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Raimond Aumann
1982년부터 1994년 벨기에의 전설적인 골키퍼 장 마리 파프 이후 그리고 독일 최고 GK인 올리버 칸 이전 바이에른 뮌헨
부동의 넘버 1이였던 아우만. 콧수염이 인상적이였던 골키퍼로서는 비교적 작은 신장인 182cm였지만, 뛰어난 순발력과
안정적인 수비 리드로 1990년 월드컵 당시 일그너에 이어 독일 국가대표팀 넘버 2.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월드컵
기간동안 줄곧 벤치를 지켰음. 올리버 칸의 이적이후 터키 베식타스로 이적후 이른 나이인 32살에 은퇴.
현재 바이에른 뮌헨 팬 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음.
13. Karl-Heinz Riedle
뛰어난 헤딩력을 자랑했던 공격수. 클린스만과 함께 88 서울 올림픽에도 출전했고, 90년 월드컵 당시에는 제3의
공격 옵션으로 출전. 조별 예선에서 푈러나 클린스만의 교체 선수로 출전했으나, 체코와의 8강전에는 전경기에서 퇴장당한
푈러 대신 클린스만과 투톱으로 출격했음. 90년 월드컵 후 유로 92에서는 3골을 기록했고, 94년 월드컵때는 클린스만과 함께
주전으로 출전.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두번째 골을 기록함. 하지만 94월드컵 이후에는 대표팀에 중용되지 않았지만,
97년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EPL 리버풀과 풀햄에서 활약하다가 2001년 36살의 나이로 현역
은퇴. 2000년 한시적으로 풀햄에서 감독겸 선수로 활약했고, 2007년에는 스위스 리그 그라스호퍼스의 단장을 역임함.
현재 고향에서 4성급 호텔을 경영중이고, 가끔식 유소년 캠프를 개최함.
14. Thomas Berthold
1982년 18살의 나이로 프랑크푸르트 주전 수비수로 데뷔하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22살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음. 부흐발트와 마찬가지로 중앙 수비수는 물론, 윙백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수 있었던
멀티 플레이어.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는 네덜란드 에이스인 굴리트를 철저하게 마크함. 조별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전경기에
출전함. 1994년 월드컵때 역시 출전함으로서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지만, 1994년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에 콜되지 못함.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슈투트가르트에서 뛰었고, 2001년 터키 프로팀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
이후 2003년 부터 2005년까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의 메니저로 활약했고, 현재는 가끔 자선 경기에 출전하고 있음.
15. Uwe Bein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프랑크푸르트의 게임 메이커를 역임했던, 분데스리가 최고의 패싱력을 자랑했던 선수.
1989년 당시 29살의 늦은 나이에 베켄바우어 감독에게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30살의 나이에 사상 첫 월드컵을 경험하게 됨.
조별 예선전인 UAE전에서 한 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조별 예선 3경기와 체코와의 8강전에 출전하기도 함. 90년 월드컵 이후
베켄바우어의 후임인 포그츠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유로 92에 불참하게 되었고, 1993년에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
1994년부터 1997년까지 J리그 우라와에서 뛰었고, 1998년에는 현역 생활을 마감함. 2005년동안 잠시 오펜바흐의 감독직을
역임함.
16. Paul Steiner
1990년 월드컵 직전에 열렸던 덴마크와의 평가전에서 33살의 나이에 A 매치 데뷔적을 치뤘으나 그 경기가 슈타이너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1990년 월드컵 당시 베켄바우어 감독은 아우겐탈러의 백업으로 홀거 파흐를 뽑을
예정이였으나 쾰른 소속의 베테랑인 슈타이너를 대신 선발했다. 90년 월드컵 기간동안 줄곧 벤치를 지켰고, 1997년
40살의 나이에 현역 생활을 마감함. 이후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레버쿠젠에서 스카우트 겸 비디오 분석가로 활약했고,
현재는 자신의 친정팀인 쾰른에서 같은 직책을 수행중임.
17. Andreas Moller
90년 월드컵때 23살의 나이로 본선 스쿼드에 합류했던 미드필더. 당시에는 쟁쟁한 선배들에 가려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했지만, 유로 92때부터 98년 월드컵까지 헤슬러와 함께 독일의 플레이 메이커를 담당했던 선수. 체코의 로시츠키 이전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으며, 도르트문트와 샬케에서 뛴 경력도 있다. 유로 96때는 잉글랜드와의
4강전에서 마지막 페널티 킥을 성공 시켰지만, 아쉽게도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서 뛰지 못했다. 2004년 현역 은퇴이후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빅토리아 아샤펜부르그에서 감독직을 역임했고, 2008년부터 킥커스 오펜바흐의 메니저로 활동중.
