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고 단단해 가구·바둑판 만들어… 씨앗은 구충제로 쓰였대요
비자나무
▲ 비자나무(위)와 주목(朱木·아래).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비자나무는 잎 끝부분이 날카롭고 뾰족한데 주목은 잎 끝이 둔하고 열매가 빨간색이죠.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서 오래 사는 나무는 어떤 게 있을까요? 흔히 울릉도 도동의 절벽에 자라는 향나무, 또는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이라는 태백산이나 소백산의 주목(朱木·적백송·수송 등으로도 불림)을 떠올리는데요, 비자나무도 있어요.
비자나무속(屬)은 아시아의 온대·아열대 지역과 미국의 캘리포니아주·플로리다주에 주로 분포합니다. 동아시아에 4종, 미국에 2종 등 총 6종이 알려졌지요.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일본에도 널리 자라는데요. 중국은 전 세계의 비자나무속 6종 중 4종이 분포해 비자나무속의 중심지랍니다. 유럽에서도 비자나무속이 쥐라기 시대까지 분포했다고 해요.
비자나무는 주목과 비슷해 보이지만, 주목은 침엽의 끝이 둔하고 열매가 빨간색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요. 비자나무 잎은 길이 2~8cm, 너비 3~4mm로 끝부분이 날카롭게 뾰쪽해요. 침엽 가운데의 맥(脈) 양쪽에 선명한 흰색 줄이 있어요. 침엽을 으깨서 맡으면 진한 향기가 나며, 실내에 열매를 몇 알만 두어도 향기가 가득 차기도 해요. 나무껍질은 세로로 갈라지고 갈색입니다. 나무 높이는 대략 25m이고, 지름이 2m에 이르는 나무도 간혹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비자나무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어디일까요. 천연기념물 제374호인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의 비자림이죠. 제주도 비자림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자연림이에요. 그 외에는 주로 백양사나 내장사처럼 사찰 주변에서 볼 수 있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는 전남 장성 백양사와 고흥 금탑사, 화순 개천사를 포함해 모두 8개소에 있습니다.
비자나무 씨는 구충제가 없던 시절 구충제 역할을 했다고 해요. 목재는 재질이 좋아 가구·조각 및 장식이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요. 비자나무는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한데 곧게 쪼개지기 때문에 가공하기가 쉬워요. 습기에 강하고, 나뭇결이 반영구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감촉과 향도 뛰어나서 목재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비자나무 열매는 콜레스테롤 저하에 유익한 지방산과 비타민 E를 함유하고 있어요. 특히 은은한 견과류의 향 때문에 일본에서는 비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을 튀김에도 널리 사용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인 전북 정읍 내장산에도 거목(巨木)이 자라고 있어요. 비자나무는 영하 12도까지 견딜 수 있다고 하죠. 오는 봄, 남도의 사찰에 갈 기회가 있으면 비자나무를 한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김용식 전 천리포수목원장·영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