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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에 해로운 담배를사서 나에게 주려고 프랫홈을 뛰었다
이제 긴 이야기도 지루해 질 때가 돼 가고있습니다. 듣기좋은 꽃노래도 2절 까지만 부르라고......에휴 ~~ 그러나 이번 이야기 만큼은 그당시 여행에서 저에게는 가장 추억에 남는 여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면서 고생하여 헬싱키 대학 방사선 화학 연구소에서 정기적인 방사선 피폭 검사를 위하여 몸무게를 쟀다가 몸무게가 키 173.5 cm에 42 Kg 나오자 놀래서 병원에 입원시켰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침, 덴마크 세관에서 빵과 커피와 씨리얼까지 얻어먹고 아침해가 뜬뒤에 함부르크행 기차를타고 독일로 되돌아 왔다. 수중에는 덴마크 국경에서 함부르크까지 기차표를 끊어서 15 마르크 남았다 그래도 전날 저녁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까지 그리고 숙박비까지 덴마크 국경 세관에서 제공해 주었으니 비록 커다란 사냥개로 온몸을 냄새맡게 했지만 그 원한이 다소 누구러졌다 함부르크 까지는 잠간이었다 함부르크 반호프에 내리니 한낮이었다. 오전 10시가 넘었다. 여행 안내소에 가서 한국 영사관 위치와 가는 교통편을 꼼꼼하게 물어서 적은뒤에 그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밖으로 나오다가 문득 여러날 담배를 피우지 못했던 생각이 나면서 담배 한모금 쭈욱 빨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인간이란 간사해서 먹고 사는 것이 당장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런 것이다. 역 앞에 담배와 커피를 파는 조그만 까페가 눈에 띠어 그리고 들어갔다. 조그만 까페에는 여행객들이 빼곡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말보로 담배를 한곽사려고 했더니 담배가 한곽에 2마르크 정도었다 드럽게 비싸서 중얼 중얼 했더니 까페 주인인 듯한 나이가 든 베레모를 쓴 아저씨가 뭐냐고 눈을 크게뜨고 큰 소리로 뭐라고 한다 나는 전에 프랑스에서 콜라 한잔이 비싸다고 뭐라고 하다가 망신당한 경험으로 짧은 독일어로 " 나인 .. 나인 .. " 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그때 커피를 마시던 한 동양 아가씨가 내 옆에와서 눈을 크게 뜨고는 중간에 끼어서 까페 주인에게 뭐라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고마웠다. 자연스럽게 그 아가씨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앞자리에 앉았다 그 아가씨은 나를 보더니 한국말로 대뜸 " 여기서 한국 대학생을 만나다니 반가워요 " 했다. " 어떻게 아세요 ? " " 가슴에 단 Y대 뺏지를 보고 알았지요 " 에쿠 그렇구나 아직도 내가 뺏지를 달고 있었구나.. 그러나 나는 뺏지를 뗄 생각이 없었다. 아름 아름 그런대로 여행에 도움이 되는 악세사리였던 것이다. " 커피 한잔 하세요 " " 전 커피를 달게 먹거든요 아가씨같이 그런 쓴 커피는 못마셔요 " " 크크크크 솔직하시네요 " " 촌놈이지요 뭐 ... " " Y 대생이 촌놈이라니요 ? " " 태생이 촌놈인걸요... " " 저도 태생이 촌년이예요 크크 " 그녀는 재빠르게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한잔 사 가지고 온다. 커피 위에 하얀 거품이 얹혀있고 보기에도 맛았어 보이는 커피였다 지금 알고 보니 카푸치노 뭐 그런것 아니었던가 싶다 " 여기서 공부하시는 학생이세요 ? " " 학생이라면 학생이랄까 간호사로 취업차 왔는데 지금은 어학 트레이닝 중이예요 그리고 병원에서 수습 간호사로 일도 하구요 " " 온지는 얼마나 됐어요 ? " " 온지 이제 3개월 됐어요, 독일어를 전혀 못해요 " " 아까는 말 잘하던데요 " " 그거요 그냥 주워 들은 외마디 소리예요 " 그녀는 오늘은 쉬는날인데 룸 메이트가 남자친구 만나러 뮤니히에 가는 바람에 역에 배웅나왔다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고 하였다 " 아가씨는 남자친구 없어요 ? " " 남자친구는 커녕 여자친구도 없어요 " 역앞의 까페 노천 어닝( 텐트 채양) 밑 자리에는 함부르크의 상쾌한 해풍이 불어왔다 그녀의 긴 머리가 바람에 나부꼈다. 동그란 얼굴에 큰 눈과 뾰죽한 턱과 전체적으로 귀여워 보이는 그녀는 나이가 51 년생 23살이라고 하였다 눈동자는 웬지 모르는 어두운 우수차 있고 말을 하면서 다른생각을 하는듯이 집중하지 못하고 초점이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을 하였다 헬싱키 대학 방사선화학 연구실에 교환 학생으로 가는 도중 돈이 떨어져 망신 당한 얘기 하며 덴마크 국경에서 추방되어 스칸디나비아 트랜짓 비자를 받으러 다시 함부르크로 되돌아 온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그아가씨는 우리나라의 외환관리 정책을 비난하면서 나에게 웃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융통성이 없기로 암딸러상에서 최소한 500달러 이상은 바꾸어서 유럽을 와야지 달랑 100불을 들고 어떻게 왔느냐는 것이었다 독일 왔더니 다 무똑뚝하고 유모어도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일부 나치 시대의 게르만주의에 물든 구세대들 중에 아까 까페 주인같은 꼰데들도 있다고 하였다 독일 온지 3개월 된 아가씨 치고는 제법 치밀하게 독일을 느낀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한국말을 마음대로 주고 받는 젊은 또래 아가씨와 이렇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행복했다 순간 이지만 행복했다. 