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고향 논산의 봄은 특히 복사꽃이 아름답다. 길거리에는 개나리가, 산사면에는 진달래와 산나리, 철쭉이 아름답게 수를 놓는다. 요즘에는 관촉사 사거리를 비롯해 곳곳에 벚꽃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딸기 축제로 공설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춘궁기가 있었다. 초봄에는 겨우내 먹던 쌀이 떨어져서 보리가 패고 밀을 거두기 전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주념부리 할 것이 마땅치 않을 때에는 으레 광을 뒤지곤했다.
남아 있던 고구마에는 하얀 싹이 솟아나는데 싹이 나오면 달콤하고 포실한 맛이 없어진다. 감자는 한여름에나 볼 수가 있었으니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이다. 봄비가 내리고 대지가 촉촉할 때에는 잔디뿌리인 띠를 캐서 씹으면 끝맛이 달착지근했다.
꼼꼼쟁이 엿 장수가 동구밖에서 가위소리를 내면 그동안 모았던 병이나 쇠도막을 찾아다가 엿을 바꾸어 먹었다. 용돈이 없을 때에는 몰래 닭장에서 계란을 꺼내다가 카스테라와 바꿔먹기도 했다.
이런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 고향 논산이다. 그러나 고향 논산은 지금 바뀌고 있다. 초가집이 몰려있던 동네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숲이 우거지고 간이야구를 하던 공터에는 카센터와 모텔이 들어섰다. 화장터가 있던 자리에는 종합병원과 영안실이 생겨나고 아이스케키를 사먹던 가게 자리에는 대형수퍼가 들어섰다. 간간히 시조소리가 울려퍼지던 주막에는 초등학교가 문을 열어 상전벽해를 느끼게 한다.
고향 논산은 지금 개혁이 필요하다. 군청이 시청이 되고 대학과 공장이 들어선 것이 문제가 아니다. 역신을 쫓는 삼신할머니가 살던 신도안이 3군본부가 된 것에 만족할 수가 없다. 미나리강으로 유명하던 강경에 대형젓갈 축제가 열려도 흥에 차지 않는다. 농공단지의 공장들도 24시간 돌아가야한다. 이제 반야산 허리의 건양대학은 명문이 되고 학생들이 몰려야한다. 5일만에 열리던 시장이 상설시장이 되었지만 좌판 아주머니들이 신이 나도록 장사가 돼야한다.
우리는 지금 변화와 개혁 가운데서 큰 시련을 겪어 내야한다. 이라크전이 끝나고 사담 훗세인을 제거했다 싶으니 북한핵문제가 유엔 문저리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김정일을 얼러야 하고 부시를 달래야한다. 전쟁을 막아야하고 경제난을 풀어가야한다. 물가를 잡아야하고 일자리들을 만들어야한다. 이것들이 머리 맞대어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다.
요즘 신문을 받아들면 덜컥 내려앉던 가슴을 한번더 쓸어내린다. 어떤 인사가 논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뉴스다. 나 혼자의 고향만이 아닐진대 누구나 고향에 관심을 갖는 것을 탓할 수가 없다.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보다 의미 있는 노력과 머리 숙여지는 감동을 주어야한다. 내가 사랑하는 고향 논산에 진정 신선하고 상큼한 소식들이 보다 많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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