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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아동 잘 재우는 법
많은 자폐 아동이 불면증에 시달린다. 다행히도 연구가 진행되면서 부모가 자폐 아동을 쉽게 재울 수 있는 방법들이 밝혀지고 있다.
BY 클라우디아 월리스 / 2017년 11월 13일
미국 테네시에 사는 닉은 걸음마를 할 때쯤, 말뜻을 알아듣고, 팔다리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외부 세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의 어머니인 브리지드 데이 씨는 닉을 진찰한 소아신경과 전문의로부터 몇 가지 진심 어린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요컨대 취침 시간에 곁에 누워서 아이를 달래면 좀 더 쉽게 아이를 재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또 이 방법으로 아이가 많이 힘들어할 때 마음을 진정하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닉은 기기, 걷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말하기 등 여러 발달이 늦었고, 4살에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데이 씨는 이 방식으로 아이를 쉽게 재울 수는 있었지만, 결국 매일 밤 계속하니 식상한 방법이 되었다. 보통 닉은 15분 만에 잠이 들곤 했지만, 때로는 한 시간 넘게 깨어 있기도 있었다. 그런 날 밤이면 데이 씨는 무력감을 느꼈다. 데이 씨는 아들의 침대에서 잠드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간혹 잠들지 않은 날에는 조용히 일어나 한 두 시간 정도 자기 시간을 갖다가 남편 마이크가 있는 아래층의 안방으로 내려가 잠을 청했다. 그렇지만 그런 날이면 으레 새벽 한 시와 세 시 사이에 닉이 엄마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균형능력과 운동능력이 약한 만큼 어둠 속에서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게 둘 수는 없었으므로 데이 씨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아들을 진정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가 온화하고 자식 사랑이 드러나는 데이 씨였지만 아들과 본인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작년 닉의 열 살 생일이 다가올 무렵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이 씨의 확신은 점차 강해졌다. 데이 씨의 삶이 망가지고 있던 것이다.
잭슨 타일러 군이 시달린 수면장애는 닉의 수면장애와는 다른 종류였지만 그의 부모도 수 년을 만성적인 피로상태로 보냈다. 걸음마를 하던 시기부터, 똑똑하고 기운 넘치고 경미한 자폐 증상을 보이는 일곱 살 소년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잭슨은 잠드는 데 최대 한 시간이 걸렸고 기상 시각은 들쭉날쭉했다. 어떤 날에는 새벽 세 시에 부모를 깨워서 지금이 일어날 시간이냐고 묻고는 했다. 야뇨증(夜尿症)도 문제가 되어서 잭슨의 부모는 매일 밤 열 시가 되면 아이를 깨워서 화장실에 데려갔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불 빨래를 새로 해야만 했다.
테네시 주 머프리즈보로에 거주하는 잭슨의 어머니 다와서 타일러 씨는 그 동안 느꼈던 피로도가 “10점 만점에 8~10점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끝내 아이를 진정시켜서 재우는 데 성공해도 이미 일어나서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자폐를 가진 아동 중 최소 절반이 잠들거나 수면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부모를 상대로 진행한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 비율은 80% 이상일 수도 있다. 신경전형적인 아동의 경우 그 비율은 연구마다 사용하는 불면증의 정의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지지만 1%에서 16%를 오간다. 수면 문제의 정확한 성질은 아동 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영향은 대부분 비슷하게 나타난다. 수면 문제는 아동의 부모와 보호자의 다른 문제와 더불어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아동을 돌보는 과정에서 이미 느끼던 스트레스를 더욱 악화시킨다.
또한 수면 문제는 밤낮과 상관없이 아이의 다른 모든 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낮은 수면의 질은 과잉행동, 충동성, 상동행동, 부주의, 공격성 등 자폐와 관련된 여러 도전적 행동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작년에 자폐 아동 8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연구에 의하면 밤 중에 잠이 깨는 증상과 낮 동안의 특이행동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또 다른 연구는 자폐 아동의 수면장애 여부가 입원가능성의 가장 강력한 예측변수 중 하나임을 발견했다. 지난 달에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수면장애와 중증 자폐를 가진 아동의 극심한 자폐 증상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바쁜 일상. 일곱 살인 잭슨 타일러 군은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으면 수면을 더 오래 취할 수 있다.
