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5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 (포티아 넬슨)
짧은 시로 담은 인생의 여정과 감정
셔터스톡
1장.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곳에 빠졌다.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구멍에서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장.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걸 못본체 했다.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똑같은 장소에 또 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데 또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3장.
난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또 다시 그곳에 빠졌다.
그건 이제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난 비로소 눈을 떴다.
난 내가 어디 있는가를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4장.
내가 길을 걷고 있는데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5장.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있다.
우리 삶은 무수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기에 그것을 묶어서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면 친구를 만났다는 사건에는 친구를 만나기위해 옷을 입었고 전철 혹은 버스를 탔고 장소에 도착했고 그 장소에서 친구를 찾아 두리번 거렸고 하는 여러가지 사건이 포함되어있다.
그 사건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서 친구 만남이라는 큰 덩어리로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의 수는 몇개나 될까? 일일이 세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 하루를 365일 살면 1년이 되고 그 365일을 10년 살면 3650일이 된다.
70년을 산다고 치자.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어르신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 세권은 된다고 말한다. 사실은 세권에 지나지 않을까? 수백권은 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밥을 먹었다거나 옷을 입었다거나 하는 세세한 사건이 아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큰 사건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건들은 여전히 많다. 그 사건들을 누군가와 공유했을까? 모든 사건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나만의 삶에서 내가 거쳐온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서전이 긴 이유기이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몇가지나 될까. 감정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는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연세대 언어정보개발원에서 최근 10년간 사용된, 순전히 감정상태만 표현하는 단어를 뽑았더니 434개라고 한다. 우리가 하루에 느끼는 감정, 표현하는 감정은 몇개나 될까.
포티아 넬슨의 자서전은 지극히 짧다. 세세한 내용은 전혀 없다. 개인적 묘사는 더구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깊은 공감을 느낀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는 여정을 그리고 감정을 축약해 넣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전혀 다른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전혀 다른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공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본적인 감정, 보편적인 감정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고마운 일이다. 모두가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