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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AL OF VICTORY pp-409-416
Chapter 12
THE ENEMY YELNYA SALIENT IS ELIMINATED
옐냐 돌출부의 적이 제거되다
It was the second month of the war, but Hitler’s widely publicized promise to destroy the Red Army at an early date, capture Moscow and reach the Volga River remained unfulfilled.
전쟁 두 달째였지만 조만간에 붉은 군대를 격파하고 모스크바를 함락하여 불가강에 이를 것이라는 히틀러의 널리 알려진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This, however, did not mean that the danger for the country had abated to any extent. The enemy continued to drive forward and achieve success. The struggle was becoming more intense on all the sectors of the Soviet-German front.
The outcome of the Battle of Smolensk had a major impact on the further course of the war. Although the city of Smolensk itself fell to the enemy on July 16, the defence of the Western Front’s armies had not been broken down, and they stood firmly on the way to the capital. Doubt and disappointment began to appear among Nazi officers, generals and even rank and file accustomed to easy victories in the West.
그러나 국가의 위험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적은 계속 전진을 계속하였고 성공을 거두었다. 소독 전선의 모든 방면에서 투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스몰렌스크 전투의 결과는 앞으로의 전쟁의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몰렌스크 시가 7월 16일 적에게 함락되었지만, 서부전선군의 방어는 무너지지 않았으며, 그들은 굳건히 수도로 가는 길을 지키고 있었다. 나치의 장교들과 장군들, 심지어 서부전선에서의 손쉬웠던 승리에 익숙하였던 하사관과 병사들 사이에서도 회의와 실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As to the morale of our troops, it steadily rose. In accordance with instructions from the Communist Party Central Committee the Red Army’s Main Political Administration issued two important directives to the troops in mid-July in which it summed up the situation during the first three weeks of the war and demanded that the vanguard role of the Communists and Komsomols be enhanced in battle and in carrying out the command’s orders.
우리 군의 사기에 관해 말하자면, 꾸준히 상승하였다. 공산당 중아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붉은 군대의 주요 정치국은 7월 중순에 전쟁의 첫 3주 동안의 상황을 요약하고 전투와 사령부의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공산당원과 콤소몰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두 가지의 중요한 지시를 발표하였다.
The enemy had suffered heavy losses on the Moscow and Kiev sectors, but this did not point to his weakness yet. Panzer units, the air force and the infantry as well were quite capable of inflicting heavy blows at our troops by means of massive action. But now the enemy was forced to do this cautiously and not on all the strategic sectors.
모스크바와 키에프 방면에서의 큰 손실로 적들은 어려움에 처하였지만, 아직 그들의 약점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다. 전차부대와 공군, 보병들도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작전을 통해 아군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적은 모든 전략적 방면에서 그럴 수 없었고 신중해 질 수밖에 없었다.
At this stage the GHQ’s aim was not to overlook preparations, and the direction of, the enemy’s major attacks and counter Nazi manoeuvres with our own.
Having discussed the existing situation on the fronts with chief of the General Staff’s operations division, V. M. Zlobin, his deputy General A. M. Vasilevsky and other leading officers, we reached the common conclusion that the enemy would probably not risk an offensive against Moscow in the immediate future. He was not ready for the operation, because he lacked the required shock troops of the necessary quality.
이 단계에서 총사령부의 목표는 적의 주요 공격 준비와 공격로를 무시하지 않고 우리 자신으로 적의 전략에 반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총참모부 작전부장 V. M. 즐로빈Zlobin과 그의 부참모장 A. M. 바실리예프스키Vasilevsky장군 및 그 밖의 주요장교들과 함께 전선의 현 상황을 토의한 결과, 우리는 아마도 적이 임박한 미래에 모스크바를 공격할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공통된 결과에 이르렀다. 그들은 필요한 양질의 기습부대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작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In addition, the dangerous operational situation on Army Group Centre’s flanks would inevitably influence the course of events. The point was that enemy-occupied territory stretched in a crooked line from Yelnya to Rogachev and Zhlobin where our recently formed Central Front was located. However, as pointed out above, the Front was still weak consisting of only two armies (13th and 21st), but its southern flank bordered on the troops of the South-Western Front which defended the Kiev area and the approaches to it.