나는 빨리 한국영사관에 가서 트랜짓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그 아가씨는 자기도 영사관에 볼일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하였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영사관에 도착했다 많은 한국 교포들이 영사관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부영사가 순번을 정해주고 업무별로 분류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헹싱키 대학 초청장과, 우리학교 총장의 여행편의 제공 요청서와, 국제 교환학생 인증서를 제출하고 서류를 작성하여 부영사에게 냈더니 비자 업무는 오후 3시쯤 오라고 했다. 시간이 벌서 12시가 다됐다. 그녀는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했다. 나는 그 무거운 트렁크를 영사관에 맡기고 스케치북과 4B 연필만 들고 그녀와 나섰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동물원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공원의 포장마차같은 노점에서 커다란 빵 사이에 커다란 소시지를 끼우고 노란 겨자소스를 듬뿍 친 것을 두개 사서 나에게 한개 주고는 옆의 벤치에 앉았다. 그래도 아무리 거지라도 남잔데 그냥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커피 마시겠느냐고 했더니 맥주를 사 달란다 나는 내가 마실 콜라 한병과 그녀가 마실 맥주를 한병샀다 거금 3 마르크가 사라졌다. 남은 돈은 아까 담배사고 지금 콜라와 맥주사고 10 마르크 남았다 쪼잔 스럽게 주머니 돈만 계산하는 자신이 역겨웠지만 그래도 자연히 그렇게 된다 둘은 숲이 우거진 벤치에 앉아서 소시지 들든 빵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였다 독일 소시지는 맛이 있었다 독일 소시지에 비하면 당시 한국 소시지는 밀가루떡에 불과했다 그녀는 경북 시골 C 시에서 간호 전문학교를 나오고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독일을 오게됐다고 하였다 " 뭐라고 불러야 할지 .... " " 형도 좋고, 어이도 좋고, 저기요도 좋고, 오빠도 좋고... " " 오빠는 좀 그렇고 형! 형은 내가 고향에 있을때 같은 교회에서 나를 쫓아다니던 K 대생과 닮았어요 " " 그 사람이 나같이 못생겼어요 ? " " 크크 못생긴 건 아시네요 " " 잘 알지요 키도 조금 더 커야하고, 덩치도 좀 우람해야하고, 눈도 작고, 코도 낮고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럽고... 에이 일일이 말하려니 에이구 그만 합시다 " " 제가 보기에는 한국에서 여자들이 많이 따라다닌 것 같은데요 ? " " 아 여자요 ? 있지요 서울역에서 한 여자애가 껌 사라고 따라 오더라구요 그 여자애 하나밖에 없었어요 " 그녀는 맥주를 마시다가 웃음이 터져서 사래가 들려 콜록 거렸다. 그녀는 아까부터 들고 다니는 그게 뭐냐고 했다 스케치북 같은데 여행 메모를 하려고 들고 다니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가만 앉아있으라고 하고는 그녀의 옆모습을 크로키로 빠르게 그렸다. 그냥 그련대로 느낌은 비슷했다. 빨리 느낌만 캣취해서 그리면 가끔은 비슷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림을 받아든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미술대 다니느냐고 했다 나는 미술대 다니는놈이 이렇게 그림을 못그리면 어떻하느냐고 비슷한 화공과 다닌다고 하고 그림 그리는 화공을 교육시키는 화공과 다니고 있다고 했더니 그녀는 킥킥 웃으며 형 되게 재미있다고 하면서 나를 따라 다니는 K 대생도 화공과 다니는데 화학 공장 설계하는 과라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맥주를 마시며 나에게 바짝 닥아 앉았다. 그녀의 체취가 느껴졌다. 숲을 일렁거리며 여름 바람이 상쾌하게 우리를 어루만진다 이 것이 행복이다 교양철학 시간에 김형석 박사의 강의가 생각났다. 인생의 행복은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 가는 길에 순간 순간 느끼는 것이라는 말씀. 그래서 인생은 그 순간 순간 만나는 행복을 느끼고 즐기면 행복한 인생이라는 말씀. 고시 공부 하는 놈이 고시합격하고 나면 그때 부터 행복이 아니고 고시공부 중에도 수없이 많은 조그만, 시시한 행복을 만나다는 것 그런 것들을 놓치지않고 잡아서 즐기고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러 가는 도중에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아름다워서 잠시 발을 멈추는 여유있는 인생을 말씀하시던 감형석 박사가 생각났다 앞일은 그때 가서 대처하고 인간의 앞날은 1초 후도 모르는 것이니 지금은 지금이다.... 내 앞길이 얼마나 힘들지는 명확하게 그려지지만 그러나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주머니 속에 10 마르크는 잊기로 했다. 힘들때 힘 들더라도 아직 닥치지 않는 앞날 때문에 지금의 순간을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대로 그냥 핀랜드 가지말고 여기 있고 싶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어마나 벌서 3시네요 영사관에 가야잖아요 한다 우리는 사이좋게 영사관을 향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내 팔장을 꼈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이 전달된다 온 천지가 아름답게 보였다. 