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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대신 평화를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평화의 공원을 만듭시다 [송강호 옥중인터뷰]
평화활동가로서 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매우 상반되게 불리던데요. 같이 활동하는 SOS 평화활동가들은 나를 물귀신이라고 부릅니다. ㅎㅎ 주민들은 그냥 편하게 송박사 송박사라고 부르지요.
전도사님이시던데 강정 마을에서의 본인의 활동을 어떻게 규정하세요. 강정에 기도하러 왔어요. 불의 앞에 정의가 짓밟히고 폭력 앞에 평화가 압살당한 강정 마을에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도록 기도드리는 일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강정에서의 활동도 쭉 그래왔습니다.
▲죽음을 넘어선 활동가이자 전도사이고 신학 박사인 송강호, 강정 주민의 상처를 막아내는 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말한다 . ©고길천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유독 강하던데요. 난 수락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자연에 대한 한없는 매력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구럼비는 어렸을때 나의 기억을 되살려 냅니다. 강정 마을처럼 이렇도록 아름다운 자연을 무대로 뛰어놀고 살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많지요.
송박사님은 국제적인 평화활동에 집중했었는데 왜 강정마을로 오게 되었는지요. 개척자(Frontier)들에서의 활동입니다. 개척자들은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의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비참함과 폭력의 죄악성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유산인 구럼비 바위 일대를 파괴시켜 전쟁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미친짓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그 이후 국제적인 평화활동을 해왔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강정마을의 평화 활동을 하게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을텐데요. 독일 유학 후 국제적인 활동을 해왔었는데 2011년 1월 제주도에 계시는 목사님들이 평화와 관련된 신학 강연을 요청해왔습니다. 그 일로 제주도에 내려온 길에 강정에 왔는데 양윤모 감독과 함께 구럼비 바위에 있던 중덕사라는 천막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을의 김종환 형님이 개척자들의 방문객들을 둘러보기 위해 중덕사에 들러 막걸리를 드시며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싸워온 힘을 잃고 투쟁의 의지가 사라지고 있는 강정 마을 주민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한숨 소리와 한탄했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여 강정 마을에서 기도를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과 모든 사람을 존중해온 송강호 박사님이 해군, 경찰 등 국가와 삼성,대림 등 업체의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왔고 얼마전에는 구속까지 되어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합니다. 구속되었던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올 3월 6일부터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기 시작했는데 주민들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한채 포크레인과 천공기로 구럼비 바위를 쪼개고 부셔뜨리는 사업단에게 제발 공사를 중단해 달라고 기도하고 소리쳤습니다. 구속되었던 4월 1일 당일은 철조망을 넘어 구럼비가 부서지는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찰들은 기다렸다는듯이 나를 잡아 팔을 뒤로 비틀고 내 몸을 들어 차로 옮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차의 밑바닥에 귀와 목이 밟혀져서 짓뭉개졌고 이가 부서졌으며 턱 밑이 찢어졌습니다. 그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만우절이자 쉰다섯번째 제 생일이었습니다. ▲지킴이들에게 물귀신이라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는 강정 바다와 구럼비 바위에서는 경찰, 해군들에게 평화의 물귀신이 되었다. ©송동효
송강호 박사님이 보는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요.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중국 포위망 만들기에 끌려들어가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미 해군 항공모함의 입항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 밝혀졌습니다. 43과 625처럼 결국 강대국들의 싸움으로 식민지가 되고 분단이 되었던 한국의 아픈 민족사를 또 다시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다 강대국에 빌붙어 권력과 부를 누렸던 사람들에 의한 민족의 수난이었듯이 강정의 해군기지도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해군기지 사업이 중단되는것이 큰 과제이겠지만 강정마을이 어떻게 변화되었으면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반드시 중단되어야합니다. 온 국민이 함께 막아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강정 마을에 생명 평화의 공원을 세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계에 전쟁 대신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고, 배우고, 가르치는 세계 평화의 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온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강정 마을을 찾아와 함께 투쟁해주길 바랍니다. 몇해가 아니라 수십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함께해주셔야 합니다.
