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8. 주일 큐티
골로새서 2:1 ~ 7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관찰 :
1) 누구의 교묘한 말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1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계속해서 소식을 듣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수고를 구태여 밝히고 있는 것은 자신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만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에게 자신이 믿고 행하고 있는 바른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도의 권위로 그들을 꾸짖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는 사도 바울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사역을 했는지를 자랑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측면의 고백입니다.
- 2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며 기도하고, 또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에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많은 방해와 박해가 있기 때문에 주님의 위로가 없이는 그들이 온전히 신앙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상황임을 사도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격려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랑안에서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다양한 이방 종교의 각축장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유대 율법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배경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믿음의 행태로 다른 이들의 믿음의 방식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안에서 연합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안에서 연합하는 이유는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 속에서 치우친 복음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을 누리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고자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는 자에게는 열리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감추어지는 속성을 가지는 것이 비밀입니다. 이 비밀이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열려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기도하고 또, 그들을 위해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애썼습니다.
- 3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 “지혜”는 ‘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을 바로 택하여 운용할 줄 아는 덕스러운 능력’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일의 이치에 대한 본질을 바르게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야만 바르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 4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닌 다른 복음은 헛된 것이고 지혜와 지식이 아니기에 그것으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거짓된 가르침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의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사도 바울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언제나 경계하고 있습니다.
- 5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도를 통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함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을 지라도 성령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이들의 형편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허언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진실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과 심령으로 함께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의 형편을 알고 그들 안에 있는 일들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질서 있게 행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기쁘게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믿음에 굳게 서서 행하라
-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 사도 바울은 그렇게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질서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에 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을 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 있던 율법주의(16절), 천사숭배(18절), 극단적 금욕주의(21, 23절), 영지주의(8절) 등의 잘못된 것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것에서 떠나지 말게 될 것을 권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 땅과 하늘, 그리고 모든 문화물에 이르기 까지 그 통치의 영역이 모든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을 섬기거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 7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는 신앙을 갖게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교훈”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에서 가르친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워지는 것(엡 2:20)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이 가르친 바의 교훈을 에바브라가 가르침으로 골로새 교회가 받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말합니다. 거짓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감사가 넘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가 세워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르게 세워지지 못하면 그것은 감사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뿌리를 내리는 신앙,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받는 신앙,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워지는 신앙이 감사의 조건이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사가 넘친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의 헛된 가르침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묘한 말로 속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바른 믿음에 굳게 서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듯하지만 거짓된 이들의 그리스도가 주가 되지 못하게 하는 가르침에서 벗어날 것을 강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닌 다른 가르침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체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서 우리는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2)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우리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가 살아나셔서 지금도 우리의 살아계신 주님이 되십니다. 그분의 다스리심으로만 우리는 온전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다른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길을 걷고, 강건하게 세워져야 할 것을 사도 바울은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
3)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가보지 않고도 골로새 교회의 형편과 성도들의 상황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에바브라의 보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날마다 간절히 기도함으로 파악된 성령의 내주하심의 역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 성령의 은혜 안에서 골로새 교회를 위해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골로새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느끼고 깨닫고, 그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적용되는 영적 사건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 가운데, 깊은 기도 속에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 대상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역사가 오늘도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중보기도는 매우 중요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 날마다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도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적용 :
1)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위배되는 성경의 어떠한 해석도 나는 따를 수 없습니다. 구약을 바르게 해석해 주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른 사도들의 해석을 통해 구약의 성경말씀을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구약의 해석을 통해 신약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또한 해석하고 따라야 합니다. 성경은 자기 마음에 드는 제멋대로의 해석을 불허합니다.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기도를 더 많이 쌓아야 하겠습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에 그들의 실제적인 영적 상태와 필요를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쉼 없이 자신이 복음을 전한 교회와 자신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한 것은 실제이고, 그 과정에서 성령의 교통하게 하시는 은혜를 진하게 불어넣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도 그런 자리에 나아가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3) 현재 미얀마에서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가 기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미얀마를 위해서, 또 하나님께서 제가 중보하게 하는 교회와 사람들을 위해서, 깊은 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더욱 집중하고, 이제껏 관계하던 이들을 위한 중보의 끈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또한 은혜의 시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