자폐인의 수면장애는 그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약 십 년 전까지는 활발하게 연구되지 못했던 분야다. 일단 정립된 연구방법이 부재했다. 연구자들은 자폐와 관련된 수면장애의 유병률과 성질을 규명하는 데 있어 액티그래피(actigraphy; 손목운동기록)와 같은 비교적 객관적인 방식보다는 주로 부모의 보고에 의존하였다. 일부 수면 연구에서 ‘정석’으로 사용되는 수면다원검사의 경우 자폐를 가진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우선 안면과 흉부에 센서 여러 개를 부착한 채로 검사실에서 하루이틀 밤을 큰 문제없이 견딜 수 있는 아동은 경미한 자폐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과를 왜곡하는 선택 편향이 발생하게 된다. 캘리포니아 주 스탠포드대학교 정신행동과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 루스 오하라(Ruth O’Hara) 교수에 의하면 자폐인을 대상으로 한 수면 연구는 그동안 필요했지만 부족했단 정밀한 방법론을 이제야 비로소 등에 업고 추진력을 얻기 시작했다. 오하라 교수는 자폐를 가진 아이들이 수면다원검사를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는 기법 개발에 힘써 왔다.
자폐인의 수면장애에 대한 연구가 그간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테네시 주 내슈빌 시에 소재한 밴더빌트대학교 신경과와 소아과 교수로 재직 중인 베스 맬로우(Beth Malow) 교수에 의하면 불면증은 언어장애, 행동장애 등 자폐의 여타 증상과 비교했을 때 시급성이 떨어지는 문제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맬로우 교수는 4세에서 10세 사이의 자폐 아동 1,500명 이상이 참여한 수면 연구를 주도한 바 있는데, 연구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모가 완료한 표준 검사지에 의하면 대상 아동의 무려 71%가 수면에 지장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수면 문제와 관련된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는 비율은 고작 30%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중 약물 처방을 받은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소아과 의사들은 하루하루가 바쁜 사람들이고, 자폐 아동의 행동, 학업, 언어발달 등 우선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면의 질이 개선된다면 학습과 행동도 개선될 것처럼 보인다”고 맬로우 교수는 견해를 밝혔다.
대다수 자폐 아동에게 숙면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제해결의 첫 단계는 수면무호흡증, 발작 등 더 시급한 질환이 있다면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아이의 루틴에 기본적인 변화를 일관되게 적용하여 낮에는 더 많은 신체활동을 유도하고 밤에는 자극을 줄인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맬로우 교수는 이 접근법의 주요 지지자로서 “수면 교육”을 통해 이를 지역 가정에 효율적으로 보급할 방안을 연구해왔다.
맬로우 교수와 마찬가지로 지역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수면교육의 보급확대에 힘쓰고 있는 오하라 교수는 이 접근법을 “그야말로 손쉬운 해결책”이라고 평한다. 부모에게 아주 간단명료한 행동수정 방안 몇 가지를 소개함으로써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에 대한 높은 수요
자폐를 가진 사람들이 수면에 지장을 겪는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추측컨대 수면 문제는 자폐스펙트럼 자체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각종 질환도 요인이 될 수 있는데, 불안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위장장애와 발작으로 처방되는 약물은 수면을 직접적으로 방해하거나 지장을 준다. 예컨대 ADHD에 처방되는 각성제의 주요 부작용은 불면증이다. 또 상당수의 항정신성 약물이 밤잠의 질을 저해하는 주간 졸음을 유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아동이 자폐를 가졌을 경우 대체로 고도의 생리적 흥분상태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자폐 아동의 상당수는 감각·위장 민감성과 불안도가 높은 편이며, 심지어 일부 연구에서는 수면 중일 때와 깨어 있을 때의 심박수도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맬로우 교수는 “이 집단의 과민성이 열악한 수면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견해다.
