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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봉 1억에 정년 보장”… 공기업 직원들까지 들썩
[위클리 리포트] 현대자동차 생산직 채용에 청년들은 왜 열광하는가?
고연봉, 워라밸에 구직자들 ‘엄지척’… ‘무스펙’으로 낮은 취업 문턱도 눈길
작년 기아 생산직 채용 때도 500대 1… 실리·안정성 좇는 청년 사회상 반영
《현대차 기술직이 뭐기에 10년 만에 채용 문이 열린 현대자동차 기술직을 향한 청년 구직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현대차 채용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다. ‘킹산직’ ‘갓술직’ 등의 신조어를 낳은 지원 열풍의 배경을 짚어봤다.》
현대자동차 기술직 근로자들이 울산공장에서 아이오닉5를 조립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떴다, 킹차 갓산직(현대차 생산직) 채용!”
지난해 12월 말 현대자동차가 2023∼2024년 총 700명의 기술직(현대차는 생산직 대신 기술직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 선발 계획을 공개한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가 들썩거렸다. 취업준비생들은 물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마저 대열에 합류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현대차 기술직 vs 7·9급 공무원’, ‘현대차 기술직 vs 대기업 사원’과 같은 비교 글이 넘쳐났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도 현대차 기술직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법과 합격 비법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간간이 “자동차 공장 기술직에 대해 과도한 환상이 있다”며 조언하는 글이 올라와도 묻히기 일쑤였다. 현대차 기술직의 단점을 소개하는 글에는 “경쟁률을 낮추기 위한 고도의 술수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조차 “기술직 채용에 왜 이렇게 관심이 쏠리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하는 상황. 현대차 기술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장기화된 청년 구직난, 경제 불확실성의 확대 속 희귀해진 정규직 일자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같이 실속을 중시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경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 하청 근로자 직고용하느라 10년간 미뤄져
현대차의 기술직 공개 채용은 전주공장에서 2013년 진행했던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10년간 기술직 공채가 사라졌다. 사내 하청 근로자들을 직고용하면서 신규 채용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4년 4000명을 시작으로 총 9500명의 사내 하청업체 직원을 직고용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잔여 인원 219명을 남기고 대부분 채용을 완료했다.
현대차 노사 합의로 2019년 도입된 ‘숙련 재고용’도 영향을 미쳤다. 정년 퇴직자 중 희망자에 대해 낮은 연봉을 받는 대신 1년간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제도다. 올해 정년을 맞은 1962년생 기술직은 약 2600명 수준인데, 이 중 약 1800명이 이 제도를 통해 재고용됐다. 여기에 내연기관보다 생산 인력은 약 30%, 부품 수는 약 37% 적게 필요한 전기차 생산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배경 중 하나다. 기술직 종사자 수를 오히려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기술직 채용 재개에 대해 하청 근로자 직고용 문제가 거의 마무리된 데다 전기차 생산 인력도 일정 수준으로는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보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현대차 기술직 지원자 수에 쏠려 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3년은 세 자릿수 채용에 약 16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2011년, 2012년도 경쟁률이 100 대 1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경쟁이 더 치열한 상황이다. 지난해 기아가 기술직 100명 채용 공고를 올리자 4만9432명이 지원하며 경쟁률 약 500 대 1을 기록했다. 구직자들은 이를 근거로 현대차 지원자가 최소 5만 명에 이르고, 10만 명까지도 넘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내 및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는 현대차 채용 절차와 일정이 확정되기 전이었음에도 관련 수험서들이 적잖이 팔려나갔다. 서울 한 대형 서점에서 만난 직장인 한모 씨(30·여)는 “일자리를 못 찾은 남동생에게 지원해 보라고 할 생각”이라며 “주변에서 현대차 기술직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경쟁이 심할까 봐 미리 준비하라고 할 생각”이라고 했다. 현대차 채용 정보를 전하는 유튜버들도 “사람이 몰릴 수 있으니 일단 (서버 접속이 어려울 것에 대비해) 현대차 채용 홈페이지에 가입부터 해두라”고 할 정도였다.