강정에서 활동할때도 그렇고 교도소에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계시는데 교도소에서 보내는 옥중일기를 잘 보고 있습니다. 곧 나올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르완다에서 강정까지 송강호의 평화 이야기> 집필과 법정 대응에 집중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도소에서의 생활은 어떠신지요. 하루 세 번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게 해달라고, 강정마을에 화해와 평화가 오게 해달라고 살아 있는 신성한 구럼비 바위와 그 곁에 기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지켜달라고 그리고 우리나라가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송박사님이 너무나 사랑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에게 항상 강정의 희망과 용기를 주고 계시는데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무엇보다 먼저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게 된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제주도를 걸으면서 강저을 지켜달라고 호소하시는 주민들의 땀흘리는 모습과 평화지킴이 여러분들이 정문을 지키고 바지선의 크레인을 오르며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여러분들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국익과 안보라는 미명하에 지금 강정 주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지만 그 다음은 우리들 자신임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억울한 희생을 막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들이 겪을 억울한 희생을 막아줄 동료는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억울한 강정 주민들을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아름다운 구럼비를 꼭 지켜주십시오.
▲힘든 활동을 주도하면서도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 강정의 힘이라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는 강정의 희망이다. ©송동효
구럼비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모두 함께 꼭 지켜주세요.
[김복철 옥중 인터뷰]
생김새도 범상치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별칭도 게릴라던데요. 체 게바라의 삶과 가치에 빠져서 가장 존경하게 되었고 그의 남미에서의 산악 게릴라 활동을 흠모해서 게릴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서 많은 후배들이 게릴라의 활동과 인간성을 좋아하던데요. 코레일 직원이자 철도노조 조합원으로 현재는 서울의 소리 기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정에서는 지난해 몸이 좋지 않아 휴가차 제주도로 내려왔다가 철도노조 해고자 신분으로 8월부터 연말까지 강정마을에서 경찰과 업체를 상대로 1인 시위 및 여러 가지 투쟁을 했었고 올 3월 구럼비 발파 이후 서울의 소리 기자로서 불법화약운송 관련 취재 및 지킴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도 강정에서의 활동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조직적으로 계획된 투쟁 활성화에 미약하지만 머리는 아니지만 몸으로나마 일조했다고 할까요. 몸으로 (웃음)
김복철씨는 해병대 출신이자 철도청 노동조합 출신이었던 만큼 강경한 이미지로 인식되는데 강정에서 게릴라만의 평화 활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전의 활동이 많은 영향을 끼친것 같습니다. 2006년 철도노조 충북 제천 전기 쟁의대책위원장과 미조직비정규직 조직국장, 정책국장, 정보통신국장으로 노조 활동을 하다가 2010년 1월 해고되었다가 이듬해 6월에 복직되었습니다. 그 중간에는 해병대를 제대한 해병예비역들과 2008년 촛불 정국때 국민의 희망 해병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습니다. 용산참사 집회 및 이대통령 퇴진 활동에 힘을 보탰었고 2009년도에는 서울페스티벌 무대를 점거하고 고 박종태열사 추모집회에 참석했다가 연행되었고 촛불 관련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었습니다. 보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전문 시위꾼으로서 자격증을 취득해도 될만큼 활동을 한것 같습니다. (웃음)
▲해병대 539기 김복철, 한번도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적이 없는 해병대(해군)가 강정에 들어오는것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서울의소리
강정에 내려오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있었나요. 12기 민주노총 통일선봉대에 참여하면서 강정 해군기지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폐가 좋지 않아 의사 소견으로 담배도 끊고 휴양을 하면 좋겠다고 해서 제주에 내려왔다가 강정마을 현황과 강동균 회장님의 연행 동영상을 보고 몸으로 할 수 있는게 많을것 같아 강정마을로 왔고 구럼비 바위에 푹 빠져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연행되었을때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구속되었을때의 상황이 어땠는지요. 강정마을에 와서 총 6번 연행되었습니다. 영장 청구를 3번이나 당했는데 2번은 모두 기각되었고 6월 14일 사건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날은 평화 활동가가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가 있었던 날이라 저는 주로 취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서귀포경찰서 구슬환 경비과장에게 활동가를 설득해달라는 요청에 몇차례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의 활동과 차량을 덤프트럭 앞에 세워둔것이 표적이 되어서 54기동대에게 기습적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경찰로서도 개인적으로도 너무 비겁하고 어이없는 행동입니다.
