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모토 성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망루까지 돌아보고 있자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일단 호텔로 돌아갑니다.
짐을 찾아서 제대로 체크인을 하고 방에 올라가보니 침대가 세미더블치고는 좀 좁아 보입니다.
그래도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 세미더블룸은 씻고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심하게 좁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 여기저기가 뻑적지근한 것이...;
어쨌든, 방에 여장을 푼 뒤 곧장 나가서 호텔 옆에 있는 중앙 아케이드로 들어갑니다.
다이에ダイエー에 가서 신라면 컵, 미니 오코노미야키, 비상식량용 팩 우유, 차 등의 간단한 식료품을 샀습니다. (740엔)
이번 여행에서는 다이에 덕을 많이 봤습니다, 우리나라 대형마트 같은 곳인데 옷이나 여타 잡화를 파는 다른 층들과는 달리 식품층(대개 지하 1층에 있습니다)은 10시까지 영업하고, 후쿠오카 텐진 다이에의 경우에는 10시 넘어서도 영업을 해서 편했습니다.
www.daiei.co.jp 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떠나시기 전에 가시는 곳의 다이에 위치&영업시간을 미리 확인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중소도시 어디로 가든 다이에의 새싹 간판이 제일 크게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시마바라에서도 어딜 가든 고개만 들면 다이에 새싹 간판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호텔로 다시 들어와서 한국에서 사 간 주먹밥과 다이에 식료품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교통센터로 갑니다.
야마가山鹿 라는 곳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곳인데, 실은 나가사키 란탄 페스티벌이 여행 일정하고 맞지 않게 되어 씩씩거리고 있다가 일본 큐슈 지방의 겨울 행사를 소개하는 페이지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행사 정식 명칭은 야마가등롱로망 백화백채山鹿灯篭浪漫・百華百彩 이고 2월 한 달 동안 매 주말(금~토) 밤에 열립니다.
http://yamaga100.com/ 공식사이트입니다, 다음 주 한 번 더 남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한 번 보세요.
쿠마모토 교통센터에서 야마가 교통센터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두 번 꼴로 있습니다.
http://www.kyusanko.co.jp/terminal/index.html 쿠마모토 교통센터 홈페이지입니다, 시간표도 다 있습니다.
야마가 행 버스는 2번 탑승구에서 승차하며, 저희는 17:31 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는 고속이 아니라, 이를테면 시도 간 완행버스랄까, 그런 느낌이어서, 승객도 별로 없는 휑뎅그렁한 버스에 몸을 싣고 밑도 끝도 없이 한 시간을 넘게 달려갑니다.
야마가는 위치 상으로는 후쿠오카와 쿠마모토의 중간 지점에서 본토 쪽으로 약간 옆, 쿠루메久留米 중심으로 4시 방향? 쯤에 위치한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고보니 다자이후텐만구 가시려다가 후츠카이치二日市 역에서 환승 안 하시고 끝까지 밑으로 가시면 거의 야마가 근처까지 가시는 셈이 되는군요^^;)
아, 그렇지, 교통센터에서 자동발매기를 이용하여 당일 왕복권을 사시면 야마가까지 갔다왔다 1인 1450엔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원래 편도 870엔)
거의 7시가 다 되어서 야마가 교통센터에 내렸습니다, 종점입니다. (잠시 멍 때리며 앉아있자니 기사 아저씨가 "종점입니다" 라고 이야기해 주시는군요.)
......교통센터인데도 황량합니다, 사람 그림자라고는 안 보이고 창구도 다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등롱축제에 대한 안내판도 하나도 없어서 갑자기 막막해지기 시작합니다.
건물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도 문 닫고 집에 갔습니다, 불철주야 생업에 매진하는 한국사람 보기에는 속 터집니다.
버스센터 건물 안 고속버스 사무소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자기들은 버스회사 직원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하는 행사를 버스회사 직원이 전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무턱대고, 시청 전화번호 가르쳐 드릴까요? 만 반복하는 여직원을 뒤로 하고 일단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진을 좀 크게 올려 봤습니다, 버스센터 건물 안에 있던 안내 단말기 화면을 찍은 것입니다.
왼쪽 상단에 보면 GS (gas station입니다, 우리나라 GS25 편의점이 아닙니다) 건너편에 버스센터가 있습니다.