신체의 수면-각성주기에 이상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소규모 연구는 일부 자폐인이 신체의 일주기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을 담당하는 소위 ‘생체시계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 일부 연구는 자폐를 가진 사람의 멜라토닌 수치가 평균 이하임을 발견했다. 멜라토닌은 야간에 뇌 중심의 송과선(pineal gland)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서 졸음을 유발하고 졸린 상태를 유지시킨다.
그렇지만 이러한 차이점들이 자폐를 가진 사람들의 수면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는 있으나 가족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치료법이다. 볼티모어 주에 있는 케네디 크리거 연구소에서 정신건강의학 진료 및 연구 부소장으로 재직 중인 로버트 L. 파인들링 씨는 “원인 규명도 중요하지만 그 동안 환자의 불편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맬로우 교수도 실질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원래 수면을 전공한 맬로우 교수는 본인의 개인사로 인해 자폐와 불면증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들 둘을 둔 어머니이다. 맬로우 교수의 자녀들은 수면 문제를 겪지 않았으나, 약 14년 전에 자폐인의 수면장애 치료 수요가 매우 높다는 점을 알게 되고 치료법 연구를 시작하였다. 맬로우 교수와 몇몇 연구자들은 아이가 좋은 ‘수면위생’, 즉 숙면에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을 지키도록 유도하기 위한 스케줄 관리와 가정환경 조성 방법을 부모에게 교육하는 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초장부터 맬로우 교수는 적은 비용으로 널리 보급할 수 있고 손쉽게 확대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구하는 데에 관심을 쏟았다.

일과 계획. 잭슨의 침실 문에는 취침 시간의 루틴이 그려진 도표가 붙여져 있다.
맬로우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소규모 연구를 몇 차례 진행한 후 자폐 아동의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수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은 한두 시간의 대면 지도와 간단한 전화통화로 진행되는 두 차례의 후속 지도로 이루어진다. 내용은 수면위생교육 표준안과 자폐인이 흔히 겪는 문제에 대한 각종 기존 전략을 혼합하였다. 수면위생교육에 기반한 지침은 다음과 같다. 규칙적인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지켜야 한다. 밤에는 침실을 어둡게 하고 기상 직후에 바로 밝게 해야 한다. 낮에 충분히 야외 활동을 해야 한다. 카페인 섭취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취침 전에는 긴장을 푸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 동안에는 전자기기의 화면을 피해야 한다.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가 일주기 생체리듬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 재활요법에서 차용한 전략은 다음과 같다. 시각적 장치를 사용하자. 루틴과 규칙을 선호하는 특성을 활용하자. 감각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즉, 가려운 이불이나 잠옷을 피하고 취침 시간에는 식기 세척기 등 소음이 큰 가전 제품 사용을 피하자.
맬로우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거의 매일 잠들기까지의 시간이 30분 이상 소요되는 2~10세의 자폐 아동 80명의 부모를 상대로 프로그램을 시범 진행하였다. 내슈빌, 덴버, 토론토의 의료센터에서 활동하는 수면 교육 전문가들에게 프로그램 내용이 상세히 담긴 매뉴얼을 따르되 개별 가정의 상황에 알맞게 적용할 것을 주문했다. 2014년에 발표된 해당 연구는 자폐 아동이 침대에 누운 시점에서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전문용어로는 ‘수면 잠복기’)이 크게 단축되었음을 발견했다. 교육 전에는 평균 58.2분이었던 수면 잠복기가 교육 후에는 39.6분으로 줄어든 것이다. 수면 데이터 수집을 위해 부모는 아이의 수면일지를 작성했으며 아동은 운동량에 기반하여 수면 및 각성 시간을 측정하는 액티그래프 장치를 착용했다.
모든 아동이 효과를 보지는 못했으나, 참가한 80명의 아동 중 29명, 즉 36%가 임상치료 이후 일주일에 5일 이상 30분 이내에 잠드는 데 성공하였다. 맬로우 교수가 다음으로 할 일은 상아탑 밖으로 나가서 프로그램을 지역사회에 보급하는 것이었다.
