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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몰입과 창의성
서울공대지 2019 Summer No. 113
황농문 재료공학부 교수
인공지능, 사물인터넷과 빅테이터 등으로 지칭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일반 사무직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부 전문직 종사자의 일도 인공지능과 로봇 등이 대신할 것이다. 2016년에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반사무직을 중심으로 제조·예술·미디어 분야 등에서 약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컴퓨터·수학·건축 관련 일자리는 약 200만 개가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창의성 교육의 당위성이 더 절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기는 원리는 무엇일까? 창의성 교육을 논하기 앞서 창의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기는 원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또한 창의성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창의성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을 뇌과학적으로 해석하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기는 원리를 이해하고 동시에 창의성과 관련된 최근의 뇌과학적인 지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성 교육의 방향과 방식을 보다 구체화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창의성이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는 오늘날의 창의성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Creativity).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창의성이 인간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신이 준 영감이라고 믿었다. 창조를 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피조물인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간혹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수호신 혹은 전령을 통해 신의 영감이 전해진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예술적인 영감을 전하는 전령을 뮤즈Muses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museum과 music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수호신을 그리스 시대에는 다이먼daemon이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도 수호신 다이먼이 그에게 지혜를 알려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수호신을 로마시대에는 게니어스genius라고 하였다.
모든 것을 신이 창조했다는 믿음에서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바뀐 르네상스가 되어서야 비로소 genius가 신의 영감을 전하는 수호신이 아니고 탁월한 개인 안에 존재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개인을 오늘날 천재genius라고 부르게 되었다. 창의성이 신이 준 영감이 아닌 탁월한 개인의 능력이라는 믿음이 보편화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다. 이러한 믿음이 보편화되자, 그렇다면 창의성을 발달시키려면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까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 1950년대이다. 따라서 서양에서의 창의성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주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특별한 몰입 체험
평소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재직 시절에 기적과 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절정의 몰입을 7년 동안 반복해서 체험했다. 이와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나의 저서 『몰입』에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주어진 문제를 의도적으로 1초도 쉬지 않고 꼬박 3일을 생각하면, 의식이 온통 그 생각으로만 채워지는 고도의 몰입 상태가 되고, 이 상태에서는 어김없이 평소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이러한 경험을 하며 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성되는 원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이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몰입도가 낮을 때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진전이 없다가 일단 몰입 상태가 되면 어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현상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몰입 상태와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 논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몰입 상태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말하는 몰입이란, 그 문제를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날 때 그 문제에 대한 생각과 함께 깨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잠에서 깨어날 때 “그 문제를 생각해야지!”라고 한다면 아직 몰입 상태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깨어날 때 이미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몰입은 불교의 간화선(看話禪)에서 말하는 ‘삼매(三昧)’와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깊은 잠 속에서도 화두(話頭)만 생각하는 상태를 간화선에서는 ‘숙면일여(熟眠一如)’라고 하는데, 내가 말하는 몰입은 숙면일여와 아주 비슷하다.
몰입도를 올리는 과정에서는 전혀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다가, 일단 ‘숙면일여’ 상태가 되면 어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높은 빈도로 떠오른다. 아이디어는 샤워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편안한 소파에서 생각하다가, 식사를 하다가 혹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도 떠오른다. 장소와 시간과 관계없이 우연히 떠오른다. 그러면 그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고, 그 아이디어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떠올랐는지 생각해본다. 그런데 중간과정이 없다. 그냥 그 순간 운이 좋아서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몇 달간 계속 아이디어가 생기는 원리를 추적했는데, 항상 똑같았다. 중간과정 없이 우연히 혹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이러한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특별한 경험을 했다.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아이디어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지랑이처럼 희미한 채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다. 바로 그 순간 열려 있던 내 사무실 문 앞에 누군가가 나를 만나러 왔다. 그를 맞이하려고 고개를 돌리면 아지랑이 같은 상태에 있는 그 중요한 아이디어를 놓칠 것 같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잔뜩 긴장한 채 그 아이디어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잠시 후 그 아이디어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노트에 적고 고개를 돌리니, 그 사람은 가고 없었다. 아마도 자신이 온 지 뻔히 알면서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니 기분이 나빠서 가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몰입이 대인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몰입하기 전에 주의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아이디어의 생성원리에 관한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아이디어의 내용도 모르면서 그것이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을까? 이는 그 아이디어가 그 당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훨씬 이전에 생긴 것이다. 이전에 생긴 아이디어가 기억이 나지 않고 있다가, 그 순간 의식으로 떠오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디어는 언제 생긴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잠잘 때 생긴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테니스 단식을 한 게임 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가족과 식사를 하고, 그 당시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아이들이 그날 해야 할 학습지를 점검하고 못했으면 식탁에 같이 앉아서 아이는 학습지를 하고 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다가 9시 이전에 가족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경험에 의하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몰입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좋다.
