이 함께 붉어졌어요 붉은빛과 흥얼거림이 바구니에 가득 찰 때 머리 위를 빙빙 맴도는 솔개에게 말도 걸었어요 구름과 연애를 하는 언니가 가끔 보였고요 구름 저편에 뭐가 있는 줄 아니? 자꾸 구름의 감정이 몰려와 가만가만 붉은 토마토를 만질 때 뭉클한 언니 완숙한 언니 도르르 굴러가는 언니의 오후 언니는 언제부터 이 세상에 없는 토마토를 길렀을까요 언제부터 환부가 생겼을까요 까망도 이해하고 하양도 사랑했던 언니 넝쿨 뒤에 숨은 작은 열매처럼 아직도 붉은 구름 속에 숨어 있어요 도르르 놓쳐버린 언니의 시간들 헝클어진 감정이 모여 이야기가 맺히듯 방울방울 토마토 안쪽 여린 숨소리가 언니의 일기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시집 『시럽과 각설탕 사이』 2024.11 ------------------ 장서영 / 1959년 전북 남원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1997년 《아동문학연구소》 동화 등단. 2020년 《열린시학》 시 등단. 동화집 『춤추는 작은 불꽃』, 시집 『시럽과 각설탕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