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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남편
요한 복음 4장 3절 -42절
우리는 수가성 여인과 생수에 관하여 많은 설교를 듣고 이 본문만 읽어도 이 성경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설교 본문을 읽고서 설교 결론까지 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보통 설교와는 다르게 세 가지 관점을 가지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는 길입니다.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지나야 갈릴리에 가게 됩니다.
유다는 남쪽에 있고 유다 베들레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는, 갈릴리 바다까지는 약 80마일 130 Km입니다. 320리 가량 되는 거리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하루에 볼일 다 보고 돌아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옛날에 걸어다닐 때는 3일 길을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중동 지방은 내가 살고 있던 아리조나주 피닉스와 같아서 여름에는 뜨겁고 기온이 100도 이상, 섭씨로는 40도를 넘는 뜨거운 곳입니다. 여름에는 항상 물을 준비하고 다니면서 물을 먹으면서 걸어 다녀야 탈수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름에 피닉스에 사는 사람들은 자동차에 비상 음료수를 싫고 사막 길을 통과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제가 1964년도 차를 400 딸라에 사서 똥차를 타고 다닐 때는 꼭 물을 싫고 다니는데 어느 날은 그냥 나왔다가 오바히트하여서 자동차가 가지 못하고 김만 내 뿜고 있으니, 지나가는 차들이 서 주면서 물이 있냐고 물으면서, 물을 차에서 내려서 물로 차를 식혀 주고 나에게도 비상 물을 주면서 돌아가는 미국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보았습니다.
4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서울에서 대전을 가려면은 경기도를 거쳐야 대전을 갈 수 있듯, 사마리아는 유다와 갈릴리의 중간 길목에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중간 지점에 수가라는 사마리아 동네가 있습니다.
수가성 바로 위쪽에는 옛날 이스라엘의 수도 였던 사마리아 성이 있습니다. 수가는 아주 촌입니다. 이 사마리아 성이 있는 부근을 사마리아 지방이라 부르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인과 앗수르 인의 피가 섞인 혼혈 유대인들이 살고 잇습니다.
여러 종류의 혼혈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였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앗수르로 잡아가고 대신 그 자리에 앗수르 사람들이 와서 살아서 혼혈 잡종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전통 혈통을 가진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개같이 여기고 말상대도 안하고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살고 있는 나를 주님이 찾아 왔습니다.
오늘 이 수가성에서 나오는 여인을 바로 “나”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나를 살펴 볼 때에 “나”는 사마리아인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미국에서 당하는 일로, 우리 동양인을 볼 때 백인들이 우리를 Chinese라 말하며 중국인이 아닌데도 우리를 중국인, 되놈이라는 멸시하는 말로 우리를 대하지 않는가요? 백인들 중에 어떤 이는 아침에 우리를 만나면 챠이니스를 만났다 하면서 재수 없다고 합니다. 나도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 모르고 물건을 사려고 상점에 들어갔다가 쫓겨난 일이 있습니다.
우리 동양인들이 미국 상류 사회 깊숙한 곳에는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벽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종의 편견, 차별은 과거에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런 차별을 받는 중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더 멸시를 받습니다.
우리 나라도 과거에 “백정놈”이라는 천한 계급 사람이 있을 때에, 아무리 나이 많은 사람이라 하여도 조고만 어린아이가 그 노인에게는 반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마리아 성에 살고 있는 멸시 천대받는 죄인입니다.
특별히 사마리아 사람들 중에서도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치운 여자 같이, 남들은 뜨거운 낮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사람들이 없는 12시에 물을 길어야 하는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 된 나를 일부러 찾아오시었습니다. 나를 구하시려 그 따가운 대낮에 더위를 무릅쓰고 담을 흘리면서 나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먼저 “물을 달라”고 요구하십니다.
육신을 입고 계신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많이 흘리시면서 “내가 목마르다” 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막의 뜨거운 지방을 여행하시면서 나를 찾아오시면서 땀을 너무 많이 흘리시고 수고를 하시었기 때문에 물을 달라고 나에게 요구를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한 바가지를 떠서 예수님께 드리니 예수님은 물을 꿀꺽 꿀꺽 마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예수님을 보고 수가성 여인은 한마디 말을 던집니다.