부모 교육의 중요성
타일러 씨 가족이 맬로우 교수의 최신 수면 교육 연구에 대해 알게 된 경로는 올 초 소아과 방문 당시 본 광고였다. 연락을 취해서 연결된 사람은 테네시 주 프랭클린 시에서 공동진료소를 총괄하는 작업 치료사 수잔 메이지 씨였다. 메이지 씨는 맬로우 교수의 연구진으로부터 2014년 연구에서 시범 진행한 프로그램과 동일한 내용을 교육받은 후 내슈빌 지역에서 보급활동을 하게 된 여섯 명의 작업·언어·행동 치료사와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타일러 가족은 실제 적용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총 30개 가정을 대상으로 진행될 프로그램 시범 운영에 참가하였다.
우선 타일러 가족은 잭슨의 수면 습관과 가족의 주요 고충을 알아보는 설문지를 작성하였다. 다음은 잭슨이 제일 좋아했던 단계로, 2주동안 수면 패턴 기준 데이터 수집을 위해 손목시계와 유사한 액티그래피 장치를 착용했다. “아이가 장치를 벗기 싫어할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 어머니는 회고했다.
5월에 잭슨의 부모는 메이지 씨와 만나 한 시간 동안 상담을 받았다. 열 여덟 슬라이드로 이루어진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숙지하고, 중간중간에 본인들의 상황이나 필요와 특히 더 관련된 부분이 나오면 진행을 멈추고 의논했다. 메이지 씨는 숙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잭슨의 하루 전체 일과를 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을 조언했다. 일례로 잭슨은 실내, 특히 침실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메이지 씨는 낮에는 야외활동을 장려하고 침실은 오직 잠을 자는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장난감을 침실 밖으로 치울 것을 부모에게 주문했다. 운동량을 늘리는 방안도 권했다. 잭슨의 아버지 모리스 씨는 상담 도중 “아이가 항상 움직이는 것 같아도 정작 필요한 종류의 운동은 그동안 많이 안 했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잭슨은 낮잠을 자지는 않았지만 일과 중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종종 잠들었다. 메이지 씨는 “댄스 뮤직을 틀거나 차에서 할 수 있는 스무고개 같은 놀이를 하라”고 조언했다. 잠깐이라도 낮잠을 자면 밤에 기운이 생겨서 자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잭슨의 부모는 메이지 씨와 함께 간단하고 긴장해소에 도움이 되는 삼십 분 길이의 취침 전 루틴을 짰다. 우선 메이지 씨는 잭슨의 취침 시간을 일곱 시 반에서 여덟 시 사이로 옮길 것을 조언했다. 취침 시간이 늦춰지면 피로감을 더 느끼고, 또 기존의 취침 시간은 잭슨의 ‘수면 금지 시간(sleep forbidden zone)’, 즉 잠들기 직전에 정신이 또렷하고 기운이 생기는 시간대와 겹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쌍둥이 동생 조딘과 욕조에서 물장구치기나 누나 제이딘과 놀기 등 감각을 자극하는 활동은 일곱 시 반 이전에만 한다. 취침 전 루틴에는 느슨한 활동만 넣어야 한다. 루틴은 완성되었고, 색칠된 그림표로 만들어서 잭슨 침실 문에 붙여 놓았다. 루틴은 조용히 놀기 → 양치하기 → 책 읽기 → 기도하기 → 불 끄기의 순서다.

조용한 시간. 잭슨은 취침 시간 삼십 분 전에는 자극적인 활동을 자제한다.
메이지 씨는 잭슨이 꼭두새벽에 엄마아빠를 깨우지 않게 하기 위해 시각적 장치를 하나 더 도입했다. 안방 문에 수면모자를 쓴 채로 자고 있는 달님 그림을 걸어 놓은 것이다. 달님 그림이 걸려 있을 경우에는 잭슨이 노크를 하지 않기로 규칙을 정했다.
“할 수 있죠?”라고 묻는 메이지 씨의 질문에 타일러 가족은 긍정했다. 마지막으로 메이지 씨는 취침 직전에 액티그래피 장치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연구에 필요한 일지를 기록하는 ‘숙제’를 할 것을 타일러 가족에게 재차 당부했다. 그리고 약 일 주일 후에 다시 상담을 받기로 약속을 잡았다.
