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四端)이란 유학의 인성론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단서(端緖)를 보여주는 네 가지 덕목(四德)을 말하며, 칠정(七情)이란 인간이 지닌 7가지 감정을 가리킨다. 사단은 맹자의 용어로서 『맹자孟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나오는 말인데, 인간의 선한 본성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등 네 가지 단서와 관련지어 설명한 것이다.
즉 측은지심은 남의 불행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仁)의 단서가 되고, 수오지심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의(義)의 단서가 되며, 사양지심은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으로 예(禮)의 단서가 되고, 시비지심은 선악과 잘잘못을 판별하는 마음으로 지(智)의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사단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도덕률로서, 이것을 확충하여 인의예지의 사덕을 갖추게 된다고 하여 그의 성선설을 뒷받침하였다. 이를테면,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누구든지 아무런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이 없이 무조건 아이를 구하려 드는데, 이것은 측은지심의 발로로서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좌라는 것이다.
칠정은 공자의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것으로, 인간의 감정을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일곱 가지로 나누어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단과 칠정이 어떻게 구분되고 관계를 지니는가에 대한 문제가, 조선 성리학의 중요한 담론으로 대두되었다.
사단과 칠정은 원래 별개의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성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송대(宋代)에 와서 맹자의 사단설에 대립되는 칠정을 아울러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주자는 맹자의 사단설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덕(四德) 곧 인의예지로만 채워져 있다면, 온 세상이 도덕군자로만 가득 차고 악한(惡漢)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받아들인 것이 칠정이다. 인간의 감정인 칠정에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순선무악(純善無惡)하고, 칠정은 선악이 섞여 있으므로 인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그런데 주자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칠정을 사단에 배속시킬 수는 없다. 칠정은 사단 속을 꿰뚫어 지나가고 있다.”고도 하고, “본디 사단과 칠정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긴 있다.”라고도 하여 일관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학자들은 사단과 칠정의 해명에 들어갔는데 이것이 곧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논의는 처음에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벌어져, 뒤에 이이가 기대승의 설을 지지함으로써 논쟁이 확대되어, 이기론과 더불어 성리학 논쟁의 핵심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황은 사단은 이(理)가 발동한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발동한 것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기대승은 칠정 이외에 또 달리 사단이라는 정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였다. 그러자 이황은 그에 대한 답으로, 사단은 이가 발동하는 데 기가 따르는 것이며, 칠정은 기가 발동하는 데 이가 올라탄 것이라고 수정하였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
이(理)는 우주의 과학적 윤리적 원리를 말하며, 기(氣)는 그 현상인 물질과 에너지를 뜻하는바, 원리인 이는 원래 선하고 현실인 기는 선과 악이 혼재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황은 원리인 이도 발동하고 기도 발동한다고 보았다. 이도 기도 다 발한다고 하여 이를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라 하고, 이러한 주장을 담은 학파를 주리파(主理派)라 한다.
이이는 기대승의 설을 지지하면서 칠정은 사단을 내포한 것이며, 사단도 기(氣)가 발동하여 이(理)가 올라탄 것일 뿐이라는 이른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사단칠정(四端七情)의 구조를 기발이승(氣發理乘)으로 본 것이다.
사단은 칠정의 선(善)한 부분이며, 칠정은 사단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즉 칠정 이외에 다른 정(情)이 있을 수 없고, 칠정 가운데서 인욕(人欲)이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천리에서 나온 것이 사단이라고 하였다. 요약하면, 이(理)는 발동하지 않으며 발동하는 것은 기(氣)뿐이라는 것이다. 이도 기도 발동한다는 이황의 설을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 학파를 주기파(主氣派)라 한다.
이황과 기대승 간의 사단칠정에 대한 논의는 7년간이나 계속되었는데, 양자 사이에 오간 서간을 모은 책이 사단칠정분이기왕복서(四端七情分理氣往復書)다. 퇴계전서의 제16권과 17권에 기명언(奇明彦)의 서간으로 모아져 있고, 기대성의 문집인 고봉집(高峰集)에도 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라 하여 상하 편으로 편찬되어 있다.
이황은 1501년생이고 기대승은 1527년생이다. 나이가 거의 한 세대나 차이가 나지만, 두 사람은 깍듯이 예의로 대하며 서로 공경함으로써 선비의 풍도를 보여 주었다. 이황은 논변 과정에서 세 차례나 자기의 설을 수정하는 학자적 금도를 나타내었다. 이렇게 시작된 사단칠정론은 이기론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큰 봉우리가 되었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300년간이나 면면히 이어져 왔는데, 중국이나 일본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출중한 철학논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