버스센터 건물 밖으로 나와서 GS를 등지고 전진합니다, 축제고 뭐고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닌 언덕배기 오르막길이 나옵니다.
흔들림 없이 그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행사장으로 꾸며놓은 길이 하나, 오른쪽으로 쭈욱 펼쳐집니다.
그런데 왠지 썰렁합니다, 너무 썰렁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봤던, 우산이 가득 장식되어 있는 그런 길이 아닙니다. (야마가는 우산이 특산품이라고 하는군요.)
가게 앞 어느 여자 분에게 물어봤습니다, 今日は雨で駄目ですか? そうですね、申し訳ありません、普段はこの道が傘でいっぱいだったんですけど・・・ (오늘은 비 때문에 안 되나요? 그렇네요, 미안합니다, 보통은 이 길에 우산이 꽉 차 있는데 말이죠...)
이날은 비는 그렇다치고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기 때문에 행사가 중지가 된 것입니다OTL
사진이 취미여서 나름 기대하고 온 친구도 급실망, 예쁜 거 무지 좋아하는 저도 급실망, 가는 날이 장날ㅠ_ㅠ
그래도 그냥 오면 너무 섭하니까 몇 군데 장식을 해둔 곳들을 골라서 인증샷 찍고 왔습니다.
사진은 이쁘게 잘 찍혔으나, 당일 거리풍경은 정말 썰렁했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있었는데 역시 실망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더군요. (그래도 우리 같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외국인 관광객만 할까ㅜㅜ;)
야마가 등롱축제는 하절기에도 한 번 더 있습니다, 여름에 여행하시는 분들은 그때를 노려보셔도 좋을 듯.
아래는 야치요자八千代座 라고, 지도 속 사진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는 극장입니다.
이 앞에는 그나마 사람들이 좀 있더군요, 곧 공연이 있어서 이거라도 구경해야겠다 하는 듯,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 등롱을 머리에 쓴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그런 공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7:30 까지 입장시켜놓고 공연은 8:30 에 시작한다고 해서 관람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쿠마모토 행 버스 막차가 9:45 인데 공연이 70분이라고 하는군요-_-
아쉬움만 가득 남긴 채 야마가 버스센터로 돌아와서 20:15 버스를 탔습니다.
겨우 첫날인데도 벌써부터 산간 오지만 골라다니는 듯한 느낌이 팍팍 나는 버스노선입니다.
타고 내리는 사람도 드물고, 시내버스 꼴을 하고 있는데 정차하는 곳도 적고, 배차 간격도 넓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무사히 쿠마모토 교통센터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으로는 쿠마모토 노면전차 역 울산마치蔚山町 탐방입니다.
이름에서 눈치 채셨겠지만 울산마치는 쿠마모토 성 축조 때 끌려온 울산 지역 조선사람들의 거주지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노면전차 역의 이름으로만 남았습니다만, 발음도 우리말 그대로입니다.
히라가나로 うるさんまち라고 치고 스페이스 바 누르면 위의 한자로 자동변환되고, 현지 사람들도 '우르산마치' 라고 합니다.
나가사키는 노면전차가 100엔인데 쿠마모토는 150엔입니다.
두 사람이 움직이니 300엔, 거의 4500원 돈이지만, 역사 탐방에 의의를 두고 노면전차를 탔습니다.
예닐곱 정거장, 제법 갑니다, 쿠마모토 성 바로 밑이겠거니, 도보 가능하겠거니 했는데 제법 멉니다.
실제로 내려보니 어둑어둑하고 평범한 주택가입니다, '울산마치' 라고 쓰여 있는 노면전차 역 간판만이 유일한 증표입니다.
추워서 피곤하다고 투덜대기 시작하는 친구 눈치를 슬슬 보며 사진 한 장 찍어줍니다. (본인 얼굴이 정면으로 찍힌 것 딱 한 장 뿐이어서 올리지는 못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걸어서 돌아가느니 어쩌느니 하며 한 번 실랑이도 해 주고-0- 전차는 또 왜 이렇게 안 오는지, 제법 10여 분 기다렸다 탄 것이 하필이면 우리가 내려야 할 '쿠마모토 성 앞' 전차역 바로 앞이 종점인 전차였습니다OTL
게다가, 잔돈이 500엔+50엔이 있어서 300엔을 어떻게 내야할지 순간 당황했습니다.