여자란 남자와 같이 걸으면 팔장을 끼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았다 영사관에서는 왜 이제 오느냐고했다 총영사와 대담에서 교환학생으로 간다는 것을 말하며 한국 법이 외국 나갈때 100불만 가지고 나가게하는 법 때문에 고생이 심하다고 했더니 지금 얼마 가지고 있느냐고 하셨다 그래서 솔직히 10 마르크 있다고 했더니 스톡홀름에서 헬싱키 가는 페리 표는 예매 했느냐고 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헬싱키 가서 몇달동안 어떻게 먹고 살거냐고 했다 대학측에서 대학내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서 월 500 핀랜드 마르까 씩 준다고 했더니 그건 됐는데 페리 배삯하고 그동안 먹고 살 돈이 문제로군 하면서 나에게 Y 대 뺏지를 담보로 돈을 200 마르크 빌려 줄테니 귀국해서 갚으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날뻔 했다. 독일 1 마르크가 핀랜드 4 마르까 쯤 된다고 하셨다. 큰 돈이었다 인간은 1초 후의 일도 모르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 미리 걱정하면 걱정한 시간만큼 인간은 더 불행한 것이라는 김형석 박사의 말씀이 떠 올랐다 200마르크라는 거금을 들고 영사관을 나오니 오후 5시쯤 됐다. 나는 서둘러서 반호프로 가려고 트렁크를 들고 길을 재촉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 아침의 그 교수라는 선배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주소를 보여주면서 여기를 찾아가야 하는데 길좀 인도해 달라고 했다 선배의 집은 가까웠다 독일이란 나라는 주소만 있으면 누구나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와 같이 선배의 집에 가니 선배의 부인이 나와서 웬 일이냐고 의아해 한다 나는 불쑥 100마르크를 내밀며 선배한테 어제 꾼 돈이라고 했더니 차차 쓰는대로 쓰고 갚지 뭘 그러느냔다. 그래서 사람의 앞날을 모르니까 혹시라도 내가 사고를 당하거나 시간이 없거나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 돈이 생긴김에 갚는 것이 나에게는 편하다고 했다. 선배의 부인은 혹시 돈이 모자라면 어떻 하려고 그러느냔다. 그래서 걱정하시지 말라고 앞날은 모르니까 그때 그때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선배 부인은 가는 길에 먹으라고 자기가 만든 빵이라고 옥수수 빵을 한 뭉테기 싸서 준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서둘러서 반호프로 향했다 무거운 트렁트를 들고 뛰면서 같이 가자는 그녀를 기다리며 뛰며를 계속하면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반호프에 도착하니 스톡롤름 가는 기차시간이 20분 남았다. 표는 같은 방향으로 1개월간 유효하니 그냥 기차만 타면 되었다. 그녀가 프랫홈까지 따라 왔다 기차를 타려는데 그녀는 헬싱키 같이 가면 안되느냔다.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몹시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갑자기 그녀와 헤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러자 지금 가서 스톡홀름까지 표를 사자 했다.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우선 헤어지기 싫은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 그러자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헤헤 웃으면서 형한테 농담한거야 하면서 형은 그래도 남자 다우네 다른 사람같으면 이유를 대면서 같이 못간다고 할텐데 하였다. 내가 기차를 타고 자리를잡고 창밖으로 그녀에게 손을 흔들자 그녀는 빠르게 밖으로 나간다 기차가 떠나려고 스피커에서 발차를 알리고 있는데 그녀는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럭키 스트라익 가운데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담배를 한곽 사서 나에게 주려고 손을 내민다 나는 빨리 창문을 올리고 손을 내밀어 그녀가 주는 담배를 받아 쥐었다. 기차가 떠나고 그녀는 거기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아직도 함브르크 반호프 프랫홈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계속 ) |
첫댓글 방장님 유럽횡단기 잘 읽었습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더 하실것 같네요.
제인에어님 여기 댓글 다신게
몇년 만입니까 ?
글 같잖은거 읽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용.인 시작한 것이 벌서
10 여년 된거 같습니다
방장이라는게 인생살이에
굴곡이 많다보니
폐쇄 되다시피 했었지요
저도 그동안 사업실패로
어려웠지만
이제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보는 분이 없더라도
그냥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 들리셔서 보아 주십시요
오래 전 예술의 전당에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가시는데 바래다
드리지 못했던거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으로 남아있습니다
신앙 생활 하시며 지내시는
모습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동안 답글은 못 달았지만 애독자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늘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