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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 20.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 21. 이방인의 바람
마 12: 20.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
겸손한 자는 자신을 감추지만, 교만한 자는 자기를 과시하며 자기를 자랑한다. 주께서는 겸손하셨고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그러나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듯이 연약한 자들을 오래 참으시고 마침내 죄인들의 구원을 다 이루실 것이다.
1]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이 표현은 종이 자비심이 많고 오래 참으시며, 온유하신 사람임을 보여준다.
사용된 두 상징에 대해
(1) 카슨(D. A. Carson)은
상한 갈대는 고생하며 유리(流離)하는 자들(9: 36)을 꺼져가는 심지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11:28)을 말한다고 하였다.
(2) 제롬(Jerome)은
전자는 이스라엘을, 후자는 이방인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3) 상한 갈대란
사회의 구조적 모순, 유대 사회에서는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육체를, 그리고 꺼져가는 심지란 그들이 영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두 비유는 연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상한 갈대'란 연약한 인간, 고통과 좌절로 인해 심령이 산산이 부서져 쇠잔해 있는 영혼을 가리키며, '꺼져가는 심지'는 마지막 한 가닥 소망마저 다 없어져가는 인생, 양심의 빛을 상실해 심령이 어두워져가는 영혼 등을 의미한다.
실로 상한 갈대는 오직 하늘의 기원으로 소생하고, 꺼져가는 심지는 신령한 기름을 흡수(absortion)함으로써 회생(回生)할 수 있다(Clarke).
* 왕하 18: 21 -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 겔 29: 6 -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2]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사 42: 4에 의하면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로 메시야 직무 수행의 목적을 나타내는 말로 기록하고 있다.
'심판하여 이길 때'란 월리암스(A. Williams)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의 계시를 인간의 마음에서 성공시키는 것'을 뜻한다. KJV에 의하면 이 구절은 '그가 심판을 승리로 몰고 갈 때까지'(until he expel to victory the judgment)로 표현하였다.
고난의 종인 메시아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의 영광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유와 겸손과 섬김의 도(道)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의 악의 세력 위에 세우게 될 때까지를 말한다. 이는 긍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 위에 굳게 세우셨다.
마 12: 21. 이방인의 바람 -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
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사 42: 4에 의하면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이다. '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이'(*)의 기본 개념은 '거주 가능한 땅'으로, 이사야 본문에서는 내륙지방과 구별되는 해안지방(coast)을 의미한다.
해안지방은 부분적으로 뵈니게인과 블레셋인과의 교역(交易)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섬'이란 말이 가끔은 '이방'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마태는 70인 역(LXX)을 따라서 '율법' 대신에 '이름'을 사용하였다.
'바라리라'(will put their hope, NIV)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기대한다.', 또는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실들에서 결국 이방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바는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랑게(Lange)에 의하면 메시아의 이름은 '하나님의 진리를 요약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하는 말이다.
2] 참된 하나님의 종
바리새인들은 많은 군중이 주님을 따르고 그의 교훈을 듣고 그를 추종하자 자신들의 종교적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주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병든 자를 치료하시면서 그의 사역을 계속 수행하셨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마태는 사 42: 1-4을 인용하여 묘사하였다.
* 사 42: 1-4 –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우리는 이러한 본문을 통하여 참된 하나님의 종으로 오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사를 나누도록 하자.
(1) 참된 용기를 가지셨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의 정면충돌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용기의 부족이나 죽음에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그가 하셔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종은 자신의 혈기나 자존심으로 인해서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의 종은 참된 용기와 만용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2) 오해의 여지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병 낫기를 위해서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문을 내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왜 주님은 침묵을 명하셨을까? 그것은 흥분을 잘하는 군중, 그리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군중, 그래서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할수록 그들의 세속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야이기를 원하는 그들의 오해를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세상 권력의 왕이 되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가 아니며, 그것을 위해 기적을 베푸신 것도 아니다. 주님은 죄악에 빠진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이며, 그가 베푼 기적은 하나님만이 베풀 수 있는 기적으로서 그가 구세주이심을 믿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 수단이었다.
그는 영광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을 위해 대속물이 되고자 죽으러 오신 메시야이셨다.
* 막 10: 44-45 –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내리신 침묵의 명령은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명하신 사역 과정에서 결코 오해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
* 딤후 2: 20-22 –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진리를 왜곡되게 해서도 안 된다.
* 딤후 2: 18 -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 딤후 1: 9-11 –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3) 임박한 심판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
예수님의 임박한 심판의 날을 예고하러 오신 메시야이시다. 이는 그가 전한 첫 복음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으로 잘 알 수 있다.
* 막 1: 15 –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우리는 모두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존재이다. 한 사람이라도 심판대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대 앞에서도 떳떳이 설 수 있도록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은 이러한 심판의 경고를 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심판은 하나님의 뜻이요, 또 성도의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4) 겸손하고 온유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성품을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라고 예언하였다.
* 사 42: 2 -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이는 겸손과 온유의 화신인 주님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에게 맡기어진 모든 사역을 조용히 순종함으로 감당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주의 종이 갖추어야 할 겸손과 온유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바울 사도도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 딤후 2: 24-26 –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5) 용기를 북돋는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다.
* 사 42: 3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죄악과 허물로 더럽혀진 인간은 상하여 거의 바로 설 수 없는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조차도 없는 이 연약한 존재를 주님은 강하게 치유하시고, 더 밝고 환한 불빛이 되게 하여 주셨다.
그는 위로자요 치료자이시다. 하나님의 종은 용기를 꺽는 자가 아니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다.
(6) 희망을 준다.
주님은 '이방인들까지 바라는' 분이 되리라고 이사야는 예언했다.
* 사 42: 4 -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의 희망이다.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 행 2: 21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지금 주의 이름을 부르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구원을 준다.
* 눅 23: 39-43 –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이야말로 온 인류가 소유할 수 있는 최대의 희망이다. 하나님의 종은 이러한 희망을 성도에게 심어 주어야 한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본문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성전보다 더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감히 말할 수 없는 말이다. 사람으로서 누가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예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날로 구별된 날이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감히 그러한 말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예수께서 참된 신성 즉 참된 신적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그는 바른 인격자가 아닐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든지 미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가 아니고 그가 주장하신 그대로 성전보다 더 큰 자요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또 그는 한편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고 그 외에도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다. 그는 말로만 자신을 증언하신 것이 아니고 친히 병 고침의 능력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안식일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안식을 상징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참된 안식과 평안을 얻었다. 또 우리는 오늘날 주일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킬 때 단순히 예배 의식을 중시하는 데 머물지 말고 참된 경건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마음을 열고 사모하며 또 병약한 자들을 돌아보고 처음 교회에 찾아온 자들을 기쁨으로 맞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를 비방하거나 교우들을 비방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교회를 허무는 자가 되지 말고 교회를 세우는 덕스러운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바른 태도이다.
셋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용한 사역을 본받아야 한다.
오늘날 적지 않은 교회들이 여러 가지 떠들썩한 행사들을 하며 본래의 교회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교회의 예배들이 충실한 성경 강해가 없는 소란스런 모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회는 성경에 가르친 대로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충실히 강론하며 배우고 서로 교제하며 사랑하고 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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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 위에 굳게 세우셨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 위에 굳게 세우셨다.
설교 감사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정복하셨고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 위에 굳게 세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