게다가, 중부집단군 측면의 위험한 작전상황은 불가피하게 상황진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점은 적의 점령지가 우리가 최근 결성한 중부전선이 위치한, 예냐에서 로가체프, 즐로빈으로 이어지는 구부러진 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전선은 여전히 2개 군(제 13, 21)만으로 약한 구성이었지만, 그들의 남쪽 측면은 키에프 지역과 그곳의 접근로를 방어하는 남서부전선의 군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다.
Occupying such a dangerous position for Army Group Centre, the Central Front could be used to attack the flank and rear of the enemy forces.
South of Kiev the enemy was driving for the Dnieper in all places, but had still been unable to cross the river. The main enemy force sought to capture the Kremenchug area.
We carefully considered many variants of possible operations by the enemy on this sector of the front and reached, as it seemed to us, the only correct conclusion. Essentially it went as follows: the Nazi Command apparently did not dare leave a sector dangerous for Army Group Centre — the front’s right wing — without attention and would attempt to crush our Central Front in the nearest time.
중부집단군이 점거하고 있는 위험한 위치는, 적의 측면과 후방을 공격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중앙전선이었다.
키에프 남부의 적은 모든 곳에서 드네프르 강으로 쇄도하고 있었지만, 아직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적의 주력은 크레멘추그 지역을 함락하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선의 이 구역에서 가능한 다양한 적의 작전을 주의깊게 숙고하였고 우리가 보기에 정확한 유일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나치 사령부는 중부집단군에 위험한 지역- 전선의 우익-에 대한 관심을 감히 거두지 않고, 가장 가까운 시간 내에 우리의 중부전선을 돌파하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Were this to happen, the German troops would gain an opportunity to come out on the flank and in the rear of our South-Western Front, rout it and obtain a free hand on the left bank of the Dnieper after capturing Kiev. Therefore the Nazis would be able to undertake the offensive against Moscow only after the threat to their central force’s flank would be eliminated.
As to the North-Western Direction we believed that the enemy would have considerably to reinforce Army Group North in order to attempt to capture Leningrad at an early date, link up with the Finnish army, and then also direct his forces towards Moscow outflanking it from the north-east. With this operation the Nazi Command would attempt to remove the threat to the left flank of its shock group on the Moscow sector.
그렇게 되면, 독일군은 우리의 남서전선의 측면과 후방으로 진출하여, 키에프를 점령한 후 그를 격파하고 드네프르 강의 좌안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따라서 나치들은 그들의 중부군의 측면에 대한 위협이 소멸된 후에만 모스크바 공격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북서방면에 관해서 우리는 적이 조기에 레닌그라드를 조기에 점령하기 위해 북부집단군을 상당히 보강하고, 핀란드 군과 연계한 후, 그리고 또 그의 부대를 북동쪽으로부터 측방 우회기동 하도록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 작전으로 나치 사령부는 모스크바 방면의 돌격대의 좌측방의 위협을 제거하려 시도할 것이다.
Such were the conclusions on prospects of most immediate operations by Nazi troops prompted by an analysis of the overall situation on the fronts.
Having carefully weighed all the circumstances, checked estimates of our strength in manpower and equipment and being convinced that our forecasts were correct, I decided to report urgently to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We had to act immediately. All of us believed that any delay in preparing and carrying out counter-measures would be used by the enemy in whose hands the operational and strategic initiative was at the time.
그러한 것들이 전선의 전반적인 분석에 의한 나치군의 가장 즉각적인 작전에 관한 전망의 결론이었다.
모든 상황을 주의 깊게 평가하고, 인력과 장비에 관한 우리의 역량의 추정치를 살피고, 우리의 예측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 나는 최고사령관에게 신속하게 보고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즉시 행동하였다. 우리 모두는 대비책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것이 지연되면 당시 전략 전술적 주도권을 잡고 있던 적들에 의해 이용될 것이라고 믿었다.
On July 29, I called Stalin and requested to be received to deliver an urgent report.
