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막는 1등 교인>
경북의 어느 교회에서 한 중직이 교육관 건물 옥상에 갔다가 현기증으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때 교인들이 안타까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그분이 돌아가셨으니 교회가 부흥되겠네요" 라고 말했다.
얼마나 교회를 힘들게 했으면 그런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그분이 죽고 난 후 1년 만에 교회가 두배로 부흥되었다.
말씀대로 살면 1등 교인이 되지만 자기 뜻과 감정대로 살면 '없으면 좋은 교인' 된다.
교회 성장학의 원리를 의하면 교회는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이 많으면 100명을 넘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앞선 사람이 신앙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교회를 좌지우지하면 헌신적인 사람이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뒤에 온 사람이 헌신하려고 해도 눈치가 보이고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의 헌신까지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에게 겸손을 설교하던 목사는 교만해져 있고,
순종을 설교하던 목사는 주님께 불순종하고 있으며,
십자가를 지라고 설교하던 목사는 부와 명예를 십자가라고 떠들어대면서 세습하고 있으니,
이런 반역과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알곡을 위한 교회인가?
가라지를 위한 교회인가?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이 교회 밖만큼 세속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지금 교회는 영적 창녀처념 음란하지만, 성령님께서 눈동자처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어차피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연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세상 끝까지 함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에 알곡만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알곡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인간의 눈으로 가라지를 구별해서 함부로 뽑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7).
우리는 교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는 당연히 알곡과 가라지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교회 안에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라지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죄와 배도 역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교회 속에 가라지가 뿌려졌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 교회는 쓰러질 것처럼 보이고 연약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 구원받는 교회는 알곡이며 남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회 안에 가라지가 많을지라도 심판의 때가 되면 가라지가 거두어져서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알곡을 키우기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알곡을 보호하고 알곡이 성장할 수 있는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알곡의 믿음을 향상시키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수많은 목회자가 가라지를 중심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좋아하는 설교를 해 주고,
가라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라지가 좋아할 만한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목회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가라지들이 활개를 치게 되고 알곡들은 외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가라지가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데,
알곡들이 교회에 대한 깊은 실망을 품고 떠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의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돈과 세상을 사랑하는 염소들이 거룩함을 추구하는 양들을 괴롭히고 놀리는 시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실망하는 것은 교회 안의 양들 때문이 아니라 염소들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가라지와 염소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놀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염소가 구분 되는 것은 천국에 들어 갈 때 구분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목초지입니다.
지나고 보니 교회성장의 제일 방해꾼은 목사인 나 자신을 인정합니다.
은혜가 아닌 율법으로 열심특심이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나이가 문제가 되네요.
세월은 흘러가 버렸으니..
하나님이 젊을 때에 이 은혜를 주시지..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네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나는 너를 원한다는 음성이 들리는 것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