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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의 야경은 세종 때도 소문이 났다. 울진 출신 구종직(丘從直=1404~1477)은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로 있을 때, 야간 숙직을 하다가 경회루로 들어갔다. 마침 세종대왕께서 내시를 거느리고 경회루에 들어오다 구종직과 마주쳤다. 세종은 신분과 밤중에 경회루에 들어온 까닭을 묻고는 경전을 외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춘추 한권을 줄줄이 암송했다. 세종이 감탄하여 이튿날 구종직을 9품 정자에서 종 5품 교서관 부교리에 임명했다. 울진군지(蔚津郡誌)에 남아있는 기록이다. 모험을 하더라도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그 기록 속에 담겨있다.
국왕 출입로인 연못의 제 1교를 지나 경회루 누상(樓上)으로 올라갔다. 경회루에서 내려다 본 궁궐의 야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손님들을 위해 바이올린 2중주단이 달빛아래 고운 선율을 뽑아내고 있었다. 구종직이 목숨과 바꿀 만큼 그 아름다움이 뛰어난 경회루 누상에서 문화 해설사는 특별히 쉬어가는 시간을 충분이 배려해 주었다.
경회루에서 회랑(回廊)을 건너면 조선 법궁(法宮)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근정전에 도착한다. 어도(御道)를 가운데 두고 문무(文武) 품계석(品階石)이 조명을 받아 위엄(威嚴)을 더 하고 있었다. 품계석을 지나 월대에 오르면 정면에 옥좌(玉座)를 만난다. 닫집으로 장식한 어좌(御座)뒤로 강토(疆土)를 상징하는 일월(日月) 병풍(屛風)이 화려하다.
동정문에 돌아왔을 때는 밤 9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왕실의 빈객으로 초대 받아 궁궐에서 보낸 시간이 2시간 30여분, 내가 경복궁 문화 해설사로 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파격적(破格的)인 “경복궁 별빛 야행”이었다. 야행이 끝나자 주최 측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의 소감문을 수집하고 있었다. 내 설문지에 100점 만점에 150점을 적었는데도 너무 짠 점수를 매긴 것같아 자꾸만 뒤 돌아보면서 경복궁을 떠났다.
수라상 집경당 내실 근정전 청사초롱과 보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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