향후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잭슨과 타일러 가족은 새 루틴의 효과를 봤다. 여름 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취침 시간을 옮기고 외부 활동 시간을 늘이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루틴 덕택에 잭슨 본인을 비롯한 온 가족이 효과를 많이 봤고 또 가족이 모두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어 감탄했다”고 잭슨의 어머니가 회고했다. 이전처럼 아이를 밤중에 깨우는 대신 메이지 씨의 조언대로 새 취침 시간인 여덟 시에 잭슨을 화장실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 부분이 좀 큰 것 같다”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다. 액티그래피 기록도 효과가 있음을 지지했다. 잭슨의 평균 취침 시간은 오후 7시 46분에서 오후 8시 28분으로, 기상 시간은 오전 5시 54분에서 오전 6시 55분으로 이동했다. 프로그램 도입 이전에는 잠들기까지 평균 23분이 걸렸지만 16분으로 줄어들었다.
브리지드 데이 씨도 다니던 소아과에서 해당 연구에 대해 알게 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데이 씨는 맬로우 교수 연구진의 일원이자 수면 교육자로도 활동하는 간호사 리디아 맥도날드 씨로부터 직접 상담을 받았다. 타일러 가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들 닉의 취침 시간을 늦추고 낮 동안 야외 활동 시간을 늘이고 밤에는 자극을 줄이라는 조언을 받았다. 맥도날드 씨와 데이 씨는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에 맞추어 취침 스케줄을 짰다. 닉은 밤에 집에서 키우는 비글견(犬) 피오나를 쓰다듬는 행동에 애착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짜인 루틴은 다음과 같다. 화장실 → 잠옷으로 갈아입기 → 피오나 쓰다듬기 → 비타민 영양제 먹기 → 불 끄기.
데이 씨의 고충은 엄마가 곁에 있어야 자는 아이의 버릇을 고치는 것이었다. 데이 씨는 맥도날드 씨와 상의한 후 ‘흔들의자 방법(rocking-chair method)’을 살짝 바꾼 접근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닉이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는 동안 어머니는 옆 방에서 소파에 앉아 있는다. 닉이 엄마를 부를 경우 데이 씨는 “엄마 여기 있어”라고 대답하되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맥도날드 씨는 취침 시간 이후의 대화를 “짧고 건조하게” 유지할 것을 조언했다.
닉의 분리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면 연구자들이 1990년대 말엽에 개발한 ‘취침 카드(bedtime pass)’ 전략을 활용하기로 했다. 닉이 받은 코팅된 색깔 카드는 “부모의 개입이 필요하면 쓰는 교환권” 역할을 한다고 맥도날드 씨는 설명했다. 데이 씨는 취침 카드가 닉이 새 루틴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슬픈 기분이나 외로운 기분이 너무 심해서 개입이 필요한 날을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대로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밤을 무사히 보냈을 경우에는 보상을 받는다. 보상은 보통 엄마와 함께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것이다. 닉의 액티그래피 수치는 개선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마친 이후 “이제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루틴을 마치고 잘 자라고 말하고 뽀뽀하고 불을 끄면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아이를 본다”고 데이 씨는 호평했다. 데이 씨 본인이 잠을 훨씬 더 잘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은 알약의 효능
맬로우 교수의 바람은 2018년까지 프로그램의 지역사회 시범운영을 마치는 것이다. 아직은 최종 결과가 실험 단계의 결과와 같게 나올지 예단할 수 없지만 맬로우 교수는 희망적이다. 이미 맬로우 교수의 연구진은 프로그램을 좀 더 다양한 상황에 놓인 가정에 적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의 시범 연구는 해당 프로그램이 자폐를 가진 청소년에게도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18명의 참가자는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단축되었으며 침대에서 수면 상태인 시간이 증가했다.
맬로우 교수의 또 다른 계획은 자폐를 가졌거나 ADHD와 같은 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공립학교에 수면 교육을 도입하는 것이다. 수면치료시설과 달리 학교는 모든 지역에 최소 한 개는 있으므로 보급이 용이해진다는 것이 이유다. 우선 내슈빌 시 근방의 한 초등학교가 내년 초부터 해당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했다.