그리고는 거의 어김없이 새벽 12시와 1시 사이에 아이디어와 함께 잠에서 깬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으려고 일어난다. 가족들은 자고 있고, 거실로 나오면 세상은 조용한데 이 우주에 그 문제와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감이 느껴지면서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온몸이 전율을 한다. 이때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대략 30분에서 2시간 동안 하루 중에 가장 높은 빈도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아이디어를 기록한 노트를 보면, 이때 얻어지는 아이디어가 낮에 하루 종일 얻어지는 아이디어보다 더 많은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으면 다시 잠자리에 든다. 잠시 누었는데 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시 일어나서 거실의 불을 켜고 아이디어를 적는다. 그러다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또 다시 눕는다. 그러다 또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시 일어나고 한다. 어떨 때는 10번 이상을 누웠다가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가족이 잠을 방해 받기 때문에 소파에 이불을 갖다 놓고 눕는다.
그래서 경험적으로 잠을 자고 나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생각을 하다 졸음이 오면 좋은 징조라 생각하고 즉시 선잠을 자거나 잠자리에 들었다. 자는 동안 우리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한 나머지 관련 문헌조사를 했다. 그러다 알게 된 책이 수면에 대한 세계적인 석학인 하버드대학의 알랜 홉슨(Allan Hobson) 교수가 쓴 Dreaming을 번역한 『꿈』이다. 이 책에는 잠들 때와 깨어 있을 때 우리 뇌가 어떻게 다른 지 잘 설명되어 있는데 먼저 이 책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한 후 이 내용을 나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뇌는 기억을 저장하기도 하지만 인출하기도 한다. 기억의 저장과 인출이 우리 뇌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이다. 가령 ‘school’이라는 영어 단어가 ‘학교’라는 뜻임을 외운다면 그것은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다. 영어 시험에 school의 뜻을 우리 말로 적으라고 한다면 ‘school 학교’라는 기억을 인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은 낮에는 고양이 되지만 잠을 잘 때는 현저히 낮아진다. 쉽게 말해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은 낮에는 천재가 되지만 잠이 들면 백치가 되는 것이다. 기억을 단기기억으로 저장하는데 필요한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아민성 신경전달물질의 양이 낮에는 많지만 수면 중에는 현저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는 동안 꿈을 꾸는 렘(REM, Rapid Eye Movement)수면과 꿈을 꾸지 않는 비렘(Non-REM)을 반복하는데, 자는 동안 몇 번의 렘수면이 있기 때문에 여러 번의 꿈을 꾸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깰 때 꾼 꿈만 기억한다고 알려져 있다. 몽유병 환자는 렘수면 중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데, 다시 자고 일어나면 그 활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잠을 자는 동안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에 관한 한 우리 뇌는 거의 백치에 가깝다.