500엔과 50엔을 내밀었더니 기사 아저씨, 요금통 안에 돈이 없다는 소리만 계속합니다.
마침 우리 이외에 마지막 한 명 남은 남자 승객이 200엔을 내길래 일단 제 돈 50엔을 기사 아저씨가 그 남자에게 줍니다.
그리고 그 200엔을 저에게 건네길래 저는 얼떨결에 500엔을 요금통에 넣습니다.
......엇? 내 돈 50엔?
계산이 안 맞는데요, 어쩌고저쩌고 해 봤지만, 역시나, 요금통 안에는 돈이 없다는 소리만.
속으로 '그럼 내려서 돈 바꿔 와야죠' 라고 짜증을 내고 있었으나, 거기서 꼴 사나운 짓 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일단 내립니다.
......일본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 요금통 안에 정확한 금액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OTL
잔돈이 필요할 경우에도 자기가 직접 요금통과 같이 붙어있는 잔돈 바꾸는 기계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네요;;;
그럼 50엔을 준비 안한 그 남자승객은?
그 사람이 책임져야 할 50엔을 왜 내가 손해본 거냥? -,.-;;;
웅, 그냥, 그 사람의 200엔이 아니었으면 50엔이 아니라 200엔 손해볼 뻔 했으니 150엔을 보전한 셈 치기로 했습니다=,.=;;;
이러구러 첫날 일정이 끝나갑니다.
이번 여행 동안에는 마실 물도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에, 호텔 들어가면 항상 먼저 물을 끓입니다. (아시다시피 수도물을 그냥 받아서 씁니다, 아무래도 그냥 먹는 건 좀 그래서...)
끓으면 코드를 뽑아두고 다음 날 아침에 적절하게 식은 물을, 오늘 다이에에서 산 소켄비챠 다 마신 빈병에 담습니다.
이게 이번 여행 일과이기도 했네요, 완전 빈곤 여행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날 묵은 호텔에서 이용한 숙박 플랜이 무슨 발렌타인 플랜이라나 뭐라나, 사탕 형태의 초콜릿 2개 들이 미니 두 봉지와 목욕용품 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서비스 정신 투철한 일본인들답게 초콜릿 안의 작은 메모도 직원들이 친필로 써 주고, 목욕용품 세트도 귀엽고 이뻐서 기분 좋았습니다만, 이왕 그럴 거면 이거 빼고 숙박비를 깎아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살짝 했습니다.
(이어집니다.)
첫댓글 디테일하고 상세하고 친절한 여행기네요^^ .
아 그리고 정말 그당시 후쿠오카 바람이 유난히 세었죠.그때 바람 잊지 못합니다.^^
지기님, 여러모로 친절하게 인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토토로님 말씀대로 디테일하고 상세하고 친절한 여행기..^^ 첫번째 글쓰시는데 1시간 반이 걸릴만해요~~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이는..^^ 앞으로 남은 일정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
네, 남은 일정들도 열심히 올려 보겠습니다. (그런데 개강이 다가오니 정리할 것, 치워야할 것들이 갑자기 눈에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요즈음입니다;)
하하 야마가 다녀오셨군요...제가 사는 미야마시보다는 그래도 좀 큰도시인데요..시골치고는 ㅎㅎ야마가는 온천이 유명합니다. 특히 세타카쪽으로 오다보면 히라야마온천이 끝내줍니다.사라사라~~~
와, 미야마에 사시는군요, 큐슈 이쪽 지역은 일본인들에게도 깡촌(^^; 표현이, 죄송합니다) 이미지라는데 시골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일 관련이실까요?) 미야마는 저도 지도에서 처음 확인했습니다, 시 이름이 한자가 아니네요.
구마모토여행을 하시는군요..반갑습니다. 저는 구마모토에 산 지 4년째입니다. 좋은 여행되시길.....
아, 일본 곳곳에 한국 분들이 많이 사시는군요, 여행이 끝나도 여행기를 통해 또다른 경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쿠마모토는 성 이외에는 여행 스팟이 많지 않은 듯 합니다만, 깔끔한 인상을 받고 왔습니다. 인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 ~^^
네, 다닥다닥 붙어있는 텍스트가 대부분이어서 읽기 버거우실 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