“우쨔 높으신 양반이 이 뜨거운데에 걸어다니며 나 같은 사람에게 물을 달라신댜?” 며 예수님께 말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때부터 H2O 물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시고 생명의 물에 대한 물로 대화가 진전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든 사고와 말하는 것이 생활과 직접 관련이 되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주님은 잠시의 생활 수단보다도 영원한 삶에 필요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절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영원한 생수에 대하여 말씀을 하였지만 이 수가성 여인은 아직도 자기의 생명 유지의 근원이 되는 H2O의 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생수에 대한 말한 것을 깨닫기 위하여 영원한 생수에 대한 설명을 계속 하였습니다.
이 생수의 근원을 달라고 여인이 말할 때에 이 생수를 받으려면, 얻으려면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자기가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의 모든 희생을 다 바쳐서라도 섬기는 사람이 남편입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이성의 존재에 대하여 느꼈던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그 사람만 내 곁에 있어 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지는 그러한 존재를 느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좋은 사람 만나고 출세한 사람을 만나면 자기는 한 일이 없어도 남편 때문에 덩달아 출세를 합니다.
예를 들면 군대에 가면 군인 대령의 부인은 자기는 실제로 아무런 계급이 없지만 중위나 대위는 심부름꾼같이 부리고, 세도 부리며 연대장 사모님이라는 존칭을 들으면서 살고, 남편이 사단장이면 대령을 우습게 알고 있고, 참모총장 부인은 사단장을 종같이 부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편을 잘 만난 사람은 어떤 사람은 한 시간에 일만 딸라씩 쓰면서 살고, 남편을 잘못 만난 사람은 일평생 죽을 고생만 하고 새우젓 장사나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수를 마시려면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에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남편이 없다는 말에 네 말이 옳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사람에 정말 나를 호강시켜 주고 내가 평생 의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여주는 남편이 있습니까?
남편이 속이나 안 썩이고, 때리지나 않고 일거리나 만들어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결혼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남편 잘못 만나서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 돈 다 까먹고, 술 먹고 행패를 부리지나 않고 때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하소연도 많이 들어 본 말입니다.
나는 여기서 육신의 남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에서 의지하고 사랑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여 줄 수 있는 것을, 남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이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남편보다 더 행복하게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수 있으니 돈이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이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권력만 있으면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벌벌 떨며 대령하고 있으니 권력을 남편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명예가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취미, 오락이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골동품 애호가는 도자기를 보고 있으면 하루해가 지나가는 줄을 모르고 거기서 모든 것을 느끼며 심취하여 시간을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약이, 술이 남편으로 삼은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여 주는 것이 남편입니다.
이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상은 여섯 사람의 남편을 두고 그 남편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여 줄까 하면서 사람을 여섯 번이나 바꾸어 보았지만 그렇지가 못하니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이 없다는 말을 듣고 네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여 줄 것 같은 것을 많이 바꾸어 보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여 주는 것은 없었습니다.
나도 역시 취미라는 남편을 두고 내가 행복하여 지기를 노력한 일이 있습니다.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하여 줄 것 같아 음악에 심취하여 레코드판을 수집하면서 음악 속에 나를 빠뜨려 행복을 얻으려고 하여 보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사진 예술 속에 내가 들어가서 그 속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한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기를 많이 수집하고 사진 찍는 기술을 연마하고 하였지만 그것도 역시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근래에는 컴퓨터가 신기하고 모든 것을 잘 알려주어 그것에 빠져서 컴퓨터를 사서 조작하고 뜯어보고 고쳐 보고하고 인터넷에서 세계 모든 정보를 알아보고 하지만 그것도 역시 나를 행복하게 하여 주지는 못합니다.