한편 기억을 인출하는 능력은 낮에는 낮지만 잠을 잘 때는 현저히 올라간다. 쉽게 말해 기억을 인출하는 능력은 낮에는 백치에 가깝지만 잠이 들면 천재가 되는 것이다. 기억의 인출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로는 아세틸콜린이 있다. 아세틸콜린은 수면 중에 많아지는데, 특히 렘(REM) 수면 중에 최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잠이 들면 전두엽이 비활성화되어 전두엽에 의하여 억제되었던 기억의 표상을 저장하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전두엽의 비활성화와 아세틸콜린의 증가로 의식의 깊은 곳으로의 접근이 가능하고 여기에 저장된 장기기억들이 보다 쉽게 인출되는 것이다. 즉, 잠이 들면 장기기억의 인출능력이 현저히 고양되는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해결하려는 문제와 관련된 장기기억들의 인출의 문제이므로 잠들 때 창의성이 고양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매일 밤 잠이 들 때 장기기억의 인출능력이 고양되어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천재의 뇌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잠이 들면 전두엽이 비활성화가 되어 문제의식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재의 뇌를 활용할 수 없다. 따라서 매일 밤 창의성과 관련된 천재의 뇌를 경험하면서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밤이 든 상태의 창의성이 고양된 뇌를 활용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잠이 든 상태에서도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숙면일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숙면일여’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일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숙면일여’ 상태가 되어 잠이 든 상
태에서 기적과 같은 아이디어가 인출이 되어도 잠이 든 상태에서는 기억의 저장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아침에 일어나면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희미하게 저장된 아이디어들이 낮에 가끔씩 떠오르는데, 나는 그것을 우연히 떠올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렌디피티’의 특징을 갖는 것이다. ‘숙면일여’가 되면 어김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나의 경험을 이처럼 깨어 있을 때와 잠이 들었을 때 뇌가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한 뇌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숙면일여’에서 잠이 든 상태에서 떠오른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침에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나는 내가 했던 것처럼 3~4시간 후에 일어날 것을 제안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저녁 9시 이전에 자고 12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이때 만약 아침까지 잠을 자고 일어났다면 상당수의 아이디어가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자 한다면 한 일주일간은 오로지 그 생각만 한다. 그러면 그 이후부터는 숙면일여 효과가 나타나서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잠이 든 상태에서는 저장이 잘 되지 않으므로 잠자리에 든 후 3~4시간 후에 일어나도록 자명종을 맞추어 놓는 것이 좋다. 그래야 떠오른 아이디어를 수확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면과 창의성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수면 중에 얻은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일화는 너무도 많다. 프리드리히 케쿨레는 벤젠의 육각형 고리 모양을 꿈속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세틸콜린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오토 뢰비도 꿈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멘델레프도 꿈속에서 원소의 배열표를 보고 주기율표를 완성했다.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원리의 핵심을 꿈속에서 찾았다고 한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꿈 속에서 예스터데이Yesterday의 선율을 찾았다고 한다. 꿈속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가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쓴 루이스 스티븐슨, 『변신』을 쓴 카프카, 『검은 고양이』를 쓴 에드거 앨런 포, 『해리포터』를 쓴 조안 롤링, 『개미』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이 있다.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최근 소설 『잠』과 관련하여 2017년 6월 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잠과 꿈을 통해 창의력을 키우고 유지한다.
꿈은 내 모든 영감의 원천이다.
꿈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대부분 글에 쓴다.
가끔은 한 챕터 전체를 꿈에서 얻어 그대로 옮겨 쓰기도 한다.
쓰다가 막히면 누워서 뇌한테
‘내 문제 좀 해결해줘’ 부탁하고 잠들길 기다린다.
꿈속에서 만날 여러 아이디어를 기대하며.”