맬로우 교수에 의하면 학교 도입의 또 다른 이점은 프로그램이 아동의 학업에 주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주어진 과제를 꾸준히 수행하는지, 주의집중을 하는지, 도전적 행동의 빈도가 줄어드는지, 수면의 질이 개선되었는지를 측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맬로우 교수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행동치료에는 한계가 있다. 맬로우 교수에 의하면 프로그램의 기법을 올바르게 수행할 경우 약 삼분의 일의 아동에게서 수면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 아동은 다른 방식의 치료가 필요한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2016년의 한 연구에서는 자폐를 가진 아동이 수면무호흡증을 비롯한 각종 수면호흡장애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대조군과 비교하여 더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하라 교수에 의하면 이외에도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껴 잠을 설치게 되는 병인 하지불안증후군을 앓고 있을 수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의 경우 자폐 아동을 상대로 진단하기가 쉽지는 않으나 식단 변경이나 다양한 약물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
수면장애를 진단받은 자폐 아동 다수는 수면에 도움이 되는 약물을 복용한다. 가장 널리 복용되는 약물은 처방이 따로 필요하지 않은 멜라토닌제이나 일부 아동의 경우 수면장애의 성질에 따라 항간질약, 진정제, 클로니딘(clonidine) 등 알파작용제, 트라조돈(trazodone) 등 항우울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최근에 새로 개발 중인 장기지속형 멜라토닌제는 직경이 3밀리미터에 불과하며, 만일 초기 시험결과가 추후에도 계속 확인된다면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기존의 멜라토닌제는 혈류에 머무르는 반감기가 짧아서, 잠드는 데에는 효과가 있어도 수면 유지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장기지속형 멜라토닌제는 밤중에 인체가 스스로 멜라토닌을 방출하는 방식과 작용이 더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뉴림제약(Neurim Pharmaceuticals)은 이미 상당수 유럽 국가에서 55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사용허가를 받은 장기지속성 멜라토닌제 서카딘(Circadin)을 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서카딘은 크기가 커서 아동이 삼키기 어렵고, 약을 분쇄할 경우 장기 지속하는 성질을 잃어버린다. 개발 중인 더 작은 약은 자폐 또는 기타 관련 질환을 가진 아동 125명을 상대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우수한 효능을 보였다. 참가한 아동 중 근 70%가 시험 이전보다 수면이 개선된 것이다. 위 약은 아동이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13분 단축한 반면 신약은 40분 단축했다. 또한 총 수면시간을 한 시간가량 연장하는 탁월한 효능을 보여주었다.

불 끄기. 어머니에 의하면 잭슨은 수면의 질이 나아지자 학교에서의 집중력도 개선되었다.
해당 임상시험의 수석연구원 폴 그린그래스(Paul Gringras) 씨에 따르면 임상적 측면에서 중요한 지점은 아동이 알약을 삼킬 수 있는가의 여부다. 연구진은 향후 80주 동안 참가한 아동을 추적하여 아동의 사회적 행동, 수면의 질, 부작용 유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뉴림제약의 현 목표는 유럽 당국으로부터 2018년 10월까지 신약에 대한 처방 허가를 받아 시판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후에는 미국에서의 처방 허가를 추진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치료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효능은 자폐를 가진 아동의 수면 개선 이외에도 낮 동안의 행동 개선과 학습 개선이다. 엄밀하게 검증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일부 부모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효과가 있다고 보고한다. 브리지드 데이 씨는 닉이 더 이상 밤중에 깨지 않게 된 이후로 “세부적인 일에 대한 주의력이 개선된 것 같다”고 한다. 잭슨의 어머니도 비슷한 생각이다. 아이가 밤중에 깨지 않게 된 이후 학교에서의 집중력이 개선되고 간혹 감정에 영향을 주는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잭슨은 2학년 과정을 순조롭게 밟고 있으며 집에서는 팝업북 만들기와 레고로 복잡한 건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잠을 더 잘 자게 되었다. 잭슨이 당당하게 “이제 자러 갈게요”라고 말한다. 부모님은 미소를 짓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자러 가거라”.
본 기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번역: 본 자료는 함께웃는재단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생들이 번역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출처: https://www.spectrumnews.org/features/deep-dive/get-children-autism-sl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