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
황 복 숙
감기 몸살로 일주일을 넘게 앓았다. 아직 열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기동을 할만 해 뜰에 나가보니 나뭇잎들이 반짝거리고 생기 차게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 본다. 햇빛이 눈부시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찔레나무 꽃, 해당화나무 꽃 이파리가 바람을 타고 있다.
매일 가던 건지산을 감기몸살을 앓느라 못 갔다. 건지산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을 넘게 앓고 난 뒤라 입맛이 없어 먹지 않아 기운은 없지만 그래도 이처럼 좋은 날씨에 누워 있기가 갑갑해 집을 나섰다. 오늘도 백제대로는 바쁘게 자동차가 달려가고 도로위 인도를 정원으로 가꾸어 놓은 꽃길의 꽃들은 빛났다.
전북대학교 병원을 거쳐 산 아래까지 갔다. 산길이 아카시아 꽃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감기 몸살로 앓고 있는 동안에도 계절은 꽃이 피었다가 지고 또 다른 꽃을 피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숨이 차고 땀이 나 쉼터에 앉았다. 가까운 곳에서 구성진 가락이 들려온다.
들어보니 산에 오를 적마다 들은 가락이다. 산의 정밀을 깨고 퍼지는 소리가 오늘은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흥이다. 고목에 박자를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에라 - 만 -수' 늘 듣던 노래다 한참을 서서 들었다. 그 노인은 옆에 누가 있는지 느끼지 못 하는듯 했다.
나무 등을 반주삼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 들으면서 산기슭으로 돌아갔다. 눈을 감고 허공을 향해 부르는 노래는 가 버린 시간을 잡으려는 열망일까, 소리 마디마디에 체념의 탄식처럼 들린다. 그 곡을 마치고 -'남인수의 낙화유수를 부른다. -'
"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의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나도 이 가요를 알기에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면서 걸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노랫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준다.
아카시아 꽃 비가 쏟아져 내린다. 잔잔한 바람에도 나부끼며 꽃이 지고 있다. 오랫동안 꽃비에 취해 바라보았다. 통째로 떨어지는 꽃은 빙그르르 돌면서 수직으로 떨어진다. 부서진 꽃잎은 바람에 맡긴 채 졌다. 올려다 보고 내려다보니 온통 풀밭이고 꽃잎밭이다.
떨어진 아카시아 꽃잎은 달개비 풀위에도 도토리나무 잎새 위에 앉으며 또 하나의 꽃으로, 꽃은 떨어져서도 아름다움으로 피어난다. "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속에 / 종달새 울어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봄으로 가자/" 가사를 외웠는지 능숙하게 부른다.
노인은 그 자리에 있고, 나는 주위를 돌며 산책을 하고 메아리도 없는 숲길은 적막이다. 꽃이 진 자리에는 씨가 떨어져 죽으면서 새로운 생명을 땅속에 남긴다. 그 씨가 새 봄이 되면 움이 돋고 싹을 틔워 잎이 커지면서 꽃을 피운다. 노인의 노래에도 꽃씨처럼 씨앗이 있을까, 그리고 나도 씨앗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씨앗일까,
감기 몸살을 앓고 나니 평소에 몰랐던 서러움도 찾아온다. 몸이 아프면 몸의 아픔 보다도 마음의 아픔이 더 크다. 살아 온 길을 돌아보기도 하고 후회를 하면서, 내가 과연 어디쯤에 있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남길 것은 뭣일까, 과연 남길 거라도 있기는 한가,
드라마는 재방송이 있지만, 인생이라는 방송은 재방송이 없다. 이제야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인생의 황혼에 그냥 살던대로 하던대로 하며 살다가 가면 될 것을, 그래도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는 욕망일까, 꿈이 컸던 여학교 시절에는 미래가 무척 궁금 했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변해 있을까, 멋진 사람이 되어 굵게 살고 짧은 생을 생각 하곤 했었다. 살아보니 그게 아니다. 아프지 않고 주름도지지 않고 꽃처럼 활짝 만개하는 찰나 동백꽃처럼 화려할 때 똑 떨어지는 그런 삶,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얼마의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몰두 하며 살아 보리라,
내가 나를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는 생명의 모든것들, 씨 없이 지는 꽃들보다 씨를 남겼으면 한다. 눈을 감고 노래 부르는 저 노인은 어떤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부를까, 나처럼 인생의 허무를 노래로 푸는 것일까,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산다.
부지런한 꿀벌이나 개미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의 삶이어서 회한이 있을까, 가끔은 죽지 않을 만큼 아파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아팠던 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아프고 일어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쭉 뻗었던 욕망의 날개를 접고 뒤를 돌아보면서 욕망을 털어내고 달라진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육신의 병은 아픔, 고통을 싸우고 이기며 정신의 길을 점검하게 한다. 아카시아 꽃 비는 무더기로 내려 앉고 나는 노인의 노래를 들으며 바쁘게 살았던 시간을 보상 받으려는 듯, 바쁜일이 없는 듯이 바람에 마음을 맡긴다. 슬픈 영화를 보고 실컷 울고난 사람처럼 마음이 가벼우니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