“You can come”, said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Taking along a map of the strategic situation, a map showing the deployment of German forces, references on the condition of our troops and logistics and equipment at the Fronts and the centre, I entered Stalin’s reception office where A. N. Poskrebyshev was and asked him to announce my arrival.
“Have a seat. Orders are to wait for Mekhlis.”
About ten minutes later I was invited to come into Stalin’s office. L. Z. Mekhlis was already there.
“Well, report what you’ve got,” said Stalin.
7월 29일에, 나는 스탈린에게 전화를 하여 긴급한 보고를 해야 하니 받으라고 요청하였다.
“와도 됩니다.” 최고사령관이 말하였다.
나는 전략적 상황지도와 독일군의 배치를 보여주는 지도와 전선과 중앙의 우리 군과 군수와 장비의 상태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포스크레비셰프가 있는 스탈린의 접견실로 들어가 내가 도착한 것을 알려달라고 말하였다.
“앉으세요. 메흐리스를 기다리라는 명령입니다.”
10분쯤 뒤에 나는 스탈린의 집무실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메흐리스는 벌써 그 안에 있었다.
“자, 당신의 보고는 무엇인가요?” 스탈린이 말하였다.
Spreading my maps on the table I described the situation in detail beginning with the North-Western and ending with the South-Western Direction. I gave the figures of our main losses on the Fronts and described how reserves were being formed. I showed the deployment of enemy troops at length, told about the German army groups and set forth the nearest expected enemy actions.
Stalin listened attentively. He stopped pacing back and forth, came up to the table and stooping slightly began to examine the map closely down to the finest print.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나는 북서방면에서 남서방면까지의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였다. 나는 전선에서의 우리 주요 손실의 수치를 제시하였고 예비대가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지 설명하였다. 나는 적군의 배치를 상세하게 보여주며, 독일 집단군과 가장 긴박하게 예측되는 적의 행동에 관해 말하였다.
스탈린이 신중히 경청하였다. 스탈린은 왔다갔다하는 움직임을 멈추고, 테이블로 다가와서 살짝 몸을 굽힌 채 가까이 다가가 세밀하게 인쇄된 지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How do you know future German troop actions?” Mekhlis put in abruptly.
“I don’t know the plans according to which German troops will operate,” I answered, “but proceeding from an analysis of the situation, they can act this way and no other way. Our assumptions are based on an analysis of the state and location of large groupings and armoured and mechanized troops, above all.”
“Continue the report,” said Stalin.
“It seems that in the immediate future the Germans will be unable to conduct major offensive operations in the Moscow strategic direction, because they have sustained too heavy losses. Currently they have no large reserves here to reinforce their armies and secure the right and left flanks of Army Group Centre.
“As we see it the principal events in the Ukraine many occur somewhere in the Dnepropetrovsk and Kremenchug area reached by the main forces of armoured enemy troops from Army Group South.
“앞으로의 독일군의 움직임을 어떻게 압니까?” 메흐리스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독일군이 펼치려는 작전에 따른 계획은 모르지만,” 내가 대답하였다. “하지만 상황의 분석에 따르면,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추정은 무엇보다도 우선 대규모 집단과 기갑, 기계화 부대의 상태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하시오,” 스탈린이 말하였다.
“너무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독일군이 임박한 장래에 모스크바 전략방면으로 대규모 공격작전을 펼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그들의 군을 강화하고 중부집단군의 좌우측면을 보호해 줄 대규모 예비대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주요한 일들은 적의 남부집단군의 기갑부대가 도달한 드네프로페트로브스크와 크레멘추그 지역의 어떤 곳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The Central Front is the weakest and most dangerous place in our defences. Our 13th and 21st armies covering the Unecha and the Gomel sectors are numerically and technically weak. The Germans may take advantage of this weak spot and attack the flank and the rear of the South-Western Front’s troops holding the Kiev area.”
“What do you suggest?” Stalin became tense.
“To begin with we should strengthen the Central Front transferring at least three armies reinforced with artillery there. One army may be obtained from the Western Direction, another from the South-Western Front, and the third from the Supreme Command reserve. An experienced and energetic commander should be put at the head of the Front. Specifically I suggest Vatutin.”
