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독기를 빼내면 그때부터 진짜 글이 됩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 입니다. 어떤 촌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그 분함을 풀길이 없어 지붕위에 올라가서 초가집 용마루를 잡아 틀었더니 초가삼간 속에 자던 자기 아들의 사지가 용마루 처럼 배배 틀리며 죽어 가더랍니다. 그걸 보고 기겁을 한 촌부가 용마루에서 내려와 참회를 하여 아이가 살아 났다는 이야기 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에 보면 마음에 독기를 가득지니고 그 독기를 세상을 향해 푹푹 뿜어내는 지내와 그 독기를 막아서서 자기를 돌봐준 착한 아이를 살리려는 두꺼비가 같이 독으로 맞섭니다. 결국 지내가 죽고 아이는 살아나고 두꺼비도 기력이 소모되어 죽습니다. 독을 빼내지 않으면 몸 속에서 암이 되고 치매가 옵니다. 몸속의 독, 마음 속의 독을 빼내고, 이웃의 행복을 빌어주는 길이 내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길이 됩니다. 20년 전에 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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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가는 길(4)
범몽 정임표
관암사 경내에서 정화수 한 바가지를 들이킨다. 동짓달 스무엿새, 서산에 걸렸던 보름달이 동녘으로 가더니만 이제는 그믐달이 되어 계명성 아래 붙어있다. 나도향은 그믐달을 요염한 달, 원부(怨婦) 같은 달이라 했다. 저 달 어디에 원부와 같은 애절함과 독기가 있는가? 나는 산을 오르다 말고 인적 없는 쉼터에 앉아 달을 본다.
맑은 정화수로 씻긴 속이 참 편하다. 달을 보는 마음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저 달도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모든 변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진리는 존재하는 것들은 언젠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어디로 소멸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세상에서 한번 권세를 잡은 자들이 영원히 산다면 다른 뭇 생명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억만장자가 죽지 않고 산다면 가지지 못한 숱한 사람들은 마른 빵 한 조각을 위해서 벌레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이 진리는 참으로 공평하다. 억울한 것은 생목숨이 떨어지는 일이다. 보름달로 차올랐다가 그믐달로 지는 달에 무슨 한이 있겠는가.
사람은 삼라만상 속에 살면서도 자기 마음속에 갇혀 산다. 자기 처지에서만 생각하니 한이 쌓이는 것이다. 짐승들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만 생명을 취하지만 인간들은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다른 생명을 취한다. 억울하기로 치면 말 못하는 짐승들이 더 할 지도 모른다.
인간은 다른 생명을 양식으로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기도문은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라고 가르친다. 광야에 내린 만나( 출애굽때 가나안을 찾아 광야를 헤매는 모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린 양식. 하루 분 이상을 거두면 썩어서 먹지 못했다 함.) 같이 하루 분만 취하라고 가르친다.
티브이 화면에서 원양어선들이 잡아 올리는 엄청난 생선들을 본다. 살아서 퍼덕거리는 그 싱싱한 생명들, 그 생명들이 죄다 인간의 배 속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티브이를 보다 말고 내 배를 내려다보게 된다.
암(癌), 현대인에게 가장 많이 생기는 질병인 암은 산처럼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 한다. 생명의 존귀함을 망각하고 다른 생명들을 마구 먹어치운 업(業)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 한다. 내가 두 마리를 먹는 것을 한 마리로 줄인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다시 태어 날 것인가.
만물 중에 인간만이 먹지도 않는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온갖 저장고를 개발한다. 내가 보관해 두려는 시간을 그것들에게 번식토록 내주었더라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태어났을 것인가. 내 양식이 되어버린 생명들은 나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기회도 없이 사라졌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인간의 욕심인양 붉다. 유한 재화와 무한 욕망만이 수요와 공급곡선을 달리며 도시를 움직인다. 내 손에 죽어 없어지는 것들이 흘리는 마지막 눈물에 대한 동정 따위는 애초부터 없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들 같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투쟁만을 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생명에게 필요한 참 자유가 아니다. 그런 세상을 자유 시장경제라고 믿고, 그렇게 쌓은 재물을 성공이라고 자랑하는 인생이 한 둘이 아니다. 인간에게서 욕망을 저 달처럼 비워갈 수는 없는가.
한번 떠난 생명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은 오직 생명을 통해서만 태어난다. 생명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적게 먹고 적게 가져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없는가.
내려가는 길에 정화수를 또 한 바가지 마신다. 이번에는 영혼이 맑아진다. 깨끗한 옷을 입고 더러운 곳에 앉을 수 없듯이 마음이 맑아지니 산을 내려가기가 싫어진다.(원고분량 9.4매 2008.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