실제 현대차가 2일 지원서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지원자가 몰려들어 한때 접속 대기인원이 2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현대차는 올해 채용 예정인 400명을 8월 초 입사자와 9월 초 입사자로 나눠 뽑는다. 12일까지 서류 접수를 한 뒤 이달 말 서류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어 7월 초와 7월 말에 각각 최종 합격자를 공개한다. 입사자들은 약 4주간의 교육을 거쳐 각 공장에 정식 배치된다. 내년 계획된 300명에 대한 채용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 ‘연봉 1억 원’, ‘정년 보장’에 구직자 열광
현대차 기술직 채용이 관심을 받는 첫 번째 이유는 연봉이다. 현대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현대차 정규직 및 비정규직 근로자 1인당 평균 연봉은 9600만 원이었다. 현대차 지속가능보고서의 직군별 인력 비중에 따르면 생산·기술·정비직이 가장 많은 47.9%를 차지한다. 따라서 기술직의 평균 연봉도 1억 원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를 보면 국내 근로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333만 원, 대기업 근로자의 경우 563만 원이었다. 현대차 기술직 급여가 웬만한 대기업 직원들보다 높다는 뜻이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이모 씨(28)는 “연봉만 보면 경찰이나 소방관 같은 공무원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다”며 “지원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무(無)스펙’ 채용이라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성별, 연령, 전공 불문이다. 구직자들을 괴롭혀 왔던 영어 점수, 인턴과 같은 스펙(이력서에 쓰는 자격 조건)은 필요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사를 돌릴 수 있는 건강한 신체’만 있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경우 공장이 자동화돼 있어 이공계를 전공하고 엔지니어와 관련된 지식과 스펙을 갖춘 인재가 주로 선발되는 것에 비해 문턱이 훨씬 낮은 셈이다.
현대차 노사는 임금 및 단체협상에 따라 만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있다. 생산직들은 실제 정년 퇴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 변동에 따라 고용 불안정성이 큰 중소·중견기업 직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회사에서 정년까지 버티는 경우가 흔치 않은 일반 대기업 사무직들 사이에서도 “안정성만큼은 현대차 생산직이 최고”라는 말이 나온다.
다양한 복지 혜택도 유명하다. 자동차 제조사답게 근속 연수에 따른 신차 구매 혜택이 가장 눈에 띈다. 2년에 한 번 최대 30%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장기근속자는 퇴직 후에도 25% 신차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중고차 시세가 좋을 때는 신차 할인 가격보다 중고 판매 가격이 더 높아 일부 직원들은 ‘카테크’까지 한다고 할 정도다. 근속 20년을 넘으면 해외여행을 지원받는 등 숨은 복지 혜택도 많다.
● 워라밸 중시, 청년 구직난 등 사회상 반영된 결과
현대차 기술직을 둘러싸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나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허수가 많아 실제 경쟁률은 예상보다 높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원자들 중 막상 최종 입사 단계에서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블루칼라(기술직 근로자)에 대한 낮은 인식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일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현대차 기술직의 처우를 공무원, 사무직 등과 비교하는 인터넷 글에는 ‘주변 시선이 적잖이 신경 쓰이게 될 것’ ‘아무리 좋아도 공무원이 갖는 사회적 지위와는 비교 불가’와 같은 반응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생산직의 단점들이 과소 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경직된 조직 문화가 MZ세대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현대차 노조가 공장 근로자, 영업직 등 노조 가입자 약 4만6000명의 연령대 분포를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0대(1963∼1972년생)는 약 2만1000명이다. 자신을 현직 기술직 근로자라고 밝힌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이용자는 “사무직들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꼰대 문화’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대차 기술직이 다양한 직업과 비교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의 경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봤다. 사무직보다 자유로운 휴가 사용, 그리고 퇴근 후에는 업무로부터 온전히 해방되기를 원하는 20, 30대에게 현대차 기술직이 매력적인 직장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여 교수는 “4차 산업혁명 등의 이슈로 근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화이트칼라(지식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가 기술직에 비해 급격히 높아졌다”며 “이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어렵고 복잡한 걸 기피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리와 안정성을 중시하는 최근 세태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공무원, 사무직에 따라오는 사회적 인식보다는 자신이 챙기는 연봉 규모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기술직으로 채용됐을 경우 울산공장, 전주공장, 아산공장 등 지방에 근무해야 한다는 점은 오히려 서울 등 수도권의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상대적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른바 스카이(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일컫는 말) 같은 명문대 공대보다 평범한 지방 의대를 선호하는 현상과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나재원 한국공학대 지능형모빌리티전공 교수도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는 대규모 공채 자체가 드문 현실이기 때문에 구직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 기술직을 향한 청년들의 폭발적 관심은 구직난, 성장률 저하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의 그림자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상반기(1∼6월)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체감실업률과 체감물가상승률을 합한 수치)를 조사한 결과 15∼29세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25.1로 나타났다. 30대(14.4), 40대(12.5), 50대(13.3), 60대(16.1) 모두 청년층보다 낮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의 단순노무직 종사자 수는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38만29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아 있다. 하 교수는 “경기 침체와 성장률 저하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져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젊은층이 (현대차 기술직과 같은)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로 몰리는 건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