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2:28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개역개정판)
요한복음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개역개정판)
장 밥티스트 포레(Jean-Baptiste Faure, 1830~1914)의 ‘종려나무(Les Rameaux)’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풍경을 그린 최고의 수작이다.
가브리엘 포레가 클래식 쪽에서는 유명하지만
장 밥티스트 포레는 본디 작곡가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였고,
이 곡을 통해 더욱 유명해졌는데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에 녹음된 그 유명한 엔리코 카루소 버전은
포레 생전에 공연, 녹음되었는데
그 녹음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 결혼식 때 신랑 행진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이 곡을 두고
십자가 지(고 죽으)러가는 거 알고 저러는지 모르고 쓴 건지...
비아냥대는 사람의 말도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모르게 서글프고 유려한 곡조는
프랑스의 어느 도시 풍경과는 잘 어울릴지 몰라도
예루살렘 당시 풍경과는 사실 어울린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눈먼 자를 보게 했다던데
베다니 사람들이 직접 봤다더라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하더군.
예루살렘과 베다니 사람들은 들떠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저 로마가 물러가겠구나.
160년전 저 포악한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항하여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던
유다 마카베오(망치...)의 하스몬 왕조처럼
아니, 그 옛날 우리 조상 다윗 왕조와 솔로몬 성전 시대처럼
우리도 드디어 이 예루살렘에서 영광스런 날을 보겠구나.
최소한
민족의 해방 뭐 그런 거 말고, 나의 안전과 행복... 뭐 이런 것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진짜로 자기 민족을 사랑했던
요나나 에스더 같은 사람들
그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오히려 뭔가 비장미가 가득한 음악이 어울렸을 것이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 때는 무슨 한이 맺힌 음악도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히브리 음악 특유의 단조 멜로디는 실제로도 울려 퍼졌을 것이다.
어쩌면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는 저 시끄러운 동네의 음악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무슨 축구 경기 전후의 응원 분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님의 모습은 개선 장군의 모습도 아니고
무슨 카퍼레이드 같은 모습도 아니었다.
가장 겸손하게 어린 나귀를 타시고
별 말씀도 없으신 채
바리새인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간단히 답변하신 다음
돌들로도 찬양할 수 있게 하실 수 있는 그 능력 또한 가르쳐 주시고
그냥 그렇게 예루살렘의 길, 그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충족하시기 위한 그 길
지금도 우리는
주님이 그 길을 (빨리) 걸어오셔서
우리의 눈물을 씻겨 주시길 구하며
이제 구원하소서.. 라고 외친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거기에서만 그쳐서는 안될 일이다.
열기와 분위기만 놓고 본다면
우리보다 뜨거운 사람들도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도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뜨겁기만 하다고해서 진실한 것도 아니며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도 공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
분위기에 휩쓸려 신앙의 고백만큼 가벼운 것도 없다.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향한 간절한 마음은
크고 간절한 음성보다는
낮고 고요한 음성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사실 더 많다.
신앙의 깊이도 마찬가지
목소리 큰 사람보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 성숙한 경우를 훨씬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 고요한 자가 묵묵히 걸어가는 길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 생명의 능력이(잠 12:28)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런 강물 같은 은혜가
우리의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기도 한다.
첫댓글 https://youtu.be/iR54h-OJhiI?si=eTqPTyNqwHc0UC-H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