“중부전선은 우리의 방어선에서 가장 취약하고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우네차와 고멜 방면을 막고 있는 우리의 13, 21군은 수적으로 기술적으로 취약합니다. 독일군은 이런 취약지점에서 이 이점을 차지해서 키에프 지역을 지키고 있는 남서전선의 부대들의 측면과 후방을 공격할 것입니다.”
“당신이 제안하는 것은 무엇이오?”
“우리는 그곳의 포병으로 강화된 최소한 3개 군을 이동하여 중부전선을 강화시키기 시작해야 합니다. 1개 군은 서부방면에서, 다른 1군은 남서 전선에서, 그리고 세 번째 군은 최고사령부 예비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전선 지휘에는 경험이 있고 활기 넘치는 지휘관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바투틴을 추천합니다.”
“Do you mean to say that it’s possible to weaken the Moscow sector?” asked Stalin.
“No, I don’t. But in our opinion the enemy will not move forward here yet, and in 12 to 15 days we can bring up not less than eight completely combatworthy divisions from the Far East, including one tank division. Such a force would not weaken but would strengthen the Moscow sector.”
“And we’ll give the Soviet Far East up to the Japanese?” Mekhlis made a caustic remark.
“당신은 모스크바 방면은 더 약해져도 된다고 하는 말이요?” 스탈린이 말하였다.
“아니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의견으로는 적은 아직 여기에서 전진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12일에서 15일 안에 완전한 전투준비가 된, 1개 전차사단을 포함한 8개 사단을 극동으로부터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 군대는 약화되지 않고 모스크바 방면을 강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에트의 극동을 일본에게 주고요?” 메흘리스가 신랄하게 말하였다.
I did not answer and went on:
“The South-Western Front should be withdrawn right away beyond the Dnieper completely. Reserves of not less than five reinforced divisions should be deployed behind the junction between the Central and the South-Western Fronts. They will be our shock force and operate according to the situation.”
“What about Kiev?” said Stalin looking me straight in the eye.
I realized what the words “to surrender Kiev” meant for all Soviet people and for Stalin, of course. But I could not be carried away by emotion, and as Chief of the General Staff I had to suggest the only possible and correct strategic decision in the existing situation as the General Staff and I personally saw it.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하였다;
“남서전선은 즉시 완전히 드네프르강을 넘어서 철수해야 합니다. 5개 이상의 강화된 사단으로 구성된 예비대가 중부와 남서부 전선의 연결점의 배후에 배치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습부대가 되어 상황에ㅔ 따라 작전을 펼칠 것입니다.”
“키에프는 어찌하고?” 스탈린이 나를 똑바로 쏘아보면서 말하였다.
물론 나는 “키에프를 항복 시킨다”는 말이 모든 소비에트 인민과 스탈린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감정에 사로잡힐 수 없었고, 총참모장으로서 총참모부와 내가 직접 본 것처럼 현존하는 상황에서 가능하고 올바른 전략적 결정만을 제시해야 했다.
“We shall have to leave Kiev,” I said firmly.
An oppressive silence set in… I continued the report trying to remain calm.
“A counterblow should immediately be organized on the western sector with the aim of eliminating the Yelnya Salient in the enemy front. The Nazis may later use the Yelnya bulge as a springboard for an offensive on Moscow.”
“What counterblows? It’s nonsense!” Stalin flew into a rage and suddenly asked in a high voice:
“How could you hit upon the idea of surrendering Kiev to the enemy?”
“우리는 키에프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숨 막히는 침묵이 시작되었고... 나는 침착을 유지하며 보고를 계속하려 했다.
“적 전선의 옐냐 돌출부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의 반격이 서부방면에서 즉시 조직되어야 합니다. 나치들은 나중에 모스크바 공격을 위한 도약대로 예냐 돌출부를 이용할 것입니다.”
“무슨 반격? 말도 안 돼!” 스탈린은 벌컥 화를 내며 갑자기 고성으로 물었다;
“어떻게 당신이 적에게 키에프를 항복시키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오?”
