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의 미후지 가에 있는 2층 강당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들어 아는 게 없는 범부 비구들아,
차라리 불로 구리쇠 막대기를 달구어 눈을 지져 태울지언정,
안식으로 색을 취하고 아름다운 형상을 취하지는 말라.
왜냐 하면 색을 취하고 아름다운 형상을 취하면
마치 무쇠 탄자[鐵丸]가 물에 가라앉듯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愚癡無聞凡夫。比丘。寧以火燒熱銅籌。以燒其目。令其熾然。
不以眼識取於色相。取隨形好。
所以者何。取於色相。取隨形好故。墮惡趣中。如沈鐵丸。
어리석고 들어 아는 게 없는 범부들아,
차라리 송곳으로 귀를 뚫을지언정
이식(耳識)으로 소리를 취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따라 집착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식이 소리를 취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따라 집착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마치 무쇠 탄자가 물에 가라앉듯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어리석고 들어 아는 게 없는 범부들아,
차라리 예리한 칼로 코를 벨지언정
비식(鼻識)으로 냄새를 취하고 좋은 냄새를 따라 집하지 말라.
왜냐 하면 냄새를 취하고 좋은 냄새를 따라 집착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마치 무쇠 탄자가 물에 가라앉듯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어리석고 들어 아는 게 없는 범부들아,
차라리 예리 칼로 혀를 끊을지언정
설식(舌識)으로 맛을 취하고 좋은 맛을 따라 집착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맛을 취하고 좋은 맛을 따라 집착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마치 무쇠 탄자가 물에 가라앉듯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어리석고 들어 아는 게 없는 범부들아,
차라리 강철로 만든 예리한 창으로 몸을 찌를지언정
신식(身識)으로 감촉을 취하고 좋은 감촉을 따라 집착하지는 말라.
왜냐 하면 감촉을 취하고 좋은 감촉을 따라 집착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마치 무쇠 탄자가 물에 가라앉듯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모든 비구들아, 잠[睡眠]에 빠짐은 어리석은 삶이다.
이 어리석은 삶은 아무 이익도 없고 아무 福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아, 차라리 잠을 잘지언정
저 색에 대해 감각과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만일 감각과 생각을 일으키면,
틀림없이 얽매임과 다툼이 생겨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르게 하고,
하늘과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거나 안락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와 같이 공부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불에 달군 쇠창으로 내 눈을 찌를지언정,
안식으로 색을 취함으로써
세 갈래 나쁜 세계[惡趣]에 떨어져 긴 세월 동안 괴로움을 받지는 않으리라.
나는 오늘부터 올바르게 사색[思惟]하여,
眼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색과 안식과 안촉(眼觸)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도 또한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귀[耳]·코[鼻]·혀[舌]·몸[身]의 입처(入處)에 대해서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차라리 쇠창으로 내 몸을 꿰뚫을지언정,
신식(身識)으로 감촉과 좋은 감촉을 따라 취함으로써
세 갈래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는 않으리라.
나는 오늘부터 바르게 사색하여,
몸은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또 촉과 신식과 신촉(身觸)과
신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도 또한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와 같이 공부한다.
'잠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이 어리석은 삶은 과보(果報)도 없고 아무 이익도 없으며 복도 없다.
나는 마땅히 자지 않을 것이며,
또한 감각과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만일 생각을 일으킨다면 얽매임과 다툼이 생겨
많은 사람들을 이치로써 요익(饒益)하게 하지 못하고
안락(安樂)을 얻게 하지도 못할 것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이와 같이 관찰하는 자는
眼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색과 안식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인,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각들에 대해서도
또한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
싫어하기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므로 후세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첫댓글 파초님의 댓글을 보고 이 카페 잡아함 게시판에서 소연법경을 옮겨 왔습니다.
이 경문의 내용은 우리 육신은 무상한 존재이므로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즉 감각적 쾌락, 육근을 만족시키는 쾌락에 탐착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여기서 색이 마음이다. 라는 논리를 유추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색이 마음이다 라는 논리를 유추하는 것이 아니고
경에 안, 색이 다 마음법이라고 나와 있지 않나요?
안이 마음법이 아니라면 어째서
안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내라 했을까요?
신체기관이나 감각기능을 싫어하라 하는 것이 말이 될까요?
그것보다는 님이 말씀하신대로
탐욕을 버리라는 의미로
안을 싫어하라고 했다면
안은 탐욕으로 결박된 마음법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색과 안과 안촉과 안식 그 과정이 모두 마음의 작용이지 달리 뭡니까? 그 과정을 심연생이라 한 것 아닐까요?
수상행식을 정신작용이라 하지만 그것은 전체가 하나로 이루어 지는 과정이지 나누어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 님이 말씀하신,
색과 안과 안촉과 안식 그 과정이 모두 마음의 작용이라 하신 부분에서
과정이라 하신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혹시 색과 안은 마음법이 아니지만 색과 안을 인연으로 일어나는 과정들이 마음법이라는 이야기이신가요?