꿈 속에서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얻어졌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독일 뤼벡Lübeck대학의 얀 본Jan Born 교수는 수면이 과연 통찰력을 증진시키는지에 대한 연구를 했고 그 결과를 2004년 <네이처>지에 ‘수면이 통찰력을 높인다’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얀 본 교수 그룹은 먼저 실험 대상자들에게 통찰력을 테스트할 문제를 어느 정도 훈련을 시킨 다음, 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첫 번째 그룹은 8시간 동안 수면을 취한 후, 두 번째 그룹은 밤에 8시간 동안 깨어 있도록 한 후, 세 번째 그룹은 낮에 8시간 깨어 있도록 한 후 이 문제를 풀게 했다. <그림 1>의 첫 번째에서 세 번째 데이터를 보면 8시간 동안 수면을 취한 후 문제를 푼 그룹의 경우 다른 그룹보다 통찰력이 세 배 가까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어진 문제를 생각하다 잠이 들면 통찰력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된 것이다.
세로:통찰도(%): 바닥에서부터 0 10 20 30 40 50 60 70
가로:막대별 설명: 깨어있는 낮, 깨어있는 밤,수면, 수면 후, 깨어있음 후
그림 1. 수면과 통찰력의 관계 (Nature, 22 (2004) 352-355)
한편 잠자기 전 문제에 대한 훈련을 시키지 않은 두 그룹에 대한 실험을 추가하였는데, 이 중 한 그룹은 8시간 동안 수면을 취했고 다른 그룹은 낮에 8시간 깨어 있었다. <그림 1>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데이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잠을 잔 후라도 잠자기 전 문제에 대한 훈련을 시키지 않은 경우에는 통찰력이 증진되는 효과가 없다. 즉, 사전에 주어진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잠이 통찰력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수면이 통찰력 혹은 창의성에 영향을 줌을 밝히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연구 이후에 수면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현재는 신경과학분야에서 잠이 든 상태에서 창의성이 고양된다는 것은 정설이 되었다. 관련된 내용은 Wikipedia의 ‘Sleep and Creativity’라는 항목에 잘 설명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Sleep_and_creativity).
다만 창의성을 발현하는데 어떠한 수면 단계가 중요하냐에 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다. 미국 UC 샌디에고의 사라 매드닉(Sara Mednick) 교수는 렘수면 시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주장한다 (Proc.Natl. Acad. Sci. 106 (2009) 10130–10134). 이는 REM 수면이 연상기억을 촉진시키고 동시에 연상기억과 비연상기억을 통합시키는 활동을 촉진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 볼로냐 Bologna대학의 발레리아 드라고 (Valeria Drago) 교수는 비렘수면 시 창의성이 발휘된다고 주장한다 (Sleep Med. 12 (2011), pp. 361-366). 이는 비렘수면시 코티졸에 의한 각성 수준이 낮아지는데 이는 의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장기기억에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비렘수면 시 전두엽이 활성화되는데 이는 발산적 사고에 도움을 주어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한편, 독일 뤼벡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얀 본 교수는 창의성이 전반부 수면에서 극대화된다고 주장한다. 깨어 있는 동안 학습활동에 의해 얻어진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변환되는 것은 꿈을 꾸지 않는 비렘수면 중에 일어나는데, 이러한 변환의 대부분은 전반부 수면 중에 일어난다고 한다. 얀 본 교수의 주장은 앞에서 언급한 나의 몰입 경험과 일치한다. 숙면일여의 몰입상태에서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나올 때가 3~4시간 잔 후 새벽에 일어날 때이고, 다시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꼭 몰입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창시절에 수학문제를 풀 때 처음에는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하면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해결책이 떠오른다. 이는 생각을 계속하면 문제와 관련된 뇌세포와 시냅스 활성화 정도가 증가하여 문제를 풀 수 있는 기량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앞서 설명한 ‘숙면일여’ 상태에서 높은 창의성이 발휘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더 쉽다. 그러나 이 과정은 창의성 혹은 창의적 문제해결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므로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의식이 어떠한 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뇌과학적 지식이 유용하다. 이 목적에 가장 적합한 이론이 버너드 바스Bernard Baars교수가 제안한 의식의 통합작업공간이론Global Workspace Theory of Consciousness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Global_Workspace_Theory).