I was unable to restrain myself and retorted:
“If you think that as Chief of General Staff I’m only capable of talking nonsense, I’ve got nothing more to do here. I request to be relieved of the duties of Chief of General Staff and sent to the front. Apparently I’ll be of better use to my country there.”
An oppressive pause set in again.
“No need to get excited,” remarked Stalin. “However… If that’s how you put it, we’ll be able to do without you…”
“I’m a military man and ready to carry out any orders, but I have a firm idea of the situation and ways of waging the war, believe that my idea is correct and have reported as I think myself and as does the General Staff.”
나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반박하였다;;
“총참모장으로서의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인다고 당신이 생각하신다면, 나는 더 이상 여기에서 할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나를 총참모장에서 해임하고 저ᅟᅥᆫ선으로 보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나는 분명히 그곳에서 조국에 더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숨 막히는 침묵이 다시 시작되었다.
“흥분할 것까지는 없고,” 스탈린이 말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당신 없이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군인이며 어떤 명령이라도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전쟁을 수행할 방법과 상황에 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내가 생각하는 바와 총참모부가 생각하는 대로 보고했습니다.”
Stalin no longer interrupted me but listened to me now without anger and remarked in a calmer tone:
“Go and do your work, we’ll send for you.”
Collecting the maps I went out of the office with a heavy heart. I was invited to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in about half an hour.
“You know what”, Stalin said, “we’ve sought each other’s advice and decided to relieve you of the duties of Chief of the General Staff. We’ll appoint Shaposhnikov to the post. It’s true, his health is rather poor, but we’ll help him alright.
스탈린은 더 이상 나를 가로막지 않고, 화를 가라앉히고 내 말을 들으며 차분한 어조로 발언하였다;
“가서 맡은 일을 하시오, 우리가 당신에게 보내주겠소.”
지도를 챙겨서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나는 30분 정도 만에 최고사령관에게 초대되었었다.
“당신도 아다 시피”, 스탈린이 말하였다. “우리는 서로의 조언을 구하여 당신을 총참모장의 임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하였소. 우리는 그 직에 샤포시니코프를 임명하였소. 사실, 그의 건강이 상당히 안 좋지만, 우리가 그를 도울 것이오.”
“We’ll use you in practical work. You have extensive experience in commanding troops in field conditions. You will be of undoubtable use for the army in the field. Of course, you will remain deputy People’s Commissar for Defence and member of the Stavka.”
“Where would you order me to go?”
“Where would you want to go?”
“I can do any work. I can command a division, a corps, an army, a Front.”
“Don’t get excited, don’t get excited! You reported here about organizing an operation at Yelnya. Well, take it into your hands.”
Then, pausing a while, Stalin added:
“우리는 당신을 실무적인 일에 쓸 것이오. 당신은 야전상황에서의 군 지휘에 폭 넓은 경험이 있소. 당신이 야전의 군대에 유능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소. 물론, 당신은 국방인민위원회 부위원장과 스타브카의 일원으로 계속 남아있을 것이오.”
“제가 어디로 가라고 명령하실 겁니까?”
“어디로 가고 싶소?”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할 것입니다. 나는 사단도, 군단도, 군도, 한 전선도 지휘할 수 있습니다.”
“흥분하지 마시오, 흥분하지 마! 여기에서 옐냐에서의 작전조직에 관해 당신이 보고하시오. 자, 당신이 그것을 맡으시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스탈린이 덧붙였다.
“Operations of the reserve armies along the Rzhev-Vyazma defence line must be unified. We’ll appoint you Commander of the Reserve Front. When can you leave?”
“In an hour.”
“Shaposhnikov will arrive soon in the General Staff. Turn over your duties
to him and set out.”
“Do I have your permission to leave?”
“Sit down and have some tea with us, we’d like to talk about some other matters,” said Stalin, now he was smiling.
We sat at the table and began to drink tea, but the conversation did not shape up.
“르제프-브야즈마를 잇는 방어선의 예비 집단군의 작전은 통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예비전선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할 것입니다. 언제 떠날 수 있겠소?”
