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리고 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꺼내놓고 보니,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이구나
나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점점 투명하여 밝게 비추는 이 봄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꺼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이 밤이 새도록 박쥐
나야 네 곁을 오리처럼 뙤뚱뙤뚱 따라다니던 그래 나야
불빛 한 점 날아와 부딪치는 다방 창가
너는 턱 괴어 애인을 기다리지만
베토벤 교향곡 음표들처럼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
네 크림빛 눈물이 나태하게 풀리는 동안
퐁당 퐁퐁당 네 이마 위로 각설탕을 빠뜨리는, 그래 바로 나야
네가 정중히 뒷문을 가리키며 꺼지라고 소리치던 나야 나
네가 쓰레기라고 말했던 나야 나, 검게 탄 미소로 뒷걸음치다
난 자동차에 치였을 뿐,
신발이 구르고 어깨를 감싸던 검정 망토가 풀썩 덮쳤지
삐뽀삐뽀 사거리 순서가 뒤얽혀
신호등이 앵무새의 호동그란 눈을 치켜뜨고
경광등을 켠 고양이들은
거리로 몰려나왔지 딴 세상의 똘마니들이 도래한 거야
힘들어 죽겠는 망토의 두 팔을 쫙 펼치자 때마침 바람이 폭풍이
아하 비틀,
할 줄 알았겠지만 나는 붕 날아올랐어
해와 달이 쌍생아처럼 서로
껴안고 나무들은 머리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고
작고 순하지만 성질이 불 같은 집들이 바람의 살집 아래
화들짝 눈을 떴어
더러운 환풍구야 식당 뒷문이 흘리는 비웃음아
굴욕을 토하는 골목들아 날 봐
납작한 사거리 납작한 마을 납작한 산,
접부채처럼 활짝 펼친
날 좀 봐 주름이 좀 이뻐
날아가는 내 날개 사이로 하늘이 다 비치고
높이 솟다가 문득 내려앉는
나야 나
너는 애인을 기다리다
한 점 불빛 날아와 부딪는 커피잔을 훌쩍 들이마셨을 때
거꾸로 매달린
나를 본 거야 맞아 나야
너는 스푼을 내던지며 박쥐, 라고 소리 쳤어
다방 목조계단을 쿵쾅쿵쾅 뛰어내려와
문을 열었고, 순간 삐거덕거리는 계단의 무릎이 꺾이고
놀란 네 몸이 와르르 무너졌지, 나야 그래 나야
네가 쓰레기라고 말했던 그래
이제는 달을 지우고 사라지는 지붕과 지붕 사이
눈빛이 칼날같이 그려진 나야
얼굴을 파묻고 검정 망토에 손깍지 끼면
발밑이 떠오르고 두 팔 벌리어 바람의 양감을 느낄 수 있고
조타수처럼 방향을 조종할 수도 있지
날아가는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겠지만
내 검은 그림자는 숲에서 죽은 새의 몸처럼 눈에 띄지 않는
숨은 비밀이겠지만 갈대숲의 흔들리는 고뇌 속에
내 눈물이 떨어진 걸 아무도 모를 테지만
여전히 사랑을 원하는 삐진 표정이겠지만
울먹이는 밤엔 창 열어 눈을 마주쳐 보아도 좋아
밤의 책장이 저 혼자 덮히거나 부엌등이 파닥 튀거나
알지 못할 천공의 울림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 잘 살고 있어, 네가 쓰레기라고 말했던 그래 나야
지붕과 지붕 사이 붕 떠올라 달을 쿡 찌르고
쿡, 쿡, 쿡, 웃어 죽겠는 나야 나
눈빛이 칼날같이
이제 나야 나
첫댓글 글 읽는 재미의 다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