경에는 분명 안, 색이 모두 심연생이라 했어요.
눈이 감각기관이라면 심연생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색이 외부의 물질이라면 심연생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생각해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안을 말할때 우리의 신체 기관을 말할수도 있고, 사물을 보는 기능을 말할수도 있습니다.
혹시 6내입처와 6근을 그런 차이로 보십니까?
노랑님 올려주신 글을 근거로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내입처는 부처님만이 발견하신 개념이고
해탈을 위해서라면 멸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근, 신체기관 혹은 사물을 보는 기능은 그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해탈을 위해서 멸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차이에 대해서는 십이처과 근의 차잇점이라는 글에서
너무나도 충분히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인데요.
십이처를 멸해야 한다는 경도 충분히 올려있고
근은 수호해야 한다는 경도 올려있습니다.
육근이 육경을 접할때 좋다, 싫다 하는 마음이 일어나지요.
좋다, 싫다 하는 분별을 일으켜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안과 색을 싫어하는 마음을 내라는 것은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을 볼때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야지 어느 한 구절에만 메달려서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 구절에 매달려서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 사파현정님은
그냥 대충 읽고 대충 짐작하시는 듯 해 보입니다.
안과 색이 심연생이라는 중요한 말은 그냥 건너 뛰시고 있구요.
좋다싫다라는 분별을 일으켜 마음에 잡착하지말라 예를 드시고선
안과 색을 근경으로 보시는 분께서 안과 색(근,경)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센스가 안되시는 말 같습니다.
12처를 근경으로 보시는분들
'떠나라' 하는 부분이 나오면 전체를 보라 많이들 말씀 하시는데
제가 그 마음을 조금 아는데 뒤로하고
'떠나라' '집착하지말라' 두 단어 자체만 비교하면 비슷할수 있지만
이 두 단어들은 수식하는 대상에 따라 이 두 단어를 사용하고 못하고
해서 천지간으로 벌어집니다.
즉,
'떠나라' 라는 단어의 대상이 망념이면 사용가능하고 몸둥이가 되면 우습고
'집착하지 말아라' 란 단어의 대상이 몸둥이,마음이면 모두 사용가능 하므로
두 단어 용도를 함부로 바꾸어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몸둥이를 떠나라 하는 것이 말이 안되니 집착하지 말라로 바꾸는 것은
경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해서 경에 '떠나라 '하면 떠나라 그대로 보는 것이
경을 확대해석하지 않는 길입니다.
사파현정님은 이 부분 부터 짚고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오늘부터 올바르게 사색하여, 眼은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인연하여 생긴 법이라고 관찰하자 ]
-이 문장을 보면 나는 주어이고 관찰하라는 동사입니다.
나는 이러이러 한걸 관찰하자 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관찰한다고? 안이 무상,유위,심연생' 을 관찰하자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안이 안근임을 관찰하자'가 아니라 '심연생임을 관찰하자'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해서 부처가 바르게 관찰하는 것은 안이 안근이 아니라
심연생을 임을 명시하지 않습니까?
이 구절이 어렵나요?
그리고 안이 마음 법임은 단경에서도 나옵니다.
<잡아함 224 단경><S.N 35.24~25>
"일체 탐욕의 법은 끊어야 하느니라. 어떤 일체 탐욕의 법은 끊어야 하는가. 이른바 안은 일체 탐욕의 법이니 끊어야 하며, 혹은 색과 안의 <의식>과 안촉과, 눈의 부딪치는 인연으로 생기는 느낌, 즉 혹은 괴롭고 혹은 즐거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혹은 즐겁지도 않은 안의 감정의 그 일체 탐욕의 법도 끊어야 한다. 귀·코·혀·몸·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一切欲法應當斷。云何一切欲法應當斷。謂眼是一切欲法應當斷。若色.眼識.眼觸.眼觸因緣生受。內覺若苦.若樂.不苦不樂。彼一切欲法應當斷。耳.鼻.舌.身.意亦復如是。
경에 일체탐욕법은 끊으라 합니다.탐욕이 무엇입니까? 중생의 마음 아닙니까?
어떤 것이 일체탐욕법?
이경은 12처,6식,6촉,6수 모두 말하면서 친절하게도
도입부에 [안은 일체탐욕법 이다]하면서 '끊으라' 고 정확히 기술되있습니다.
보이시지요?
<소연법경>안이 심연생이라고 관찰하자
<단경>에서 안이 탐욕법이다 라고
해서
두경에 의하면 '안이 마음 법'임이 나오나요? 않나오나요?
이문제부터 분명히 말씀 하시길 바랍니다.
이경에 보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마치 무쇠 탄자가 물에 가라앉듯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라고 나오는데 단멸론자들은 이걸 어떻게 해석하나요?
그들 견해라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남는게 없느니라 라고 해야 할것 같은데 ...
그러게 말입니다.
정확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뒤 라는 단어도 똑같고.
한경에 같은 구절이 반복되어 무척 많이 나오는군요.
떗목과 단멸론자들이 봐야할 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