“한 시간 내에 됩니다.”
“샤포시니코프가 곧 총참모부에 도착할 것이오. 당신의 업무를 그에게 넘기고 출발하시오.”
“떠나도록 허락해 주겠습니까?”
“우리 앉아서 차나 한 잔 합시다, 다른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것도 좋겠소.” 스탈린이 말하면서, 이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대화는 구체화되지 않았다.
On the next day the Supreme Command order was issued.
It did not take long for me to get ready to leave for the front. Soon B. M. Shaposhnikov arrived in the General Staff. After I had turned over my duties as Chief of General Staff to him I travelled to the Gzhatsk area where the headquarters of the Reserve Front were situated. The forming of the armies had just ended here and estimates of additional means for the Front were being drawn up.
다음 날 최고사령부의 명령이 발표되었다.
내가 전선으로 떠나는 것을 준비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 샤포시니코프가 총참모부에 도착하였다. 나는 총참모장으로서의 내 임무를 그에게 인계한 후 예비전선군의 사령부가 있는 그자츠크Gzhatsk 지역으로 출발하였다. 여기의 군의 구성은 이제 막 끝났고 전선군을 위한 추가수단의 예측치가 작성되고 있었다.
I had known the chief of staff of the Reserve Front Major-General P. I. Lyapin and the front artillery commander Major-General L. A. Govorov for a long time and quite well. They were military experts of a high class, and I was very glad to work with them.
I did not stay at the Front headquarters for long. Lyapin and his assistants reported on the Front’s combat operations and data concerning the enemy. Particularly close attention was given to conditions influencing preparations for and realization of the coming operation aimed at eliminating the enemy force here. On the same day I set out for the headquarters of the 24th Army together with Govorov and other officers. The troops were exchanging fire with the enemy. We travelled in the grim light cast off by fires raging somewhere near Yartsevo, Yelnya and west of Vyazma.
나는 예비전선군의 참모장 P. I. 랴핀Lyapin소장과 전선포병사령관 L. A. 고보로프Govorov 소장을 오랫동안, 그리고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수준의 군사전문가였고, 나는 그들과 같이 일하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나는 전선 사령부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랴핀과 그의 보조자들은 전선의 전투작전과 적에 관한 자료를 보고하였다. 특히 이곳의 적군을 제거하려는 목적의 앞으로의 작전의 준비와 실현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같은 날, 나는 고보로프와 그 밖의 장교들과 함께 24군 사령부로 출발하였다. 부대는 적과 교전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야르체보, 옐냐, 그리고 브야즈마의 서쪽 어딘가에서 발생한 맹렬한 화재로 인한 음침한 빛 속에서 여행하였다.
We did not know what was burning, but the sight produced a painful impression. National property was perishing in the flames — the result of many years of work by Soviet people. I wondered: in what way our people were to respond to the enemy for the calamities caused by the Nazis along the road marked by blood. With the sword and with the sword alone, destroying the vicious enemy without mercy — this was the only answer…
We arrived at the 24th Army HQ late at night. We were welcomed by Army Commander K. I. Rakutin and commanders of the arms. I had not known Rakutin before. His report on the situation and disposition of the troops produced a favourable impression on me, but I felt his operation-tactical training was obviously insufficient. Rakutin suffered from the same shortcoming as many officers and generals working formerly in the frontier guard troops of the People’s Commissariat for Internal Affairs, who had almost no opportunity to improve their skills in the art of warfare.
우리는 무엇이 불타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 광경은 고통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소비에트 인민들이 여러해 동안 노력한 결과인 국가의 재산이 화염 속에서 소멸되고 있었다. 나는 피로 얼룩진 길을 따라 나치가 일으킨 재난에 대해 적에게 대응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하였다. 칼로, 칼만으로, 흉악한 적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답이었다...
우리는 밤에 24군 사령부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군 사령관 K. I. 라쿠틴Rakutin과 지휘관들의 환영을 받았다. 나는 이전까지는 라쿠틴을 몰랐다. 군이 상황과 배치에 대한 그의 보고는 내게 호의적인 인상을 주었지만, 나는 그의 전략전술훈련이 분명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라쿠틴은 이전에 내무인민위원회의 국경경비대에서 근무했던 많은 장교와 장군들과 같은 결점을 겪었는데, 그들은 전쟁기술을 익히고 향상시킬 기회가 거의 없었다.