수가성 여인도 자기 남편을 여섯 번이나 바꾸어 보았지만 행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무엇을 갖고 싶어 그 일을 위하여 노력한 후에 결국 성취하여 보지만 그것을 가지기 전에 상상하고 노력하던 때가 좋았지 그것을 성취한 후에는 실제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잠시이고 더욱 실망이 크게 오는 것입니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때에 덕수궁에 가서 앞으로의 학사 고시, 약사 고시 등의 큰 시험을 앞두고, 시험과 공부의 시름 속에서 혼자 앉아서 머리를 식히고 있을 때에, 내 앞에서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사진을 찍으면서 다정하게 고궁의 하루를 즐기는 것을 보고 저것이 행복이구나 생각하고 나도 언젠가 저런 행복을 누리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후에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낳고하여 따듯한 봄날에 대학 4학년 때에 느꼈던 행복을 맛보기 위하여 아내를 데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사진기를 들고, 덕수궁에 가서 그 때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 보고 벤치에 앉아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여 보았지만 ,실제로 그때 내가 느낀 것은 행복이 아니라 고생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변소 가겠다고 하고, 뭐 사 달라고 보채고 하여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없었습니다.
행복이란 대상을 두고 추구 할 때가 행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지금 까지 다섯 남편과 살아보았고 현재의 남편이 여섯째 남편도 나를 행복하게 하여 주지 못합니다.
우리도 이 여인과 같이 다섯 남편을 두고 살아왔고, 지금도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하여 줄까를 기대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의지하고 살아 왔던 남편은
1. 돈, 물질, 재물의 남편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남편을 삼아 보았습니다. 아직도 돈을 남편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결혼 할 때에 솔직히 말하여서 그 사람이 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제일 먼저 따져 봅니다. 그리고 돈을 잘 벌거나 장차 돈을 잘 벌 수 있는 남편을 고릅니다. 돈이란 남편을 제일로 의지하고 돈을 남편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나도 돈을 남편으로 삼고 돈을 의지하고 그 물질 남편과 함께 살아 보았습니다.
약국을 할 때에 돈을 많이 벌어 보았습니다. 감초당 약국을 할 때에 하루에 조제 손님이 650명까지 왔다 갔습니다.
종합 병원보다 약을 더 많이 조제하여 감으로 돈을 상당히 벌었습니다.
우리 형님은 그 돈으로 제주도에 땅을 몇십만 평을 샀습니다. 땅이 큼으로 지도책에 땅이 그려지는 넓고 많은 땅을 샀고 해수욕장, 과수원 등 많은 땅을 샀습니다.
나도 서울에 자동차가 얼마 되지 않고 있을 때, 동네에 자가용이 있는 집이 얼마 없고, 자가용 있는 집에서 돈을 꾸어 달라면 얼마든지 꾸어 줄 때에 자가용을 굴리면서 동네에서 제일 큰집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최신 가구, 최신 전자 제품 등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고 살았습니다.
약국을 하는 어느 친구도 역시 풍요롭게 살았지만, 소화가 안되고 신경 쇠약이 걸려서 늘 고통을 당하다가 문창수 전도사와 상담을 하였습니다. 이 때 가난한 전도사의 대답은 당신은 지금까지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 왔기 때문에 이런 병이 걸렸으니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보라는 결론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기 시작 할 때에 자기의 병이 고쳐졌습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 지리라는 환상을 갖지 말기를 바랍니다.
물질 남편은 절대로 나를 호강시켜 주지 못하고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물질이 많으면 천국에 가는 방해꾼 노릇만 하는 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주님의 말씀을 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돈 많은 사람을 남편으로 두어 보았지만 그 첫 남편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여 주지 못하였습니다.
돈이 없다고 기죽지 말고 살기를 바랍니다. 돈 잃어 버렸다고 기죽지 말기를 바랍니다. 어차피 돈이란 남편은 나를 행복하게 못하는 것입니다.
2. 정욕의 남편
먼저 남편은 돈은 있었지만 신체가 약하여서 자기의 정욕을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돈이 있으면 당연히 두 번째
남편을 찾아 나섭니다.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켜 줄 남편을 찾아 나섭니다.
미국 여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니 돈 있는 남자를 원하냐 아니면 정력이 있는 남자를 원하냐고 조사하였더니, 60%가 정력 있는 남편을 원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다음으로 정욕을 찾습니다.
내가 약국을 시작한지 1년도 안되어 어느 제약회사 특매 원이 찾아와서 “優夜膏” 라는 연고제를 선전하며, 남자가 정력이 없을 때에 약을 거기에다 바르면 정력이 좋아진다고 하여 100개를 샀습니다.
