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琉璃廠)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등는 야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삼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조선지광』 89호, 1930.1)
[어휘풀이]
-열없이 : 겸연쩍고 부끄럽게
-물 먹은 별 : 별의 가장자리가 번져서 더 커 보이는 별. 별무리.
[작품해설]
이 시는 ‘차고 슬픈 것’ · ‘외로운 황홀한 심사’ 등 소위 ‘감정의 대위법(對位法)’에 의한 정감의 절제와 이미지의 사용, 그리고 감각적인 시어의 선택으로 어린 딸을 잃은 시인의 비애감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인 ‘유리창’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광물성 이미지의 실체로써 창 안과 창 밖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로로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말해 유리창은 시적 자아와 그리워하는 대상(죽은 아이)을 격리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나타나는 영상(별), 즉 죽은 아이의 영혼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중적 이미지로 사용된다.
시적 자아는 어두운 밤, 창가에 서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다. 시적 자아는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창 밖의 어둠 속에서 별을 발견하고 죽은 아이의 영상을 떠올린다. 별을 바라보노라니 어느 새 유리창엔 입김이 서리고, 멀리 있는 별은 입김에 흐려진 유리창에 다가와 ‘언 날개를 파닥거리’고 ‘보석처럼’ 박힌다. 별은 입김 덕분에 유치창에 붙어 나와 가깝게 만나지만, 입김 때문에 곧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시적 자아는 유리창을 닦게 되고 그러면 다시 별은 멀리 떠나 버리고 만다. 이처럼 입김 서린 유리창에 다가온 ‘차고 슬픈 것’이 반갑지만 곧 보이지 않게 되고, 다시 잘 보려고 유리창 닦으면 별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모순적인 행위의 반복 속에 시적 자아의 슬픔은 무한히 반복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죽은 아이의 영혼을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우면서도 ‘황홀한 심사’인가. 시적 자아는 아이를 보기 위해 계속 유리창을 닦지만 ‘산새처럼 날아간’ 아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외로운 심사’때문이지만, 유리창을 닦는 일종의 의식을 통해 그 아이를 영상으로 만나고 있기에 유리창을 닦는 것은 ‘
ᅟᅪᆼ홀한 심사’가 된다. 이러한 모순 형용의 표현 속에서 우리는 이 시인에게서 격한 감정을 슬기롭게 절제하는 그의 인간적 완성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도 마지막 시행에 와서는 그 동안 참아 왔던 슬픔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아이’라는 감탄사와 느낌표(!)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 시는, 이처럼 시적 자아의 뜨거운 부정(父情)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줌으로써 우리를 모두 그의 슬픔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작가소개]
정지용(鄭芝溶)
1903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 재학 중 박팔양 등과 함께 동인지 『요람』 발간
1929년 교토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졸업
1930년 문학 동인지 『시문학』 동인
1933년 『카톨릭청년』 편집 고문, 문학 친목 단체 ‘구인회’ 결성
1939년 『문장』지 추천 위원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추천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1950년 납북, 사망