Early next morning, Rakutin and I set out for the Yelnya area for reconnaissance. An artillery battle was underway there. We visited the forward lines of the defence and discussed the situation with unit commanders. As a result we saw that the German troops had organized their defence quite well and would obviously fight stubbornly. They had dug in panzers, assault guns and artillery pieces along the forward lines and in depth and thus turned the Yelnya salient into a kind of fortified area.
다음 날 아침 일찍, 라쿠틴과 나는 정찰을 위해 옐냐지역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포격전이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방어의 최전선으로 가서 부대의 지휘관과 상황에 대해 논의하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독일군이 그들의 방어를 꽤 잘 조직하였고 분명히 완강하게 싸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전방배치선을 따라 호 안에 전차와 돌격포, 곡사포대를 옐냐돌출부를 휘감아 깊이 배치하여 일종의 요새화지역으로 만들었다.
Studying the situation on the spot we also realized that the German defence fire system had hardly been fully disclosed yet. For that reason our units delivered artillery and mortar fire mainly not against actually existing fire emplacements spotted by reconnaissance but against supposed targets. Fire of this kind is usually ineffective and requires large amounts of ammunition. As to the numerical and technical strength of the 24th Army, it was obviously insufficient to carry out a counterattack.
현장상황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독일의 방어화력체계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부대는 주로 정찰에 의해 발견한 실제로 존재하는 포대가 아니라 추정된 목표를 향해 곡사포와 박격포 사격을 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사격은 대개 효과적이지 못했고 많은 약의 탄약이 요구되었다. 24군의 수적, 기술적 역량으로 역습을 수행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하였다.
Gradually the situation has cleared up. Now we had to calculate.
Having sought the advice of the commanders of the army and its arms we concluded that extensive and varied work would have to be done to prepare the operation. Two-three divisions and artillery units would have to be concentrated additionally, the enemy’s defence system studied to a greater depth, and logistical support increased. At least 10-12 days were required for the purpose. Therefore, the offensive could be carried out not sooner than the second half of August.
상황은 점점 명확해 졌다. 우리는 이제 계산을 해야 했다.
군사령관과 지휘관들은 조언을 받고 우리는 작전준비를 하려면 광범위하고 다양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세 개의 사단과 곡사포부대가 추가로 집결해야 했고, 적들의 방어시스템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병참지원도 증가시켜야 했다. 목적을 위해서는 최소한 10-12일이 필요했다. 따라서 늦어도 8월 하반기에는 공격을 수행할 수 있었다.
Preparations for the attack would have to be top secret for the enemy to be unable to perceive our intentions and foil the operation. This meant that until the beginning of the offensive we were compelled not to change anything in the pattern of our defensive actions and continue to inflict losses on the enemy in the former way, mainly by exhausting him with continuous artillery, mortar, machine-gun and small-arms fire. Meanwhile, we would secretly redeploy our forces for resolute action.
On August 12, I interrogated prisoner-of-war Mittermann. He was 19. His father was member of the Nazi Party, and he himself was in the Jugendvolk. Together with his division he had taken part in campaigns in France, Belgium, Holland and Yugoslavia.
공격준비는 적이 우리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작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최고기밀이어야 했다. 그것은 우리의 공격이 시작될 때 까지 우리는 모든 방어행동의 패턴을 바꿀 수 없고 이전의 방식으로 계속 적에게 손실을 입혀야 하며, 주로 계속되는 곡사포, 박격포, 기관총과 소화기의 사격으로 적을 소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동안 우리는 단호한 움직임을 위해 우리 군을 비밀리에 재배치 할 것이다.
8월 12일에 나는 전쟁포로 미테르만Mittermann을 심문하였다.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으며, 그 자신도 청년단원Jugendvolk이었다. 그의 사단과 함께 그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유고슬라비아에서 작전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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