강정 해군기지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고 강정마을이 장차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동의 절차가 없이 진행되다보니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과정이 꼼수로 진행될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현재 공사를 중단하는 것밖에는 강정해군기지 사업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는겁니다. 그리고 일부 깨져있는것은 자연이 자연스럽게 복구를 해주니까 아름다운 구럼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강정마을이 세계적인 평화마을로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김복철 기자는 구럼비 바위에서 항상 강정지킴이들과 새로운 방법으로 해군기지를 막아내는것을 고민해왔다. ©이우기
성격상 답답할수도 있고 한 여름의 제주교도소 수감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을텐데 교도소에서 주로 무얼 하는지요. 까맣던 얼굴도 하얗게 변하고 재미난 일도 많았다던데요. 몸이 좋지 않아서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폐가 안좋았는데 담배도 끊고 운동도 열심히 하니 까맣던 얼굴도 하애지고 혈색도 많이 좋아졌다고 다들 그러네요. 책도 정말 많이 읽고 있습니다. 교도소 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있는 중이죠. 주민들과 활동가들에게 죄송하지만 잘 쉬고 있어서 매우 좋습니다. 오세요. 제주교도소 평화의 성지로... 하루는 계란이 먹고 싶어 어렵사리 방법을 찾아 뜨거운 물에 삶아 먹다가 독방에 10일간 갇히기도 했답니다. ㅎ
▲강정 평화운동에는 항상 열정적이면서 강력한 활동으로 앞장서지만 후배들에게는 큰형같은 존재인 김복철 기자 ©장하나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구럼비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모두 함께 꼭 지켜주세요.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가치와 평화를 지키는 것 [김동원 옥중인터뷰]
몇몇 사람들이 강정의 착한 순례자라고 부르던데요. 어릴때부터 주로 불리는 별칭은 이름따라 ‘참치’가 있습니다. 강정에서 또 다른 별칭이 생겼는데 ‘순례자 김동원’이고 제가 바라는 정체성을 담고 있습니다. 두가지 별칭으로 주로 불려집니다.
동원씨는 수수하게 생겼고 활동이나 말투도 부드러운데 어렸을때는 어땠는지요. 수목이 우거진 산골의 소년으로 자랐고, 사람이라고는 가족 뿐이었던 산골에서 자연의 모든 것들이 제 친구였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과 함께 아파하고 나누는 모습이 전직 사회복지사로서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요. 소신 강하고 능력있는 사회복지사는 아니었지만 대학때부터 고민해왔고 2년 동안 청소년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공부와 현장 근무를 통해 배워왔는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인위적인 변화보다는 사람과 사회가 지닌 본래의 힘(소통,나눔,회복력 등)을 믿으며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에 주목하게 되었고 기존 공동체들을 살리거나 새로운 공동체들을 만드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강정마을 공동체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순례자라서 강정 구럼비 바위에서 마을주민의 상처를 어루만져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왔다. ©한겨레21
강정 마을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어 이렇게 마음을 다해 활동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해군기지 공사 시작 즈음인 4월 초에 우연한 소개로 순례길에서 강정마을의 아픔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정 마을에서 만난 모든 장면들이 낮설었습니다. 바다를 안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구럼비를 쓰다듬어 보았고,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바퀴달린 공사장비 앞에 자신의 몸을 눕히는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만났고, 그러한 주민들을 잡아가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2개월 가까이 순례자의 신분으로 강정마을을 도우며 지내다가 집에 돌아가 새로운 짐을 싸고 다시 강정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 때문에 온 걸음, 포기하지 않고 구럼비와 마을을 지키기 위해 흘리는 희망의 눈물을 믿고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지난해 중덕해안가를 가로막는 펜스를 막다가 구속된 이후 해상 크레인에 올라 구속되었는데 그때 상황이 어땠나요. 강정 앞바다 준설 작업을 하는 바지선 위에 오른 6월30일은 제 인생 두 번째 구속일입니다. 해군기지공사로부터 바다 피해를 최소화해주는 생명줄인 오탁수 방지막은 그날도 여전히 이어져있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천연기념물 연산호를 비롯하여 온갖 생명들을 품고 있고 파도는 마을과 어우러져 출렁이고 있는데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바다 밑을 파헤치고 있었지요. 사실 위험하게 크레인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불법공사를 잠시 중단시킬 수는 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더 중요한 메시지가 마음에 있었습니다. 공사하시는 분들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이 무너지는 것을 중단시키고 싶었습니다. 법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욱 두려운것은 양심과 도덕이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이 무너지기 위해서는 먼저 양심과 도덕이 무너져야 하니까요. 저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해야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해군기지사업은 여러 가지로 심각한 사회 문제와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데 순례자 김동원에게 해군기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누구든지 개인의 양심과 도덕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옆 사람이 아파할 때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옆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정확히 보여주는 곳이 강정마을입니다.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마을을 빼앗고, 주민들을 서로 적이 되게 만들었지요. 생명이 고통을 느끼고 죽어가는 사실을 알면서도 땅과 바다를 파헤칩니다. 그리고 군사기지 건설로 인해 국가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알면서도 사업을 강행합니다.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사회,국가가 본래 지니고 있는 양심과 도덕을 먼저 지키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순례자 김동원은 강정의 평화를 깨트리는 사람들 모두 본인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송동효
