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아파하는 마음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1999년 튀르키예 이스탄불과 가까운 서부 해안 도시 이즈미르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최소 1만7000명이 숨졌다. 이스탄불은 과거 동로마 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었던 만큼 유럽인들에겐 남다른 의미를 지닌 도시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많은 서유럽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성금을 내고 구조를 지원했다.
한국은 당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로 빚을 갚지 못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많은 근로자들이 해고됐다. 그래서인지 한국 정부는 지진을 겪은 튀르키예에 재난 복구 지원금을 넉넉히 보내지 못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직접 성금 운동을 벌이며 지원에 힘을 보탰다.
지난달 튀르키예에서 1999년 때보다 훨씬 심각한 재난이 발생했다. 지난달 6일 2차례에 걸쳐 규모 7.8과 7.5의 지진이 발생해 튀르키예에서만 4만5000명 이상(1일 집계)이 사망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튀르키예의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바로 500만 달러(약 65억 원)의 지원금을 보내고 한국 구조팀을 현지에 급파했다.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만큼 한국 국민들도 빠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다양한 협회나 재단을 통해 모금 운동을 벌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튀르키예와 긴밀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는 대기업 홈페이지에 “튀르키예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만큼 이럴 때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튀르키예를 개그 소재로 삼아 활동하는 한 연예인에게도 지원에 더 적극 나서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물론 누리꾼들이 이렇게 직접 나서지 않아도 기업 등은 튀르키예 지원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튀르키예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형제의 나라’인 튀르키예와 한국의 인연은 2002년 월드컵 3, 4위전을 계기로 다시금 알려졌다. 점차 한국에서 튀르키예의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졌다. 방송인 백종원 씨가 ‘천상의 맛’이라고 극찬한 튀르키예 전통 디저트 ‘카이막’이나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로 가는 지역 중 하나인 카파도키아 등이 한국에서 제법 잘 알려져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역시 큰 피해를 본 시리아의 처지는 다른 것 같다.
시리아는 아직 한국과 수교를 맺고 있지 않다 보니 공식적인 교류가 없다. 또한 시리아는 그간 북한과 친밀감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국가 이미지도 생소한 편이다. 특히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시리아 북서부 아자즈와 이들리브주는 시리아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반군, 쿠르드군, 그리고 정부군이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공습을 당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 이미 숱한 공습으로 약해진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오른 탓에 국제사회도 적극 지원에 나서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지금도 반군이 점령해 공권력이 미치지 않다 보니 해외 구조대가 접근을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은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시리아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시리아와 시리아 내전 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한국인들은 시리아에도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국 정부는 시리아에 100만 달러(약 13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금을 보냈다. 시민 사회도 시리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한국의 모습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진다. 불과 20여 년 전엔 형제의 나라에도 경제 상황이 어려워 복구 지원금을 넉넉히 보내지 못했던 나라가 수교를 맺지 않은 시리아에 큰 금액을 지원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한국의 이러한 면모를 다른 나라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재난 앞에선 국경이 큰 의미가 없다. 재난으로 인한 슬픔은 국경을 초월해 위로하고 보듬어야 응당하다. “우리 힘으로 경제 성장을 해 왔으니 혼자서 잘살겠다”는 마인드는 세계시민의 자질과 맞지 않는다.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줄 것이라 믿는다.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