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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작은 사랑
글 : 류해욱 요셉 신부님 ㅣ 예수회
여러분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이야기 아시지요?
유명한 뮤지컬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페라의 유령’은 원래 소설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추리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쓴 소설입니다.
당대의 최고의 소설이었기 때문에 이미 1920년대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이래 4 번이나 다른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오페라의 유령’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 L. 웨버가 뮤지컬로 만들어
1986년 10월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소설과 뮤지컬과 최근 2004년인가 만들어진
영화의 내용이 모두 조금씩 다릅니다.
그렇지만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똑같습니다.
여러분들, 주제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바로 작은 사랑이 큰 힘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에는 음악성과 천사의 목소리를 타고 났지만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괴신사 에릭, 또는 이름 없이
유령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름답고 젊은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는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전개되지만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일관되게 빛과 어둠,
인간 내면을 다루면서 사랑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 지에 대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그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근심이 기쁨으로 바뀝니까?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게 될 때이기도 하지만,
저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모든 고통과 근심은 사라집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평생을 가면 뒤 어둠 속에서 살았던 외로운 유령이
크리스틴을 만나 필사적으로 빛으로 나아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은
마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진통의 시간을 겪는
해산 전의 여자처럼 고통스럽다 못해 처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유령의 아픔을 깨달은 크리스틴의 몇 초간의 키스,
그 사랑의 마음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면서
근심이 바뀌어 기쁨이 됩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면을 쓴 유령인 에릭은
우리의 내면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빛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이 우리의 내면까지 훤히 비출 것 같은,
그러면 우리의 감추고 싶은 추함이 다 드러날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가면 뒤에 숨습니다.
참 빛이신 그분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 내면의 얼굴, 빛으로 나가기가 두려워서
가면 뒤에 서서 어둠 속에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제가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긴 이야기를
다 나눌 수는 없고 마지막 대목만 나눕니다.
적막이 무대를 가르고,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크리스틴은 유령의 가면마저 벗겨버립니다.
한편, 무대 반대쪽에서 목이 매인 채 살해된 남자가수 피앙지가 발견됩니다.
그 혼란을 틈타 유령은 크리스틴을 납치해 자신의 지하 은신처로 달아납니다.
유령의 만행에 분노한 군중들이 유령을 잡으러 지하세계로 몰려갑니다.
유령의 은신처에 가장 먼저 다다른 사람은
당연 크리스틴의 연인 라울이었습니다.
사랑은 용감한 사람의 몫이니까요.
라울은 유령이 자신의 뒤에 다가서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결국 유령이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마법의 밧줄에 목이 매달리고 맙니다.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영원히 같이 살든지
아니면 라울의 죽음을 선택하라고 요구합니다.
크리스틴은 유령이 지닌 흉측한 외모와는 달리 그의 내면 안에는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유령의 그녀 자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도 알게 됩니다.
연민 가득한 눈물을 흘리며 크리스틴은 유령에게 다가가 키스를 합니다.
유령은 크리스틴을 사랑했지만 차마 그녀를 안아보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라울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잡기 위해 군중들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유령은
라울과 크리스틴에게 자기를 두고 떠나라고 말합니다.
[오페라의 유령]은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로도 각색이 되었습니다.
동화는 가족과 세상에서 버림받은 유령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그려 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이 대목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어, 소개합니다.
"……. 난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았어.
어느 누구도 나를 인간으로 봐 주지 않았지. 어머니까지도…….
나를 지하 세계, 이 어둠 속으로 몰아 낸 건 바로 인간들이야…….
어머니는 날 경멸했어……. 그런데도 난 어머니를 그리워했어.
아니, 사람이 그리웠던 거지."
"당신을 사랑했어, 진심으로.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에게서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꼈거든…….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난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나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 준 단 한 사람…….
어머니조차도 날 버렸는데…….
크리스틴 당신은 내게 세상 누구보다도 더 큰 사랑을 주었지."
동화[오페라의 유령]에서 유령의 절규는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아픔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아픔, 치통보다 더 큰 통증은 사랑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슴없이 사람을 죽일 만큼 냉혹하고 잔인했던 유령이
크리스틴의 눈물어린 키스, 사랑을 받게 되자,
한 마리 순한 어린 양이 됩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경멸했어도 자기는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외치는 유령.
“아니, 사람이 그리웠던 거지.”라는 처절한 말은 우리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우리도 단순히 외모로 사람들을 경멸하고 외면하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을 듣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이 크리스틴처럼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하셨을까요?
단순히 당신이 지으신 세상이니까 사랑하셨을까요?
본래 당신이 지으신 세상, 자연은 아름다웠겠지만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저지른 죄악으로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어쩌면 오페라의 유령, 에릭처럼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모습을 보시고 깊은 연민을 지니시고,
더욱 세상을 사랑하여, 외아드님을 보내신 것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둠이 전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어둠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삶에 어둠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낮만 있고, 밤이 없는 백야는 그 자체가 고통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둠을 경험하지 않으면 빛의 고마움을 모르지요.
그래도 우리는 어둠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그분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의 말씀을 따라 빛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힙니다.
크리스틴의 눈물 한 방울, 몇 초간의 짧은 키스가 어둠의 유령,
에릭을 어린 양으로 만드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작은 사랑이 되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박정만 시인의 ‘작은 연가’라는 시를 들려드리며 오늘의 강론에 대합니다.
작은 연가
-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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