강정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전쟁중입니다. 지금 당장은 해군기지사업의 중단이 최우선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는 강정마을의 미래를 그려본다면요. 강정 평화운동이 단순히 자신들의 땅과 집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도 땅과 집 그리고 구럼비 바위 등을 지켜나갈 수 있겠지만 분명 언젠가는 그 의지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지금의 강정마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가치’와 평화의 ‘가치‘ 그리고 양심과 도덕을 지켜나가려는 의지에 신념을 더하여 사람과 공동체의 성숙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지만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고 있음은 우리와 반대편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강정마을이 400여년동안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지키고 누리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왔듯이 어둠 가득한 세상에 빛과 희망이 되는 생명·평화의 가치 그리고 양심과 도덕을 지키고 누리며 다시금 더불어 행복한 마을로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옥중 순례기를 통해서 강정마을과 활동가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교도소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지요. 물이 고이면 썩을까 두려워 옥중 순례기라는 글을 씁니다. 제가 교도소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로 생명평화의 가치를 말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갖고 이곳 사람들을 만납니다. 소란스러운 낮에는 책을 읽고 고요한 밤이 되면 뜬 눈으로 편지를 쓰며 차가운 새벽이 되면 졸린 눈으로 기도를 합니다.
▲순례자 김동원은 경찰,해군,건설업체의 양심에 호소하고 싶다며 강정 바다를 가로질러 바지선 크레인에 올라 구속되었다 ©강정마을회
사람과 소통하고 나누고 마음을 이어가는 순례자로서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강정에 오기 전 늦은 나이여서 군대를 가야 했는데 군 입대 5일 전에 입영 연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감옥에 올 용기는 있었어도 강정 마을을 뒤로한채 돌아설 용기는 없었지요. 더군다나 이 나라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보다 사람과 공동체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우선했습니다. 그래서 강정마을에서의 저의 활동은 국방의 의무 대신 평화 복무를 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총을 들지 않고 제가 지닌 평화로써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전쟁과 갈등 그리고 고통과 차별받는 사람이 없도록 저마다의 생명평화의 가치와 각자의 재능으로서 언제 어느 곳에서든 평화 복무를 해주세요. 이 땅의 평화는 총을 든 사람들만이 지키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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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는 국내외의 정세와 미래의 비젼 없이 권력과 자본의 사적 목적을 추구하는 지도자와 위정자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명분이 없이 시작되었다.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한 준비가 없다보니 마을 주민 뿐만이 아니라 국민적 갈등을 낳게 되었고 강정마을 현장에서는 수많은 불법, 편법, 탈법의 국가적인 폭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마을 주민, 평화 활동가, 성직자,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시민 그리고 세계에서 함께 마음을 모아준 사람들에게 자행하는 이러한 국가의 야만적인 정신적 물리적 폭력은 가히 살인적이다. 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은 강정마을과 국내외 곳곳에서 절을 하고, 미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고, 촛불을 들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전국을 걸으면서 해군기지사업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해군기지사업 속도가 빨라질 계획이다. 끌려가고 구속될지 모르는데도 평화를 위해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너무나 환하게 웃는다. ©조성봉>
현재 구속된 5명의 강정 평화지킴이들은 말한다. 본인들이 생명평화의 상징이 되는 제주교도소에서 평화의 수감자가 된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누군가 계속 이 길을 이어서 걸어간다면 생명평화의 큰 길은 제주에서 세계로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에서는 경찰과 용역들에게 모멸감을 받고 질질 끌려가고 상처를 받는 평화 지킴이들과 주민들은 이러한 묵묵한 생명평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것에 오늘도 활짝 웃는다.
▲강정 평화활동은 오늘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묵묵히 걸으며 국민과 소통하려는 생명평화대행진 ⓒ생명평화대행진 준비위원회
첫댓글 게릴라님
동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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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매일매일 짓밟히는 우리 강정님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김복철아저씨 아직도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