의식의 통합작업공간 이론 Global Workspace Theory of Consciousness
예로부터 의식을 극장의 무대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를 ‘데카르트의 무대Cartesian Theater’라고 한다. 버나드 바스Bernad Baars 교수가 제안한 의식의 통합작업공간Global workspace 이론은 좀 더 현대화된 데카르트의 무대를 말한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가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의식의 내용을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주인공에 비유한다. 무대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 해당되고,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지역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느끼는 의식의 내용이다. 조명이 비추어지지 않은 어두운 무대 위는 현재는 의식되고 있지 않지만, 현재의 의식과 행위에 영향을 주는 활성화된 암묵기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대에서 떨어진 어두운 곳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은 무의식에 해당되고 이는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이다. 무대라는 작업 기억의 용량은 매우 한정되지만 장기기억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경험하고 배운 모든 기억이므로 용량이 엄청나게 크다. 무대 뒤에서 무대를 관찰하고 스포트라이트를 조정하고 배우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감독이나 스탭들은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에 해당되지만 종종 의식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식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곳에 있는 무의식끼리는 서로가 잘 보이지 않으므로 소통이 어렵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의식의 내용은 무의식의 관중들에게 생중계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무의식은 의식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의식의 무대를 관람하고 있는 관객 (장기기억)이 무대 위로 불려나가면 기억이 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식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장기기억에 생중계되므로 의식의 입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관련된 장기기억이 인출되어 의식의 무대로 올라가면 이는 의식의 출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의 무대 위에서는 이러한 의식의 입력과 출력이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의식의 무대 위를 어떠한 내용이 차지할 것인가는 ‘자극의 경쟁’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자극의 세기가 큰 내용이 의식의 무대를 차지하는 것이다. 의식의 통제능력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의식의 내용을 무대 위로 올려서 원하지 않는 의식의 내용을 무대 밖으로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의 통제능력은 집중력 혹은 몰입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처음에는 풀리지 않던 문제를 계속 생각하면 문제가 풀릴까? 계속 생각한다는 것은 그 문제를 계속 의식의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러면 무대 가까이 있는 무의식이 그 의식의 내용을 보고, 자신이 그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면, 무대 위로 올라갈 것이다. 이는 해당 장기기억이 인출되어 그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에 해당한다. 그러면 문제가 풀리는 것이다. 문제가 쉽게 풀린다는 것은 무대 가까이에 있는 장기기억이 인출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어려워서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장기기억이 무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그 문제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시간이 아주 길어야만 해당 장기기억이 인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통합작업공간이론에 의하면 문제를 푼다는 것은 그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는 장기기억의 인출 문제이고 어려운 문제를 풀려면 그 문제를 의식의 무대 위에 충분히 오래 올려두어야 하는 것이다.
슬로우 싱킹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의식의 깊은 곳에서 관련 장기기억을 인출할 수 있으면 더 유리할 것이다. 나는 문제가 어려울수록 긴장을 풀고 이완된 상태에서 집중을 하면 문제 해결에 대한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는 사실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따라서 긴장하거나 조급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이완된 상태에서 천천히 생각하는 슬로우 싱킹slow thinking 방법을 추천한다. 편한 상태에서 쉬는 듯이 생각을 하다 보면 쉽게 졸리게 되는데 이때 주저하지 말고 목을 뒤로 기대고 선잠을 자면 된다. 깨어나면 또 계속 생각한다. 슬로우 싱킹 방법을 사용하면 오랜 기간 생각해도 지치지 않고 집중도 잘되고 아이디어도 잘 떠오른다. 슬로우 싱킹이 효과적인 이유는 코티졸에 의한 각성 수준이 낮아져 의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장기기억으로의 접근이 보다 쉬워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슬로우 싱킹에 의한 이완된 집중 상태보다 더 이완된 상태가 바로 선잠 혹은 수면 상태이다. 선잠과 수면 상태에서는 깨어있을 때보다 훨씬 더 의식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장기기억을 인출할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떠오르지 않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주어진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날카롭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발달되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어떠한 지식을 배운다고 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교육과 훈련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와 관련된 내용과 사례는 다음 원고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