몇 개를 선전하면서 팔았더니 약을 도로 가져오면서 안 듣는다고 하면서 돈을 물려 달라고 하여 물려주었습니다. 재고가 많이 남아서 그 약을 볼 때마다 걱정입니다.
어느 날 스님이 한분 오더니 정력이 없는데 걱정이라 하면서 상담을 하기에 됐다 하고 우야고를 권하면서 말을 덧붙여서 팔았습니다. 제가 설교 때는 말을 잘못 하지만 약을 팔 때는 말을 아주 잘 합니다. 여자가 까무러치는 약이라 하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 스님이 몇 개를 사 가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있는 것을 다 달라고 하여 몽땅 중에게 우야고를 그날 다 팔아 버렸습니다. 중이 사 갔으니 돈을 다시 물러 달라고 할 염려가 없습니다. 만일 물려 달라 하면 중이 그런 약을 쓰니까 안 듣는다고 말하려고 대답을 준비하여 놓았는데 다시 그 중이 안 와서 골칫거리 약을 팔아 치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특별히 요사이 먹고 살만 하니 모두 정욕의 남편을 찾아 나섭니다.
돈만은 재벌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이 정욕의 남편을 찾아 나섭니다.
중국도 이제 이 정욕의 남편을 찾아 나선지 오래 입니다. 노래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룸살롱 같이 세상의 정욕을 불태우는 술집이
왜 이리 많은지 모두 짐작하실 것입니다.
이런 정욕의 남편도 한때이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솔로몬 왕은 부에다가 정욕까지 갖추고 1,000명의 남편을 두었지만 역시 인생의 헛됨을 전도서에 기록하였고 솔로몬을 망하게 하는 일로 결론이 난 것입니다.
정욕으로 사람이 한때는 행복한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행복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둘째 남편으로 정욕의 남편을 두었지만 이도 결국 목마름을 채워 주지 못하여 다시 남편을 갈아치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3. 명예, 권력의 남편.
돈이 있고 살 만한 사람은 정욕을 쫓아서 첩을 얻고 소실을 두고 살아 왔다가 현대에는 다른 방향으로 향락의 생활, 퇴폐를 좇아
살지만 그래도 사람에게는 만족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해 세 번째의 남편을 구하는 것입니다.
박사 학위를 돈을 주고 사거나, 아니면 대학교에 많은 돈을 기부하여 명예 박사 학위를 얻기도 합니다.
의학 박사도 역시 대학원생을 돈을 주고 사서, 대신 연구하게 하고 대신 논문을 쓰게 하여 자기 이름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의학 박사가 의학박사가 아니고 돈학 박사가 되는 일이 있는 것은 명예를 남편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역시 권력을 얻으려고 얼마나 돈을 사용합니까? 자격 없는 사람들이 돈으로, 명에나 권력을 남편으로 삼고 정치를 하다가 결국 실력 없는 사람들이 잘못하여 나라가 부도 직전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대의원이란 제도가 있어서 이 사람들이 대통령을 선거한 일이 있습니다.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이 고급 호텔에 들었는데
수돗물 이 안 나와서 세수를 못하고 있는데, 어느 사람은 자기는 세수를 하였다고 자랑하여 물이 어디 있었냐고 물으니 목욕탕에
나지막한 곳에 깨끗한 그릇에 세수하기 알맞게 물이 담겨 있어서 그 물로 세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도 역시 돈을 써서 대의원이란 쥐꼬리 같은 권력을 가지고 권력을 남편으로 삼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명예와 권력을 남편으로 삼고 거기서 행복과 만족을 찾으려 하지만 이 남편도 역시 花無十日紅 이요
權不十年이기에 나를 호강시키는 일이 잠시 일뿐 영원한 행복을 주는 남편은 아닙니다.
4. 취미 오락의 남편
취미 속에, 오락 속에 빠지면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불행을 잊으려고 합니다.
