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문학제
권 명 자
연록색 잎새들과 어울려 얼굴을 맞대고 피어나는 꽃송이들이 정겹고 싱그러운 오월이다. 좋은 계절에 자연과 더불어 야외에서 펼쳐지는 평생교육원 수필반 문학제가 있는 날이다. 우수한 작품을 써서 상을 받거나 특별 출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뜻깊은 행사에 축하의 분위기를 더하고 싶은 마음에 아들 결혼 때 입었던 한복을 준비하고 교육원으로 향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한복을 곱게 입고 매무새를 다듬던 회원이 반가이 맞는다. 갈아입을 곳도 마땅찮을 것 같아서 입고 왔다는 말에 나도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옷고름을 가즈런히 매만져주며 시어머니란다. “시어머니라고?” 반문을하자 “예, 시어머니, 시어머니가 안 계셔서…^^” 우린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행복한 순간이다. 한복을 입은 건 우리 둘뿐이다. “축하합니다. 상을 받으시는군요” 인사를 받으며 민망하고 머쓱하지만, 행사때 한복을 입고 오시라는 회장의 말에 따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율봉공원 행사장에는 ‘오월 문학제’라는 펼침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이터엔 놀이 기구들과 아담한 정자, 휘늘어진 버들가지들이 바람결에 그네를 타며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요리조리 팔랑이며 나풀거리는 잎새들,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활짝 핀 꽃들의 향연, 상큼한 나무 향기가 싱그럽고, 아늑하고 편안함을 주는 작은 공원이 참 좋다.
지도 교수님의 말씀과 내빈 소개에 이어 문학상을 받는 회원들에게 보내는 축하와 환호의 박수가 분위기를 돋우고 이어지는 시낭송에 바람도 잦아든다.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편지’를 쓴 작가에 대한 시대 배경과 심경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며 낭송하는 작가님은 숭고한 사랑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이어지는 섹스폰 연주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다. ‘오직 하느님께 기도하오니 우크라이나를 구해주소서’ 날마다 보도되는 우크라이나의 참상은 6.25의 아픔을 떠올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숙연함을 더하며 손을 모으게 했다.
회원들이 기증한 물품들을 추첨하면서 축제의 마당은 활기를 되찾고 박수와 웃음으로 즐거움이 넘친다. 내가 뽑은 추첨 카드는 ‘질경이’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생명력이 강한 질경이는, 삶아 무쳐도 담백하고 맛있다. 뿌리를 닭과 함께 삶으면 잡내도 없고 당뇨에 좋다는 질경이가 맘에 쏙 든다.
물오른 버드나무가지로 만든 호드기불기가 이어졌다. 추억이 나래를 펴고 우린 하나같이 천진한 아이들이 되었다. ‘뿌우뿍 삐리릭 삐익삑…….’ 나란히 앉아 삐죽이 입에 물고 서로를 바라보며 불기도 하고 두 손으로 호드기를 감싸고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며 높고 낮고 길고 짧게 제각각 내는 소리가 곡조는커녕 거칠고 투박해도 재미가 나서 소박한 웃음을 퍼올린다. ‘삐익 삑, 뿌욱 뿍’ 호드기소리에 발을 맞추며 “시끄럽다, 뱀 나온다” 나무래도, 들은척도 않고 신바람 나게 호드기를 불면서 뛰어다니던 옛 생각에 불현 듯 같이 놀던 아이들이 보고싶다.
행사를 위해 준비해 놓은 연한 버들가지들을 추리면서 마냥 즐겁고 새롭다. 싸리가지와 댕댕이 덩굴로 엮어 만든 채반이며 바구니들, 체험학습을 통해 만들었던 일들이 머리를 든다. 버드나무 가지들을 날줄과 씨줄로 놓고 엮어본다. 가을빛을 담뿍 안고 나란히 놓여, 새빨간 고추며 무말랭이, 호박고지를 곱게 말리던 초가집 뜨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한복 덕분에 얼결에 맺어진 고부는 마주 보고 호드기를 불고 바구니를 엮으며 문학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멋지게 하나 만들고 싶어서 짚으로 엮은 바구니를 풀어 연습도 했는데 완성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아쉬운 마음이 내년 버드나무 문학제를 기다리게 한다.
문학제는 시상식과 강의 시낭송 악기 연주가 있지만 호드기를 만들고 불며 바구니 공예로 옛 문화를 연출하는 행사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멋이 살아 숨 쉬게 하는 곳에 문학이 있다. 그곳엔 동심이 있고 사랑의 강이 흐르며 삶을 정화 시킨다. 오늘 우리는 놀이를 통하여, 체험을 통하여, 지혜와 마음이 자라고 관계가 좋아지는 소중함을 배운다. 다채로운 행사로 제자들이 심성을 다듬고 좋은 글을 쓸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시는 교수님의 지혜와 제자 사랑을 감탄하며 날마다 한 줄이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하늘처럼 넓고 푸른 기상을, 숲처럼 어우러지고 함께하는 우정을, 물처럼 거침없는 글을 쓰고 싶다. ‘나박김치 같은 산뜻하고 맛깔나는 글’을 아쉬워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같은 날 고운 시 한 수 지어 읊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행사 때마다 편안하게 동참할 수 있도록 배려하시는 작가님, 행사를 영상에 담아 생생하게 되살려주시는 작가님들, 문학제를 위해 수고하신 분들의 덕분에 행복하고 의미있게 보낸 하루를 감사하며 질경이가 가져온 선물을 꺼내본다. 송월타월과 한 컵들이 스테인레스 이중 머그컵이다. 소박하고 귀한 선물이 감사의 마음을 더한다. 나도 그런 선물이 되고싶다.
아름다운 계절에 꽃피운 문학제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