18. Jurgen Klinsmann
마테우스, 브레메와 함께 90년 월드컵 우승의 주역. 1988년 서울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으로서 유로 88부터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활약, 1990년 월드컵때는 푈러와 함께 독일 포워드진을 이끔. 본선에서 총 3골을 기록했고, 이후 94년 월드컵때는
5골, 그리고 마지막 98년 월드컵때는 3골을 기록 월드컵에서만 총 11골을 기록. 또한 유로 대회 사상 최초로 3개 대회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함 (88, 92, 96). 94년 월드컵 이후 98년 월드컵까지 마테우스에게서 주장 완장을 넘겨받아서
독일팀의 주장으로도 활약. 센츄리 클럽에도 가입하고 독일 선수로서는 역대 4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 1998년 월드컵 이후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부인과 함께 부인의 고향인 미국으로 이주, 그곳에서 엘에이 갤럭시 마케팅 담당 부회장으로
잠시동안 행정가의 길을 걷는가 싶었지만, 유로 2004 이후 침체에 빠졌던 독일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감독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독일의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끌었고, 또한 공격적인 전술을 도입해서
안방에서 열렸던 2006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함. 월드컵 이후 자신의 수석코치였던 뢰브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2008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취임하지만 아쉽게도 성적부진으로 해임당함. 현재 무직이지만, 유럽 빅클럽의
감독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
19. Hans Pflugler
현역 생활을 바이에른에서만 뛴 바이에른맨. 왼쪽 윙배과 중앙 수비수 포지션을 수행할수 있었던 선수. 유로 88때 독일
스쿼드에 발탁되었고, 90년 월드컵 당시에는 조별 예선 경기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풀타임으로 출전. 현역 생활 이후
바이에른에서 영업 담당으로 고용된적이 있었고, 현재는 고향에서 펜션을 운영함.
20. Olaf Thon
1984년 말타와의 경기에서 18살의 나이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고, 1986년 월드컵때는 당시 가장 어린 선수로 독일 스쿼드에
발탁되었다. 유로 88때는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지만, 90년 월드컵 당시에는 주로 교체 선수로 경기에 투입되었다. 현역
생활을 샬케와 바이에른 2팀에서만 뛰었고, 90년 월드컵 이후 미드필더에서 스위퍼로 포지션 변경을 함. 하지만 부상 및
포그츠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서 유로 92, 94년 월드컵 그리고 유로 96에는 불참하게 된다. 98년 월드컵때는 잠머가 부상으로
낙마하자, 잠머 대신 조별 예선 경기에서 주전 리베로로 경기에 뛰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마테우스가 주전으로 중용됨. 2002년
샬케에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친정팀인 샬케에서 마케팅 담당 이사로 선임되었고 줄곧 샬케 구단 수뇌부로 일함. 2010년
4월에 VFB 휼스라는 지역팀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
21. Gunter Hermann
프랑크 밀, 파울 슈나이터와 함께 필드 플레이어로 90년 월드컵 본선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중앙 수비수도 소화할 수 있었던 선수. 선수 생활 대부분을 브레멘에서 활약. 96년 현역 생활 은퇴이후, 2001년부터 지금까지
오버 리가의 VSK의 감독직을 수행중.
22. Andreas Kopke
보도 일그너, 라이몬트 아우만에 이어 서드 키퍼로 90년 월드컵에 참가. 오랫동안 일그너의 백업으로 대표팀 넘버 2를
지키다가 94년 월드컵 이후 독일 대표팀 넘버 1자리를 차지하게 됨. 유로 96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1996년
유럽 베스트 키퍼로 선정되기도 하였음. 97년 프랑스 월드컵 이전 세계 올스타와 유럽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유럽 올스타
주전 골키퍼로 경기에 나섰고, 98년 월드컵에서 역시 독일 대표팀 골문을 지켰다. 2004년 오랫동안 독일의 골키퍼 코치로
활약했던 독일의 전설적인 키퍼 세프 마이어가 클린스만 감독과의 불화로 해임되자, 새로운 골키퍼 코치로 발탁됨.
이후 지금까지 대표팀의 골키퍼를 조련하고 있음.
첫댓글 98년 월드컵 멤버들 근황도 궁금합니다 ㅎㅎ
칼하인츠 리들레는 호텔 경영중이군요,,,,,,,,,,ㅋㅋㅋ
밴드오브브라더스의 마지막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네요.. ㅋㅋ
클린스만이 나름데로 대박이네요....비록 무산이 되었으나 미국감독으로도 제의가 들어왔지요 진짜 클린스만이 2001년부터 맡았으면 그때부터 독일이 달라졌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