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 ⓭ 벚꽃 만발한 오사카성의 두 얼굴
- https://www.ccnn.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05
따스한 봄바람에 실려 벚꽃이 만개하며 일본 오사카성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한일 관계 회복과 엔저 현상 덕분에 오사카시가 ‘핫플’(뜨거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며, 오사카성은
도톤보리와 함께 필수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3대 성(城) 중 하나인 오사카성은 초봄이면 매화와 벚꽃이 만발해 그 아름다움으로 광광객을 사로잡는다.
강 둔치를 따라 늘어선 3천그루의 벚꽃이 뿜어내는 진한 향기를 맡으며, 전통 뱃놀이를 즐기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 뒤엔 한국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가 세운 성으로,
그를 신격화한 신사(神社)가 그곳에 있다.
또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1908~1932) 의사가 순국 직전 수감되었던 감옥도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들뜬 마음으로만 즐길 수는 없는 일이다.
아름다운 벚꽃 길을 걸으며 그 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와 아픔을 한 번쯤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일본 방문 1위 국가는 한국…올해도 열풍 지속
한국인의 일본 여행 열풍은 2025년에도 꺾일 기미가 없다.
지난해 연말부터 환율 상승으로 여행객 감소가 예상됐지만 외려 수가 늘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 2월 일본을 방문힌 한국인 수는 84만 7,300명으로 역대 동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월 두 달간 방일 한국인이 180만 명을 넘어섰고, 올해 사상 최초로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앞서 2024년 한 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3,600만 명에 달했고,
그 중 한국인 방문자는 약 880만 명으로 전체의 24%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위인 대만(15%)과 3위인 중국(14%)을 크게 앞서는 수치다.
임진왜란 일으킨 히데요시가 세운 성
오사카성을 찾은 한국 관광객들은 성을 둘러싼 거대한 돌담과 물의 방벽(해자),
그리고 매화와 벚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 성에 얽힌 역사를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오사카성은 일본을 두 번째로 통일한 히데요시가 세운 성으로 유명하다.
이 자리에는 원래 '이시야마 혼간지'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히데요시는 이를 허물고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성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일본 역사 속의 한 인물이 아니라,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고 수많은 조선 백성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다.
그는 ‘조선인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보내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오사카성의 상징인 천수각 내부에는 히데요시를 찬양하는 그림들이 가득하다.
그중에는 전장에서 적군의 머리를 베어 들고 가는 일본 낭인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오사카성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당시 군국주의 중심지였던 오사카성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은 2차대전 당시 일본 육군사령부와 병참기지, 군형무소 등이 자리했던
군국주의 시대의 핵심 지휘본부였다.
성 내부에는 당시 위수형무소도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날 성을 방문한 많은 이들이 맞은편의 고풍스러운 건물을 도서관이나 레스토랑으로만 여기고 지나치지만,
사실 그 건물은 일본 육군 4사단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일본은 패전 후, 성 내 군사 시설이 있던 자리에 히데요시 동상을 세웠다.
또한, 윤봉길 의사가 구금되었던 위수형무소 터는 절반이 히데요시를 모시는 신사로, 나머지 절반은 공원으로 조성됐다.
우리가 마주하는 오사카성의 의미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깊이 되새겨야 할 공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순국 전 한 달간 구금됐던 곳
더욱 안타까운 것은 윤 의사의 마지막 구금 장소가 오사카성 내 육군 위수형무소였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1932년 4월 29일, 윤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전승 축하기념식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주요 인사들을 처단한 후 체포됐다.
이후 일본군은 상하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하고, 일본 본토로 압송하여 도쿄 육군교도소에 수감했다.
안 의사는 순국 전 한 달간은 오사카성 내 육군 위수형무소에 수감돼 있다가 같은 해 12월 19일,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됐다.
윤 의사가 오사카 육군 위수형무소로 이송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정확한 위치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기념관 연구원들의 세밀한 조사 결과, 오사카성 내 히데요시 신사 부근이 바로 그 장소였음이 공식 확인됐다.
1961년, 히데요시 신사가 이곳으로 이전되면서 당시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일본의 반전(反戰) 작가 이즈루 아키라가 세운 추도비가 남아 있어 그곳이 육군 위수형무소였음을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됐던 것이다.
한일 협력 강화하되 역사 잊어선 안돼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강화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국익을 위해서는 과거의 아픔을 넘어 협력할 부분은 적극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를 깡그리 무시한 채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는 없다. 오사카성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임진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의 상징이자, 윤봉길 의사가 수감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로 우리 역사에 큰 상처를 남긴 곳이다.
오사카성을 거닐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다만 화려한 벚꽃과 고풍스런 천수각 아래 스며 있는 어두운 역사, 윤 의사의 마지막 흔적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사카성에서 그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고 더욱 단단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전 의원은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며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단지 한일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조국을 위해 바친 고귀한 삶과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난 26일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순국 115주년이었다.
안 의사는 단순한 독립운동가를 넘어, 자신이 믿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싸운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희생과 구국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된다.
오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기억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는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와의 관계에서도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에서 영국을 구한 윈스턴 처칠은
"Those who fail to learn from history are doomed to repeat it."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을 깊이 새기며,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
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