젊은 사람이나 나이가 들면 이 취미 오락의 남편을 삼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요사이 한국의 여인네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이제 적적하여 그 허전함을 메우고자 취미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오락을 찾아 나섭니다. 심지어는 장바구니를 끼고 춤추는 곳에 가서 빙글빙글 도는 오락이나 돈을 다는 취미인 도박에 빠지기도 합니다. 낚시 과부, 등산 과부라는 말 등이 있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였으면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 하였을까요?
낚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기가 물렸을 때의 짜릿한 손 맛 때문에 낚시를 한다 합니다.
스포츠 광, 낚시 광 도박 광이 되어 보지만 잠시 동안만 나를 행복하게 하여 줄뿐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주는 취미 오락은 없는 것입니다.
5. 철학 예술의 남편
좀더 고상한 남편을 찾아서 문학이나 철학이나 예술에 빠져 나를 잊으려고 합니다. 개똥 철학에 빠져서 인생을 논하고 상념과 생각과 사색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도피하려 하여 보지만 오히려 더욱더 큰 비극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술도 역시 자기 심취를 시켜서 한 순간의 감각을 마비시켜 삶의 보람을 찾아내는 것 같지만 결국 이도 한 순간의 행복과 만족을
줄뿐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다섯 남편을 두고 살아 보았지만 거기서 인생의 기갈을 만족시키는 해갈이 없음으로 다시 물을 길러 와야 하는 것입니다.
돈과 정욕과 명예와 권력과 취미 오락, 예술, 학문이 나를 해갈시키고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여섯 번째의 남편을 맞아 살아 보지만 그 남편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7절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지금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여섯 번째의 남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말하십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그것을 의지합니까?
돈? 자식? 건강? 이러한 것들이 나를 만족시켜 주고 해갈시켜 줄 것은 아닙니다.
이 수가성 여인은 여섯 번째의 남편을 수에도 넣지 않는 시시한 남편입니다.
포기 상태, 죽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살고 잇는 상태입니다.
과거의 꿈, 경험은 이제 다 사라지고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실에 따라서 적응하면서 살아갑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의 삶은 여섯 번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해롭고 나뿐 줄을 알면서도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이용하고, 지옥에 갈 줄을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고, 음란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같이 죽지 못해 겨우겨우 남의 눈을 피하여 살아가는 처지에 놓인 우리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환경에 끌려가며 사는 처지인 우리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이 없고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여 보고 누려 보고하였던 우리, 죄악에 매여서 호강함도 없이 행복함도 없이 그저 매일 하루하루를 환경에 끌려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 남편을 불러 오라 하십니다.
우리가 이제 일곱 번째 남편을 맞아서 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예수를 내 남편, 신랑으로 모시고 살아서 참된 영원한 행복, 기갈이 없는 다시 목마름이 없는 만족한 사람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만족과 기쁨은 예수를 남편으로 삼고 살아갈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를 남편으로 삼자마자 너무나도 좋고 기뻐서 내 남편을 소개하기 위하여 동네로 뛰어가서 예수 신랑을 소개합니다.
28절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메시아를 내 남편으로 삼는 것이상 좋은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삼은 자만이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39절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 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나만 예수를 남편으로 삼고 좋아 할 일이 아니라 아직도 만족함에 없이 기갈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를 저들도 남편으로 삼고 살아가도록 소개를 하여야 합니다.
42절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전도를 하면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를 모셔들이고 예수와 교제를 나누며 예수를 경험하여야 합니다.
수가성 동네 사람들은 예수를 경험하고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얻고, 예수를 참으로 자기를 구하여 준 구세주 남편으로 삼앗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 저러한 노력으로 자기의 만족을 찾아내려 하였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여섯 남편으로 만족함이 없던 사람들은 이제 일곱 번째 남편, 예수를 남편으로 삼고 예수를 사랑하고 섬기어 보기를 권합니다.
예수님을 남편으로 삼은 사람의 특징은 목마름이 없이 항상 마음에 만족과 기쁨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나만 이 기쁨을 맛보지 말고 이 기쁨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여 저들도 예수 믿고 만족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형제가 되도록 우리는 예수를 전하여야 합니다.
다섯 남편, 현재의 여섯 번째의 남편까지 버리고 예수를 나의 참 신랑으로 맞이하고 사랑하고 섬길 때에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과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내 신랑 예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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